티스토리 뷰

노래에 묻어나오는 친구 마음 느껴보고
뒷간 뛰어가며 흥얼거리는 우리 노래


홍천 밝은누리움터에서는 생동중학교, 삼일학림 학생들이 시원한 흙집에 앉아 도란도란 공부한다. 나는 북한산 자락 아래 인수마을에 살고 있지만, 주중에 3일은 홍천에서 지내며 학생들과 생활하고 있다. 흔한 말로 음악 선생님인데, 풀어서 말하자면 학생들과 노래 짓고, 삶에 필요한 음악 공부를 다채로운 방법으로 하며 지낸다.

‘취향 저격’이라는 유행어가 있듯, 세상엔 참 많은 취향이 있다. 특히 음악은 사람마다 취향이 제각각이고 그래서인지 호불호가 분명하다. 너도 나도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담아 이어폰을 귀에 꼽고 거리를 누빈다. 물론 나도 취향이 있는데, 학생들을 만나며 내 취향을 돌아보게 됐다. 실상,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내 삶과 크게 상관도 없고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노래도 아니었다.

예로부터 음악은 신을 향한 기도였다.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그리고 먼저 이 땅을 떠난 영혼들을 향해 노래했고, 음악을 통해 삶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음악은 무리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함께라는 사실을 몸소 확인시켜 주었고, 삶의 희노애락을 담았으며, 힘든 노동에 밝은 빛을 입혀주었다.

하지만 요즘 인기 있는 노래는 함께하는 ‘몸’이 없이 파편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흩어진 취향은 콘서트에서 헤쳐모인다. 서로 잘 모르지만 취향이 비슷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질감을 느낀 후 다시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이런 요즘 노래를 나도 소비하고 학생들도 소비한다. 민감한 청소년 시기, 세상을 탐색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유행가를 부르지 않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마음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 뿐이다. 하지만 자본이 쥐락펴락하는 음악 세계에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구출하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고민의 실마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삼일학림에는 ‘우리는 아침에 뜨는 해다[각주:1]’, 줄여서 ‘우아해’라는 노래동아리가 다달이 자작곡을 지어 발표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살며 꿈과 고민을 나누고 서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며 깊은 관계를 통해 샘솟는 삶의 이야기를 노래로 엮어낸 것이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접하는 노래보다 더 공감되고, 노래를 통해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우아해의 노래는 생동중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그렇지... 이렇게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부르면 되는 거다. 처음엔 한두 곡일지라도, 켜켜이 쌓이면 우리 삶을 채우는 고운울림이 되는 거다.

그렇게 삼일학림에서는 ‘악보 그리기’ 수업을 개설해서 우아해가 만든 노래를 악보로 만들기 시작했다. 언어를 통해 글을 쓰고 읽고 말하듯, 노래도 악보를 언어 삼아 쓰고 읽고 부른다. 막연할 수 있지만 웬만한 제2외국어를 익히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만든 악보는 온 마을에 나눴다.

우아해의 노래를 아카펠라로 편곡해 마을 청년들 그리고 생동중학교 학생들과 불러보기도 했다. 담담하게 글을 쓰지만 참 신명나는 과정이었다.


생동중학교 학생들과는 매학기마다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노래를 만들자고 하면 갖가지 표정이 다 나온다. 내심 만들고 싶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얼굴, 자신 없다며 괴로워하는 얼굴, 기대에 차 설레는 얼굴 등 천차만별이다. 처음엔 먼 산을 보며 고뇌하던 아이들도 몇 번 노래를 짓다 보면 더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우리말글 시간에 쓴 자작시를 골라 가사를 다듬고, 누군가 기타나 피아노를 치면 이어 누군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렇게 여러 조각을 모아 노래를 짓는다.

드디어 발표하는 날. 재미있게도 평소에 큰 목소리로 떠드는 학생들은 노래만 부르면 개미 목소리가 돼 웃음을 부른다. 친구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의 마음을 노래로 느껴본다. 그리고 노래에 묻어 나오는, 평소에 미처 알지 못했던 친구의 마음을 발견한다.

삼일학림 학생의 자작곡 '난 내 길을 걸어간다' 악보. 악보그리기 수업 시간에 손수 그린 악보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뒷간으로, 움[각주:2]으로 뛰어가며 직접 지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피아노 치는 아이들도 직접 발표했던 노래를 쳐본다. 그날만큼은 차트를 석권하는 아이돌의 노래는 잠시 잊고 우리 노래를 부른다. 함께 배우며 자라는 배움터에서 흘러나오는 우리 노래.

우리 삶에 자본을 겨냥한 가벼운 노래 말고, 내 친구, 내 이웃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가득하면 좋겠다. 듣고 나면 마음이 허전해지는 노래 말고, 서로를 살리는 노래 말이다. 정성껏 만든 노래가 하나하나 쌓여 우리 삶에 곱게 울리기를 기대한다.


  1. ‘우리는 아침에 뜨는 해다’에서 ‘해다’는 삼일학림 학생인 해민이와 다인이의 줄임말이다. [본문으로]
  2. 밝은누리움터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을 ‘움’이라고 부른다. ‘움’은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을 일컫는 말로 밝은누리움터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이 움을 틔우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정다움, 맑은움, 고움, 슬기움 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 부른다. [본문으로]

뉴스편지 구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밝은누리>신문은 마을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