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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역사를 일굴 동북아의 얼과 고대역사
동북아시아의 모태문화 삼수분화 세계관과 요하문명


7월 23일 삼일학림 모셔배움을 이끌어주신 우실하 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의 원류를 밝히는 연구와, 왜곡되고 감춰진 우리 상고사를 복원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두 가지 주제를 오전, 오후에 걸쳐 공부했다. 오전에는 ‘동북아 모태문화, 3수 분화의 세계관(1-3-9-81)’을, 오후에는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의 재편’이라는 주제로 공부했다.

선생님은 첫 이야기로 무지개 색깔이 몇 개인지 물으셨다. 우리는 지금 무지개를 일곱색깔로 이야기하지만, 정말 일곱색깔 무지개일까? 사실 무지개는 무한대의 색깔을 가졌다. 하지만 근대 초기, 기독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뉴턴이 성수인 7로 무지개 색을 표현했다. 과거 동양에서는 오색찬란한 무지개라 불렀고, 더 이전 우리는 아홉색깔 무지개라 불렀다. 각기 다른 땅의 사유체계가 무한대 색깔을 가진 무지개를 일곱색깔, 다섯색깔, 아홉색깔로 보게 한 것이다.

2수 분화와 3수 분화 세계관

우리 동북아시아의 문화 저변에는 그것을 모양 짓는 사유체계가 있다. 그것이 삼일철학이고 3수 분화 세계관이다. 유교중심의 문화에서 주요 토대가 된 2수 분화 세계관과 3수 분화 세계관은 큰 차이가 있다. 2수 분화는 말 그대로 대립쌍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관점이다. 음양, 남녀, 위아래 등. 그래서 2, 4, 8, 64가 성수다. 그에 비해 3수 분화 세계관은 1, 3, 9(3×3), 81(9×9)을 중요한 성수로 생각한다.

3은 변화의 계기수다. 예를 들어 “똥차, 영구차를 보면 재수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들을 “세 번 보면 재수가 좋다”는 말이 있다. 부정적 혹은 긍정적으로 인식되던 것을 세 번 하면 그 의미가 변한다는 뜻이다. 9는 변화의 완성수이다. 그래서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눈봉사 3년 하면 혹독한 시집살이를 마치고 시어머니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가 되어 곳간 열쇠를 맡긴다는 속담이 있다. 다음으로 81은 우주적인 완성수다. 몽골에서는 최고의 찬사, 최고의 선물은 81이라는 숫자를 담고 있다. 축제 때 씨름, 활쏘기, 말달리기 3종의 경기가 열리고 최종 우승자에게는 81종의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북방민족 가운데 3, 9, 81이라는 수는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우실하 선생님은 3수 분화란 관념이 어디서 생겼을까 계속 질문하는 가운데, 태양이 세 개로 보이는 환일현상이 북방 초원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셨단다. 그러면서 세운 가설은 태양을 신으로 여기던 고대인들에게 하나의 태양이 어떨 때 세 개가 되고, 그 태양이 다시 하나로 되는 것을 목격하며 북방 초원벨트에 사는 이들은 한 개의 태양을 보고도 “저 안에 세 개가 있다”는 삼일관념을 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사유체계는 요하문명 홍산문화 때, 체계화되었고 북방 샤머니즘 안에 잘 보존되어 있다.

이 3수 분화 세계관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중앙아시아, 알타이산맥, 몽골초원, 시베리아남단, 만주 일대에 이르는 초원의 길을 따라 유목민족들을 통해 전파된다. 또 한반도 쪽으로 내려오면서 선도와 풍류도, 그리고 각종 민족종교로 전승되고, 중원 쪽으로 남하하면서 도가철학, 신선사상 등에 전승되고 있다.

우실하 선생님은 “중국에서는 2,000여 년 동안 유교를 국가의 중심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인 이후 3수 분화 세계관은 점차 비주류로 밀려나게 된다”고 했다. 특히 조선사회 이후 2수 분화의 세계관에 입각한 논리구조인 유교가 핵심사상으로 자리잡으며 우리 고유의 사유체계는 잊혀져왔다. 그러기에 조선사회 이전, 고대문화 속에 그 세계관이 표현되어 있고,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전해져온 다양한 이야기 속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 얼이 담겨 있는 이 사상체계의 진면목을 알아내고 우리 얼을 밝히길 기대해본다.

요하 지역 신석기 문화 발견

요하문명을 이루는 각종 신석기-청동기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지, ○○문화, ○○문명이 어떻게 명명되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보통 특정지역에서 고고학적 유적지가 발견되면, 보통 그 지역의 최소 행정단위 명, 특정 지형의 이름을 따서 aa유지라고 부른다. 문암리유지, 동삼동패총유지 등이 그것이다. 반면 주변에서 aa유지와 시대가 같고 출토 유물도 같은 bb유지, cc유지, dd유지 등이 발견되면 이 유지들을 모아 aa문화라 칭한다. 다음으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계급관계에 있는 많은 신석기시대 ○○문화, 청동기시대 ○○문화 유형이 발견되고, 국가단계에 이르면 이들을 모두 엮어서 ○○문명이라 부른다. 보통 강 이름으로 짓는다. 황하문명, 나일강문명, 인더스문명 등이 이 예이다. 그래서 중국은 새롭게 발견된 요서-요동을 가로지르는 요하의 이름을 따라서 ‘요하문명’이라 명명하였다. ‘요하’는 현재 한반도의 서북부에 있는 강 이름이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의 요하 지역에서 엄청난 유물, 유적들이 발굴되며 중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예로부터 한족들은 만리장성을 북방한계선으로 정하였고 그 위쪽에 사는 북방민족들을 야만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생각하기에 오랑캐지역인 요하 부근에서 중원문화보다 더 빠르고 더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속속 발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그동안의 자기 역사체계를 바꾸고 완전히 다른 역사쓰기를 시작한다.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한 ‘문명인-야만인’ 패러다임, 황하강 중심의 문명발전론을 버리고 요하문명과 그 문명이 일어났던 지역을 모두 자신들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작업이다.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동북공정 등이 그것이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라고 알고 있는 동북공정밖에 우리는 잘 모르지만, 실제 그 내막에는 훨씬 큰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중국의 이런 역사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다. 그렇게 되면 (1) 우리 민족의 선조들인 단군, 웅녀, 주몽, 해모수 등은 모두 한족의 시조라는 황제의 후예가 되고. (2) 우리 민족의 역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방계역사로 전락하게 된다.

선생님은 요하문명 안에 있는 다양한 문화들의 여러 가지 유물, 유적지들을 보여주셨다. 그 요하문명의 유물, 유적들의 상당수가 분명 한반도, 일본 등지로 이어지고 있었고, 또 일부는 중원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흥륭와 문화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의 옥결.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문암리유적(기원전 6000년, 사적 426호) 옥결.


먼저 흥륭와 문화(기원전 7000년-6500년)에 있는 세계 최초 옥결(옥으로 만든 귀걸이)을 보았다. 이 옥기는 한반도 내 고성 문암리, 전남 여수, 그리고 이후에는 일본에서까지 발견된다. 또 역사적인 상식을 깬 집단거주지도 발견되었다. 이 주거지는 놀랍게도 해자 혹은 환호(외적이나 맹수의 접근을 막으려고 주거지 주변을 빙 둘러서 참호를 판 것)가 있는데 그 폭이 4미터, 깊이가 2미터나 되었다. 여기서 150여 가구가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흥륭와 문화에서 발견된 인골에 치아 수술의 흔적이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석기만 사용했다고 생각되던 지금으로부터 9,000년 전 시기에, 치아 수술을 정확히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 치아 수술을 하며 마취는 도대체 무엇으로 했을까 등 놀라움 밖에 표출할 수 없는 여러 유물,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여러 문화가 있지만 요하문명의 꽃은 홍산문화이고, 그 홍산문화의 꽃은 우하량 유적지란다. 여기서는 거대 적석총과 여신묘가 나왔다. 적석총으로 한 변이 60미터가 넘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나왔다. 이런 적석총은 고구려 수도였던 현 집안에 있는 장군총 등 거대 적석총과 백제, 일본의 적석총으로 이어진다.

적석총 안에 있던 여신묘에서도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특히 가장 큰 여신은 인간 실물의 3배가량이 된다. 명상하는 자세로 앉아 있고, 눈은 둥근 청옥을 넣었다. 이 옆에는 진흙으로 실물 크기로 빚은 곰 형상이 발견되고, 그러기에 홍상문화의 주도세력이 곰을 토템으로 숭배하는 민족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실하 선생님은 단군신화의 웅녀족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홍산문화 시절은 고조선 이전의 시기다. 홍산문화의 발견은 고조선 이전 고조선이 세워진 땅에 초기국가단계에 이른 집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조선을 신화로만 인식하고 있던 이들의 생각에 변화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증거들이다.

국가주의 넘어 동북아공통의 시원문명으로

요하문명을 국가주의적인 역사관으로 해석하면 또 다른 역사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실하 선생님은 요하문명을 동북아공통의 시원문명이라는 인식아래 21세기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향한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시한 견해가 ‘A자형 문화 벨트’다. 지금은 돌아가신 중국 고고학자 소병기(1909-1999) 선생은 요하문명과 관련하여 “Y자형 문화 벨트”를 주장한 바 있다. 현 중국 안에서 (1)북방 초원지역 (2)중원 황하문명지역 (3)요서요하문명 지역을 잇는 문화벨트가 있다는 의미다. Y자형 문화벨트가 가진 문제점은 요하문명의 전파 경로에서 한반도를 제외시킨다는 점이다.

우실하 선생님은 Y자형 벨트와 더불어, 요하문명이 중원지역과 한반도지역으로 각각 남하하는 ‘A자형 문화벨트’가 존재한다고 본다. 요하문명의 상당수 유산(세석기문화, 빗살무늬 토기, 적석총, 치를 갖춘 석성, 비파형 동검 등)이 만주 지역과 한반도로 이어지고, 또 다른 일부 유산은 중원쪽으로 전해졌다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 아래 요하문명을 “‘동북아 공통의 시원문명’으로 보면 한·중·일·몽골의 공통의 문명적 기반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고, 각 국가 간의 많은 갈등을 해결하고 동북아시대를 앞당길 수 있으며,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 동북아시아가 거듭나는 ‘동방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국가주의의 기치 아래 과도하게 자기중심적인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우리의 얼, 정신,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역사 현장을 무관심으로 방치하고 있다. 중국에서 보이는 과도한 자기중심성(제국주의). 한국에서 보이는 자기 뿌리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식민주의). 이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가 극복될 때 진정한 동북아시아의 생명평화와 균형 잡힌 역사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박민수 | 밝은누리움터에서 생활하며 배우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회, 역사, 정치경제 등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무언가에 복종하게 만드는 힘을 분석하고, 깨어서 지혜롭게 사는 삶을 일구고 싶은 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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