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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진로 고민을 넘어선 삶을 생각하다
기도와 노동, 공동체 영성, 예수원 이야기


삼일학림에서 공부하며 지내는 농촌 청년입니다. 사실 농촌에 있다 보면 책상에 앉아 마냥 공부만 하며 지낼 수는 없습니다. 머리로만 하는 공부뿐만 아니라 앎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공부를 하려고, 열심히 밥도 짓고, 하늘땅살이도 하고, 무거운 짐도 나르고, 학생들도 만나고, 농촌 곳곳에 필요를 채우며 지내는 삶이 농촌 청년의 삶입니다. 청년들이 부족한 농촌에서 청년으로 지낸다는 건 농촌에도 좋고, 청년에게도 좋은 삶입니다. 농촌에 젊은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로서 좋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에게 농촌은 편안한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다음 발걸음을 위한 준비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농촌 청년이 7월 13~15일 강원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전부터 지친 삶에서 벗어나 안식과 회복을 위해 예수원을 찾았다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습니다. 예수원에서 지내고 있는 정베라 선생님의 ‘기도와 노동, 공동체 영성, 예수원 이야기’ 강의, 벤 토레이 신부님과 함께한 삼수령 기도회 그리고 예수원 방문은 그곳이 왜 많은 이들에게 쉼과 안식이 되는 곳인지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정베라 선생님은 예수원을 ‘중보기도의 집’, ‘신학의 실험실’, ‘네 번째 강’이란 주제로 설명해주었습니다. 나와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며, 다양한 말씀과 찬양, 예배가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신앙의 다양한 영역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곳이 예수원이었습니다. 또한, 나, 우리, 사회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민하며 다양한 신학적 고민과 질문들을 묻고 나누는 곳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시작한 ‘네 번째 강’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세 갈래 물줄기가 흐르는 삼수령에서 북녘땅으로 향하는 사랑과 복음의 네 번째 강이 흐르기를 기대하는 사역입니다. 이곳에 삼수령터전을 지어 생명의 강이라는 대안학교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듣고 이튿날 예수원을 방문했습니다. 한 해에 많게는 4천 명에서 1만 명까지 손님이 찾아온다는 예수원은 고요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돌로 지은 건물들이었습니다. 돌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 돌로 지은 것입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이뻤지만 무거운 돌을 옮기며 쌓아올렸을 대천덕 신부님과 예수원 가족들을 떠올리니 그들이 강조하는 노동과 기도의 삶이 현장에서, 일상에서 나온 것임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소박한 저녁밥상을 마치고 삼일학림 학생들과 함께 예수원 곳곳을 다녀보았습니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기도 하고, 침묵기도실에 들어가 다른 이들이 쓴 기도제목을 읽으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차방 (tea room) 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차를 마시며 나누었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제 막 청년이 된 학생들과 한창 청년으로 지내고 있는 저는 서로의 진로, 하고 싶은 일, 지내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시로, 중앙으로, 더 높고 유명한 곳으로 가야 한다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자연으로, 주변부로, 태백으로 들어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감당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의 삶은 어떤 삶이 가치있는 삶이고 행복한 삶인지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예수원의 너른 품속에서 우리는 함께 만들어갈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농촌에서 지내는 청년의 삶과 예수원의 삶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진로와 취업 장벽을 마주한 청년들에게 정신, 가치, 신앙 같은 것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돈이 되지 않는 것 그래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농촌과 예수원은 ‘생산성’과 ‘상품’이라는 측면에서 의미 없는 곳입니다. 그저 휴가 내서 한바탕 즐기고 쉬고 오는 곳 정도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치와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래서 참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도시의 삶이 익숙한 많은 사람들에겐 농촌 청년의 삶이 낯설고 이질적이고 낙오자로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대학 친구들과 부모님에게 저는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 그저 철없는 아이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원에서 보낸 짧은 시간 동안 저는 충분한 위로와 평안을 누리고 왔습니다. 남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는 곳, 세상과 다르게 사는 삶, 신념과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삶,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진정 행복하고 즐거운 삶임을 함께 사는 이들과 그렇게 서로 힘 주며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돌아왔습니다.

이민호 | 밥은 나의 힘, 풋살은 나의 기쁨, 하늘땅살이는 나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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