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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스스로, 그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국제협력개발… 해외원조를 넘어선 자립의 씨앗 심기


마을에서 살아가며 생명평화를 위한 기도순례의 걸음을 함께하고 있다. 생명평화를 위한 기도는 다름 아닌 자꾸 팔이 안으로 굽는 관성을 넘어 이웃의 고통에 눈 뜨고 온생명과 더불어 사는 삶으로 내딛고자하는 발걸음이다.

7월 기도순례를 앞두고 열린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에서 ‘지속가능한 국제협력개발’이라는 제목의 아프리카 이야기를 들었다.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 편안한 잠자리, 함께 뛰어놀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 몸이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일상의 혜택들을 받지 못하는 삶의 이야기였다. 삶은 삶인데 너무 힘겹고 참혹한 삶 이야기였다. 특히 어른들 잘못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 남성의 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지 못해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이어지는 내전의 참상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했다.

식민 지배와 독재, 그 틈을 타고 들어가 권력과 결탁한 다국적기업의 탐욕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마을공동체는 망가져갔다.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의 행복이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에 수천 조에 달하는 원조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원조의 효과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만큼 아프리카의 빈곤과 기아 문제는 끝나지 않고 있다. 오랜 기간 원조를 받아왔지만 바뀌지 않는 아프리카의 현실을 보며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국제기구로부터 보급되는 빵이 아닌 아프리카 땅의 사람들이 직접 땀 흘려 생산하는 빵, 그 과정의 의미가 담긴, 그 결과로서의 빵이 필요한 것 같았다.

아프리카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장생 선생님이 그 땅의 사람들과 만나온 과정도 흥미로웠다. 아프리카와의 첫 인연은 우간다라는 나라의 정부일을 하는 공무원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 자리를 떠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 살았다. 좋은 집과 좋은 차를 버린 대신 풍토병으로 고생했고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는 부족장으로부터 ‘마토브(사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새 삶을 받는다는 것일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68회에 걸쳐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사람을 세우고 마을을 살리는 일을 해가고 있다. 토착미생물과 식물을 활용해 친환경적으로 양계와 축산을 하고, 옥수수재배와 방앗간을 세워 국제기구의 원조에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길을 함께 돕고 있다.

‘지속가능한 국제협력개발’ 강의를 들으며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생명력이 어떻게 피어나고 이어지고 있는지 또렷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을살이를 만나기 전 나의 삶에도 희노애락의 감정과 생명으로서의 새로운 시도와 실패들이 있었지만 지긋한 힘으로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런 관계의 든든함은 없었다.

아프리카에도 마을이 살아나면 된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사업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어야 하듯, 국제협력기구들의 역할이 지속가능하려면 함께 살아가며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 작고 낮은 수위로 다가가는 지원이 거름이 되고 마을을 살릴 수 있다.

지난해 가을 마을 동생에게서 받은 무씨를 심어 김장무를 수확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중 몇 개를 씨앗이 될 무로 남겨 월동을 하고 올해 봄 텃밭에 심었다. 먹지 않고 씨앗으로 삼았던 몇 개의 씨무들에게 응원하는 마음과 기도를 담아 흙 속으로 보낸 것이다. 처음이었기에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씨무가 잎을 내고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우는 과정을 모두 설레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여름이 가까워오자 꽃이 진 자리마다 씨방에 씨앗이 맺혀주었다. 씨앗을 거두면서 자연스레 밭을 정리했다. 흙속에서 잔뿌리를 내리며 자기 생명을 내어준 씨무의 모습과 만났다. 무수한 새생명이 될 씨앗이 맺히는 동안 씨앗무는 하얗고 단맛이 낫던 자기 속을 비우고 까맣게 썩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햇살과 비, 바람, 벌레들의 도움 받아 씨앗이 자라는 동안 흙과 더불어 물과 영양을 공급하며 사력을 다하고 죽어간 씨앗무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마을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국제기구의 원조를 받아 농장의 수확이 늘고 수입이 늘었지만 그 수익을 환원하지 않고 자기욕망을 채우는 데 써버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씨앗이 죽지 않으려 버티다 일어난 사태였다. 다른 생명 살리며 시커멓게 죽어간 씨앗무는 순리대로 사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순리를 거스르는 탐욕이 평화를 앗아간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임재원 | 매일 새로이 피어나는 생명의 힘은 홀로가 아닌 어우러짐 속에서 가능함을 느끼고 배우는 마을밥상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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