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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치유한다
중독이 구조화된 사회… 마을에서 쉼 누리며 살기


‘중독이 구조화된 사회와 치유공동체’라는 주제로 라파공동체 윤성모 님 이야기를 들었다. 중독자들 고통을 알게 되고, 중독에 대한 오랜 편견이 있음도 알게 된 뒤 치유 사역을 소명으로 알고 해왔다. 라파공동체는 알코올중독을 치유하는 사역이 중심이다. 알코올중독을 고치고 싶어서 찾아온 분들과 살며, 함께 밥 먹고, 함께 노동하며 지낸다.

알코올중독이 가족이나 내게 영향을 준 적은 없다. 하지만 중독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중독은 가까이 있었고, 오랜 시간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불안과 스트레스가 심할 때 중독에서 얻었던 자극을 찾는다.

윤성모 님은 중독자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중독에 대해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공부하고, 중독자분들과 함께 살면서 이해하게 된 걸 얘기해주셨다. 중독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온다고 한다. 결핍에서 중독이 온다. 그리고 중독은 조절이 안 되는 걸 말한다. 조절이 안 되는데 중독자에게 조절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방법은 끊는 것이다. 중독자에게 스스로 끊으라 하는 건 어렵다. 중독이 주는 자극은 현실에서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가족은 산 아래 주택가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걸리는 지역의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반지하에서 사는 게 힘들었던 엄마가 임대아파트 입주 신청을 한 것이다. 아파트단지 상가 2층에는 만화책 대여점이 있었다. 이사 오기 전, 친구집에 놀러 가서 한두 권씩 보던 만화책이 엄청 많았다. 친구네 집에서 뒷 권을 못 본 만화책을 빌려 보다가 습관이 되어 고등학교 때까지 시험기간 빼고 거의 매일 빌려 보았다. 반지하지만 주택가라서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일하고 돌아오시기까지 골목에서 놀던 시간이 만화책 보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없는 건 같은데 노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돌아보면, 이사 와서 환경이 바뀌며 화목한 가정의 친구들과 비교하기도 했고, 집에서 힘든 걸 만화책으로 도망친 것도 같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만화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파일을 다운받아 종일 컴퓨터로 보기 시작했다. 그게 더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자신감을 잃게 했다. 대학교 어느 방학은 한 달 넘게 그렇게 보냈다. 밤새 보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 또 보는 생활을 반복하니 멈추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친구들 만나는 게 무서워서 연락을 피하기도 했다.

강의 때 얘기하신 것처럼 중독은 끊는 게 그만두는 방법이다. 학교에 다니고, 교회 가서 사람들 만나고, 친구들 만날 때는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일을 하며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만화책이 생각나는 건 잦아들었다. 하지만 스트레스 받을 때, 다시 보곤 했다. 그게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생각했다. 새로 나온 만화책을 빌려 가는 길은 설레고 행복했다. 하지만 다 보고나면 허무하고 더 보고 싶어졌다.

강의에서 부정적 감정상태가 되면 중독행위를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중독된 행위로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해결하는 것이다. 중독의 무서움은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걸 대신한다는 것이다. 나를 돌아봐도 그렇다. 불안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 기도하고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쉽게 불안을 잊고 즐거워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 후회하며 기도하고, 반복했다.

그리고 자극에 약한 아이들에게 중독이 구조화되는 사회가 무섭다고 하셨다. 스마트폰이 통용되며 SNS, 무료로 볼 수 있는 자극적인 웹툰과 소설, 심지어 도박에 중독될 가능성이 많아졌다. 몇 년 전 어떤 학교에서 고등학생들과 공부할 때 몇 아이들이 도박을 게임처럼 즐겼다. 쉽게 번 돈을 쉽게 쓰고, 수업시간에 중요한 도박이라며 확인하면 안 되냐고 하고, 도박에서 돈을 잃으면 엄청 짜증을 낸다.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가 중독을 일으키는 것 같다.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고, 학교 다니고, 아이 키우고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자극이 있다며 홍보하는 미디어가 여기저기 있다.

더 잘 사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을 만나고, 마을에서 함께 밥 먹고, 함께 놀고, 함께 노동하며 한 몸 이루어 살면서 균형 잡히고 만족스러운 일상을 경험하고 있다. 요새 함께 풋살하는 즐거움이 크다. 만족스러울 때 자극에 대한 생각은 잘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내 의지가 아니어도 자극을 찾는 횟수가 적어진다. 함께하는 은혜다. 함께 살면서도, 할 일이 많고 스트레스 받을 때, 자극을 찾는 습관이 찾아온다. 그래도 마을에서 함께 지내며 자극이 아닌 ‘쉼’을 누리는 삶을 배워간다. 중독을 일으키는 결핍은 스스로를 다른 데로 데리고 간다고 한다. 다른 데로 끌려가지 않으려면 일상에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지키고, 중독에 빠진 이들의 연약함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랑과 용기 주시기를 바란다. 결핍으로 인한 중독의 치유는 ‘사랑’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마을에서, 책임있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며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간다.

강의를 함께 듣던 분이 아버지의 중독으로 인한 아픔을 나누었다. 윤성모 님은 듣고는 함께 눈시울 붉히며 모두에게 그분의 마음을 알아주고 기도해주기를 이야기하셨다. 중독에 빠진 분들, 그리고 그로 인해 함께 고통 받는 주위사람들이 있다는 걸 떠올리라고 이야기하셨다. 중독으로 아픈 이들이 왜 중독에 빠지는지 그 외로움과 아픔을 알고, 우리의 연약함을 보아주시는 온 생명 사랑을 담아 사랑으로 서로 보듬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 라파공동체는 중독 치유 사역을 하는 치유공동체다. 회복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사랑과 섬김의 교회가 세워졌다. 중독자들을 살리는 일, 교회를 살리는 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하는 일, 농촌을 살리는 일을 지향한다.

박미정 | 인수동 북한산자락에 살며 마을밥상에서 밥 짓고, 마을 아이들과 산책하고, 마을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며 함께 사는 기쁨과 고마움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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