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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와 민주주의의 뿌리는 독립운동"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온전한 독립, 하나된 대한조선’ 강연


한국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의 뿌리는 바로 독립운동입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이루는 목표를 지향했지만, 동시에 독립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다른 나라 민족과 평화롭게 사는 체제를 꿈꿨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을 생각하면서도, 민족 위에 있는 인류까지도 고려하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다른 나라 민족을 힘으로 지배하는 강대국으로 가지 말고, 식민지가 되었던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인류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체제를 만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뿌리는 독립운동에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면서, 국민주권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10년대 독립운동 과정에서 이미 국민주권주의가 선언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작년 12월 독립기념관장으로 취임할 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도 독립운동이 민족혁명인 동시에 민주혁명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완전한 자주독립을 지향한 민족혁명인 동시에 민주주의를 꿈꾼 민주혁명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이 되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면, 새로운 나라의 주권자가 국민이 되는 민국으로 가기를 바랐습니다.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의 꿈이 결합된 것입니다. 그런 움직임이 1917년 ‘대동단결선언’으로 나타납니다. 이 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권 상속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유일한 주권자였습니다.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바뀐 뒤에도 대한제국의 주권자는 황제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 일본 천황의 대리인인 조선총독이 주권자였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 황제가 강제병합조서에 서명하는 순간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황제가 포기한 그 주권을 구 대한제국의 인민들이 상속했다, 그 인민이 중심이 되어서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논리가 대동단결선언에서 표방됐습니다.

1919년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에서는, 우리 민족 독립을 동양평화, 인류평등과 결합시킵니다. 우리가 독립을 이룸으로써 우리 민족만 잘되는 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인간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독립운동을 규정합니다. 3·1독립선언서에도 독립이 동양평화를 보장하고 인류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자립이라고 규정합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에서 시작된 만세시위가 두 달여에 걸쳐서 전국 각지로 확산됩니다. 이 과정에서 7,500명이 사망하고, 만 명 이상이 부상당하고, 2만 명 이상의 사람이 감옥에 가는,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3·1만세운동은 대한제국 황제가 포기한 주권을 인민이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상속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3·1만세운동 이후 임시정부 수립운동이 나타나는데,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포하고 그 주인이 인민이라고 선언합니다. 당시는 국민이라는 말보다 인민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3·1운동과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헌장을 공포하면서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은 4월 13일로 되어 있는데 내년부터는 4월 11일로 바뀔 예정입니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은 딱 열 조항으로 된 헌법이지만 내용은 매우 풍부합니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나오고 그 체제는 민주공화제로 규정합니다. 이후에는 ‘대한민국 주권은 대한 인민 전체에 있다’는 조항도 들어갑니다. △제3조 대한민국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 이미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가 됐지만, 임시정부헌장에서는 신분뿐 아니라 계급의 차이, 남녀의 차이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제5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있음. 3조와 5조를 결합시키면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됩니다. 굉장히 혁명적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 여성의원이 있었습니다. △제7조 인류의 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여라는 항목은, 독립운동이 인류의 평화가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9조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를 철폐한다. 태형과 사형제를 반대하고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굉장히 선진적인 조항입니다. 현행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또는 임시정부로 상징되는 독립운동가들이 지향했던 바를 우리는 계승할 책무가 있습니다.

1944년 임시의정원은 임시헌법을 개정하면서, 대한민국 기본정신을 자유, 평등, 진보로 규정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합작정부입니다. 이념과 노선 차이를 뛰어넘어 독립을 지향하는 세력은 모두 임시정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합작이 이루어졌습니다. 합작을 하려면 독립운동이 지향하는 목표, 독립 이후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지향이 비슷해져야 합니다. 1940년대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합작이 이루어졌다는 건 모인 사람들 생각이 한 군데로 수렴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게 자유, 평등, 진보라는 단어로 요약됩니다. 자유로운 민주공화제,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 사는 평등한 세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로 나아가는 정신, 이런 것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해방 이후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기미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이제 제헌헌법을 제정해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며 건국절을 기념해야 한다는 틀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독립운동 과정에서 출범을 했고, 해방된 다음 그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근대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해서 그날을 건국일이라고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없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이라고 쓴 현수막이 옛 중앙청 청사 앞에 걸려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의 날입니다. 실제로 건국절 주장하는 사람들이 국부로 삼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연설에서 ‘이미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과정에서 수립되었고, 이제 정식으로 정부가 출발하기 때문에 기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1948년 9월 1일자로 첫 관보가 발관되었는데 그 관보에 날짜를 보면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계산하면 대한민국 1년은 1919년입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에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공존


독립운동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좌파도 일제강점기에 계급해방보다 민족해방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만큼 민족주의 정서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자, 우리 독립운동은 중국혁명과 러시아혁명에 참여합니다. 중국혁명과 러시아혁명이 성공하면 우리 독립운동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남의 식민 지배를 받아보았기 때문에 남의 아픔에 공감한 것입니다. 중국혁명과 러시아혁명이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고, 목숨을 바쳐 참여합니다. 흔히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가 서로 배타적일 때도 있지만 서로 공존할 때도 많았습니다. 우리 독립운동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도 국제주의였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특징입니다.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사람이 자주적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다.” 기미독립선언은 우리 독립을 세계평화, 인류평등의 일환으로 규정하는 선언이었습니다. 독립을 선언하는 이유가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며, “동양의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수적인 받침대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3·1독립선언서에 앞서서 나온 2·8독립선언서에도, 세계 평화와 인류의 문화가 등장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6개의 정강을 발표하는데, “민족평등, 국가평등 인류평등의 대의를 선전함”, “외국인의 재산을 보호함” 등 국제주의적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김알렉산드라라는 여성은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1910년대 후반부터 20년대 초까지 연해주에서 고려혁명의용군 등 조선사람들이 만든 수많은 빨치산 부대가 등장해서 러시아혁명에 참여합니다.

김규식, 김필순, 이태준, 세분은 중국 신해혁명에 참여한 분들입니다. 김필순은, 지금 연세대 전신인 세브란스 제중의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한국인 최초의 서양의사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후배이자 제자인 이태준과 함께 1911년 중국으로 망명을 갑니다. 당시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한반도에서 식민통치에 시들어있던 젊은이들에게 빛으로 다가옵니다. 이태준은, 김규식과 같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중에 몽고에서 당시 유행하던 성병 퇴치에 큰 활약을 해서 지금도 몽고인들이 기념하는 분입니다.

남의 문제를 우리 일로 여겨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들

중국혁명에 직접 참여한 한국인 독립운동가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습니다. 비행사였던 서왈보, 안창남, 권기옥, 대한민국정부의 첫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 의열단을 조직한 김원봉,
<아리랑>으로 유명한 김산(본명 장지락), 음악가 정율성, 만주로 건너가 동북항일연군을 지휘한 이홍광, 김훈. 허형식은 독립운동가면서, 중국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윤세주와 진광화는 국가열사능원에 묻혀 지금도 중국사람들 예우를 받고 있습니다. 태항산에 팔로군으로 일본군 공격을 받았을 때 등소평을 구하기 위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기 때문에, 니다. 광저우 기의열사능원에 가면 ‘중조인민차지성’이라는 기념비가 있습니다. 1927년 중국공산당 무장봉기에 조선인학생들이 참여해 마지막까지 싸워갔는데, 이름이 남아 있지 않은 무명의 전사자 150여 명을 기리는 것입니다. ‘장렬한 무장봉기에 참가한 혁명 병사 가운데 조선청년 150여 명이 있었다. 조선 동지는 위대한 국제주의 정신과 두려움 없는 혁명 영웅의 기개를 보여주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왜 굳이 중국혁명에 참여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중국혁명의 성공이 독립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국혁명이 곧 우리의 독립운동이다, 후자의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운동이자 세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지향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국제주의 이상은 매우 높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국제주의 이상은 늘 배반당했습니다.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면서까지 중국혁명에 기여하려고 했던 독립운동가가 간첩으로 몰려서 목숨을 잃기도 했고, 러시아혁명에 참여했던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역시 일본의 침략을 두려워한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 당하고, 간첩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로 사형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독립운동가들은 국제주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39년 김원봉이 김구와 함께 임시정부 합작을 제안하는 <동지동포에게 보내는 공개서간>을 발표합니다. 독립운동이 ‘자유, 평등, 상호부조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독립운동가의 지향을 이어받을 책무가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 평화, 더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에 기여하도록 해야 하는 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해방이 된 다음에 결코 분단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948년 봄 평양에서 4김 회담이 열렸습니다. 최근 들어서 밝혀진 사실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김두봉, 남측의 김구, 김규식 4명이 만나서 회담을 하는데, 모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통합을 위해서 연락하고 연대를 모색하던 주역들입니다. 김두봉과 김구, 김규식 사이에서는 통합 논의가 훨씬 구체적으로 진행되었고, 임정에서 김일성에게 서한을 보내서 통합을 이루려는 상황이었습니다. 분단이 현실화된 상황에서도 ‘하나 되어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마지막 몸부림을 보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는 이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정리 : 문영주, 김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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