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 만드는 역사를 꿈꾸다
피란 1000일 동안의 대통령 관저, 임시수도기념관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경남도지사 관저였다가, 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자 1950~1953년 1000일 동안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가는 길목에 7년 전 이승만 동상이 세워졌다가 시민들 반대로 철거된 곳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그는 6.25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강다리를 폭파시키고(이로 인해 한강 다리를 건너던 서울시민 800명이 수장되었다) 대전, 대구를 거쳐 이곳으로 와서 미국에게 한국을 단독점령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던 게 아닐까? 근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대통령 관저 2층에서 밖을 내다보며,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그를 상상해보았습니다. 당시 인구 30만이던 부산은 전국에서 70만 명이 밀려드는 피란민들로 인해 금세 삶의 전쟁터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들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그 후로도 전쟁과 분단은 오래오래 계속되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라는 후대 추앙에 걸맞게, 힘든 국민들을 보살펴주고 전쟁의 위협에서 보호해주는 국부였더라면 좋았을텐데, 재집권욕 때문에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고 3.15부정선거로 결국 불명예 퇴진하고 1960년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큰 차를 타고 오신 단체 관람객들이 우르르 대통령 관저로 들어오더니 초대 대통령의 흔적을 더듬습니다. 기념관 곳곳에 전시된 전쟁 당시 사진들을 보면서 옛날엔 이리 어려웠는데, 지금 이만큼 살게 해준 분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동상을 세우려는 이들과 없애려는 이들, 도무지 이해되지 않은 저쪽과 이쪽을 갈라 반목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모든 상처와 두려움을 벗고 당당하게 우리 역사를 만들어가길 바라며 다음 순례지로 총총 걸음을 옮겼습니다.
최소란 | 아홉 살 아이와 부산 순례에 함께했어요. 배낭 메고 많이 걸어 다니고 때론 비도 맞고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랑 의미 있는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