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묘지 앞에 울려 퍼진 평화의 추모
공통의 원통함과 상처 보듬어 서로 살리는 삶으로
부산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재한유엔기념묘지)가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이곳에 묘지를 조성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4만여 전몰장병들 이름을 새긴 추모명비와 2,300기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묘역 등이 있습니다. 1955년 대한민국 국회가 유엔군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토지를 기증하였고, 유엔 총회는 이를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묘역은 방문자들 보란 듯이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지만, 젊은이들이 먼 나라까지 와서 포화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던 그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은 유엔군 뿐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의 생명들을 앗아갔습니다. 부산 땅을 품고 있는 바다와 산 곳곳까지도 그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요.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 참가자들은 4월 부산지역 곳곳에서 그 흔적들을 더듬었습니다.
부산·대구·경상도 일대에 흩어져 걷던 순례자들은 4월 15일 유엔기념묘지를 고요히 걸으며 유엔군 위령탑 아래 모였습니다. ‘세계 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용사들’이 되기를 바랐지만, 냉전과 분단의 철조망으로 미움과 대립이 커져가는 세상에서 그들이 목격한 역사가 끝나버린 안타까운 영령들 앞에서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분단 이래 1972년 남과 북은 ‘통일은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한다’,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7·4남북공동성명). 그리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이 원칙은 이후 정권이 바뀌는 동안 1990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10·4남북공동선언에서도 동일하게 명시되고 있습니다. 우리 오랜 갈등은 이념이 달라서라기보다는 인식 왜곡과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공통의 원통함과 아픔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치유와 해원이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한 맺힌 철책과 무기를 버리고 서로 살리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땅에 이제 우리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려는 생명의 움직임으로 꿈틀대고 있고, 기도순례의 걸음과 일상은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김준표 | 관광지로만 알았던 부산의 아픔 접하며, 새롭게 이 땅의 역사를 알아가는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