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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

새해 첫 호를 열며 마을신문 좌담을 했습니다. 무기징역이라는 갇힌 시공간 속에서 자기 성찰로 문명을 통찰했던 故 신영복 선생의 타계로, 생전 강연과 책이 다시금 주목되고 있지요. 사상가의 말을 되뇌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체득해가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대목을 살짝 공개하면 이렇습니다. “선생이 관계를 중심으로 산 것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에 삶의 목표를 두지 않고, 함께하는 관계가 미래이고 삶의 전부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국가 폭력의 결과였지만 본인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한 것이죠. 그러면 앞으로 우리 시대를 밝힐 지혜는 어느 현장에서 가능할까 질문이 들어요.” 진정성 있는 사상일수록 삶으로 재해석되는 이야기들은 무한히 풍성해지기 마련입니다. 좌담 전문을 읽으시고, 마을신문으로 독자 편지를 보내주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살림에서 기술과 예술이 곧 하나였습니다. 유용하고 아름다운 생활도구들을 만들어 썼죠. 석유문명 탓에 이제는 자연 재료들을 구하기도 어렵고, ‘사서 쓰는 게 훨씬 이쁘고 편하다는 편견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부터 내려온 생활도구들은 물론, 오랜 지혜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 소개된, 도리깨며, 지게, 빗자루 따위를 만들어 쓰시던 마을 어르신을 다시 만났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익히고 이어가야겠다는 젊은이들이 갈무리한 수숫대를 들고 수수비 매는 법 배우러 갔지요. 몸과 도구가 하나 되어 비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과정을 차근차근 처음으로 따라 배우면서, 일흔여덟 노부부가 간직해온 익살과 넉넉함마저 전수하고 싶어졌답니다.

지난 한 해 홍천 밝은누리움터에서 농사를 배우는 삼일학림 학생들이 꾸준히 기록한 하늘땅살이 날적이 연재가 이번호로 마무리됩니다. 날마다 뜨는 해처럼 새 기운으로 생명을 키우며 미세한 생명의 변화를 감지하며 차곡차곡 써온 글은 시가 되기도 합니다.

“밀 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멀리서도 푸릇푸릇한 녀석들이 눈에 확 띈다.
 모든 생명들이 갈무리되고, 나무는 잎을 떨구고 있는 가을,
 밀에게는 지금이 자신의 삶 시작하는 봄이다.”(하략)
‘나에게는 지금이 자신의 삶 시작하는 봄이다’로 바꿔서 담아두고픈 글귀입니다. 가을철 고요히 움튼 밀 싹이 겨울 밭을 푸르게 푸르게 지키고 있었겠지요. 생동중학교 졸업식에서도 서로의 봄을 지긋이 응원해주는 목소리들이 가득했습니다. 밀처럼, 자기 때에 맞게 우직하게 생을 열어갈 수 있기를!

최소란 | <아름다운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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