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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같이 살 수 있는 길 찾자
한완상, "분단 70년 여전히 아픈 한반도, 악순환 끊어야"

4월 24일 '분단 70년 통일의 길을 묻다' 강연에서 한완상 전 적십자사 총재가, 오랜 분단의 비극 속에 살아온 남과 북이 공존공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민족은 일제치하 36년 동안 정치적 억압, 경제적 수탈, 문화적 차별을 당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광복이 되었지만, 해방과 광복의 기쁨도 누리지 못했어요. 일본이 동남아시아 자본을 두고 미국과 겨루다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1945년 패망했는데, 국제법 관례상 전범국은 강탈했던 남의 나라를 전부 원상 복귀해야 하고, 반인륜적 범죄로 인해서 그 영토를 분할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범국이 받아야 할 그 징벌을 우리가 받았어요. 영토 분단과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민족끼리 3년간 300만 명 이상 죽이고 63년째 냉전 상태잖아요.
 
1945년 8월 15일 9대 조선총독이란 사람이 이런 저주를 했어요. '오늘 일본제국은 미국에 졌다. 그러나 조선이 이긴 건 아니다. 우리는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조선에 심어놓았다. 앞으로 조선이 벌떡 일어서려면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5년 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는데, A급 전범자로 사형당할 사람이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면죄를 받고 오히려 일본 총리가 되었어요. 기시 노부스케, 지금 아베 총리 외할아버지죠. 그 사람이 한국전쟁을 신이 일본을 축복한 사건으로 봤어요. 1945년 당시 일본이나 한국이나 경제가 다 피폐했는데, 한국전쟁이 터지니까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일본이 주로 생산하여 하루아침에 경제부국으로 떠오른 계기가 된 거예요. 불과 몇 년 전에 미국이 일본을 주적으로 싸웠지만, 다시 소련을 견제하는 가장 강력한 반공 보루로 삼아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키우고, 맥아더 사령부 하의 미국식 자본주의체제로 변화시킨 겁니다.
 
보복적 심판 그만두고 원수 사랑으로


한완상 총재는 93년 통일부 총리를 맡은 이후 비전향 장기수 송환, 615남북정상회담, 104남북공동선언 등에 기여해왔다.

분단되고서 열전 3년 냉전 63년, 지금도 분단체제가 극복되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지난 7년 동안 더 악화되었어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제가 통일부 총리가 되면서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을 예수님정신으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보복적인 심판을 그만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내 형제, 동창, 동향, 이웃 사랑하기는 쉽지요.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는 거예요. 70년 동안 서로 미워해온 악순환을 끊으려면 북한을 껴안아야 합니다. 1993년 당시 우리 GDP가 북한의 13배였습니다. 자기보다 못 사는 나라와 대등하지 않은 상태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보복하는 건 정의가 아니죠. 북한에서 보내달라고 한 76세 이인모 노인이 있었는데, 전향하지 않았다고 30년 동안 고향에 못 돌아가고 포로로 감옥생활을 했어요. 김영삼 정부 때 이인모 노인을 원수 사랑의 정신으로 조건 없이 보내게 되었어요. 그런데 NPT(핵확산금지조약)라는 국제기구를 북한이 탈퇴해서, 불안감을 느낀 극우수구세력들이 힘을 얻게 되었어요. 36년 식민지 고통, 70년 분단 고통 속에서 친일반공세력이 우리 사회의 갑, 적자가 되었지요.
 
그 다음에 김대중 대통령은 친일반공세력과 연대하지 않고서는 집권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정권 5년 동안 첫 2년은 김종필 세력이 통일·외교·국방부 장관하느라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하려 해도 잘 안 되었죠. 그럼에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6·15선언이 나옴으로써 그야말로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이정표 하나가 만들어졌죠. 그런데 김대중 정부도 IMF로 인해 세계 신자유주의 정책을 뿌리칠 수 없었고, 조·중·동을 위시한 극우수구세력이 매사에 걸고 넘어져서 남북관계 개선이 어려웠습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될수록 그를 빌미로 색깔논쟁을 일으켜서 자기 이득을 관철하는 그 핵심에 냉전근본주의세력이 있어요.
 
노무현 정부는 대체로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을 넘겨받았습니다. 제가 김영삼 정부 통일부 총리 시절 한겨레신문 대담에서, 이솝우화에 나오는 '햇님과 바람' 이야기에 빗대어, '강풍, 증오, 협박, 무력으로 북한을 누르려고 하면 더욱 발악하게 만들어서 냉전이 강화되고 열전이 터지고 그럴 수 있다, 그래서 햇볕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량살상무기를 활용할 수 있는 현대에 전쟁이 일어나면 승자가 없어요. 이건 다 지는 거예요. '첫째,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 둘째, 흡수통일은 정부가 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말하니까 정부가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를 비워내는 게 진짜 강한 겁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마침내 10·4공동선언을 만들었습니다. 6·15선언은 총론적이고 추상적인데 10·4선언은 구체적이고 자세합니다. 제가 적십자 총재를 할 때, 남북정상회담 보건사회분과위원 책임을 맡았는데 최종 합의된 선언문이 나오기 전에 초안을 보니까, 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기로 하고 구체적으로 이걸 이룩하는 것은 4항에 ‘한반도 주변에서 3자 혹은 4자 나라의 정상들이 모여서 추진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3자 나라라고 하면 중국, 미국, 북한이었습니다. 휴전 당시 이승만의 고집으로 휴전협정에 사인하지 않았기에, 휴전협정을 해체해서 평화체제로 바꾸는 일에 있어서 남북이 기둥노릇을 못하고 우리는 늘 빠졌어요. 이번엔 남북정상 간의 회담이니까 남북은 반드시 들어가는 거로 10·4선언을 만들어서 평화정책과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표준이 될 수 있게 했어요.


평화를 기초로 신뢰 쌓아야
 
이렇게 합의를 본 다음에 이명박 정권이 들어와서 다 뒤집었죠. 클린턴을 미워했던 부시아들 부시가 ABC정책을 펼쳤습니다. '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이 한 건 무조건 안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anything but 노무현, 김대중, 소위 민주투사로 대통령 된 사람들 정책은 뭐든 안하겠다는 거죠. 10·4공동선언, 통일과 평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는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졌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통일부, 교육부를 없애겠다고도 했어요. 처음부터 통일에 대한 적극적 인식이 없던 거예요. 제일 먼저 잘못한 게 '비핵개방3000'이라는 건데,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노태우 대통령 때 벌써 나온 선언입니다. 평양은 핵문제에 있어서는 워싱턴과 직접 해결한다는 게 그들의 확고한 의지요, 전술입니다. 우리는 핵도 없잖아요. 한미군사훈련 할 때 핵무기 탑재한 미 항공모함이 서해로 오니까 북한으로서는 우리가 아무리 도상훈련이라고 해도 위협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핵문제는 평양과 워싱턴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비핵개방3000은, 우리가 국민소득 3000불 벌어주겠다, 그러려면 핵문제부터 풀어라, 이건 북한에서 볼 때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죠.

2007년 적십자 총재로 북한에 갔을 당시 그들이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이 이겁니다. '12월 선거 때 이명박이 될 것 같은데 그가 어떤 사람인가? 남북관계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기업인이니까 돈 버는 사업을 제시하면 북한에서 잘 협조해주세요' 했는데 제가 잘못 이야기한 했어요. 5·24조치 나왔죠, 금강산관광 단절됐죠, 천안함 사건 생기면서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다음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게 물려줬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와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 삼기는커녕 확장, 심화시키려고 해요. 남북관계는 연애와 같은 신뢰프로세스입니다. 서로 신뢰하지 않을 때 사랑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 나가서 우방강국들한테 북한을 옭죄라고 이야기하면서 북한을 화나게 하고 신뢰를 깨뜨리고 있어요.
 
그러다가 '통일 대박'이 나왔는데, 평화 대박 없는 통일 대박은 그야말로 거짓입니다. 평화가 먼저 있어야 하고 그 기초 위에 통일의 새 집을 세울 수 있는 것이죠. 연애관계로 말하면 사랑이 싹터서 신뢰가 높이 올라갈 때 우리 결혼 준비를 착실하게 하자고 세부사항을 의논하듯이, 민족화합도 남북이 같이 해야 하는데, 남북관계가 최악일 때 통일준비위원회를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흡수통일을 연구한다고 합니다. 흡수통일이라는 것은 남쪽 중심의 경제나 군사력에 의해서 북쪽을 삼키겠다는 것이거든요? 1910년 한일합병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한일병탄입니다. 일본이 삼켰어요. 북한에서 얼마나 불신이 강해졌겠어요. 얼마 전 통일원 장관이 남북관계 새롭게 해보자고 하니 북한에서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나오는 거죠.

 
경제 협력으로 공존공생 모색

북한은 떠있는 고장 난 비행기와 같다, 떨어지는 게 임박했다는 얘기를 제가 들은 지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북한, 그렇게 간단하게 붕괴되지 않습니다. 북한은 '컬티스트 스테이트(종교국가)'와 같습니다. 외압에 의해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누르면 안으로 더 단단하게 결속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제 책 <한반도는 아프다> 부제가 '적대적 공생의 비극'입니다. 북의 극좌군대세력, 남의 냉전근본주의세력은 서로 상대를 주적으로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서로를 도와줍니다. 이런 적대적 공생관계가 작동하는 한 북한은 절대 붕괴 안 됩니다.
 
만약 북한이 붕괴되어 2, 3백만이 넘어온다면, 이미 있는 2만6천 명 탈북자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우리 체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 청년실업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북한이 붕괴되면 우리가 감당을 못할 겁니다. 제가 통일부 총리였을 때 독일 슈미트수상이 와서 '독일통일에서 배우려고 하지 마라'고 했어요. 동서독 통일되고 나서, 서독 사람들이 동독에서 갖고 있던 자기 땅 찾으려는 법률사건이 200만 건, 이걸 통일정부가 해결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돈이 무지하게 든다, 북한은 공산주의국가 중에 못 사는 나라고, 남쪽도 서독만큼 잘 살지 않는데, 독일식으로 남쪽에 의해서 북한을 흡수통일해서 같이 살기는 어렵다, 이거죠. 남북이 공존공생하려면 이념적 싸움을 탈락시키고 점진적으로 민족 경제를 통한 동질성을 형성해가야 합니다.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야지, 흡수통일과 북한 붕괴는 재앙입니다.
 
지금 김정은이, 할아버지는 주체사상을 통해 사상강국을 만들었고, 아버지는 핵무기로 군사강국을 만들었고, 나는 경제강국을 만들겠다면서,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면, 이제 미국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으니, 과도한 군사비용을 경제비용으로 전환시키자고 해요. 2013년 2월 12일 핵실험에 성공하고 자신감을 가져서 한 달 후 노동당중앙전체회의를 소집해서 경제-핵 병진 노선을 채택합니다. 상당수 군사력을 노동력으로 전환시키고, 2014년에는, 수도 이외 13개 직할시도 개발을 위한 경제개발법을 채택합니다. 집단농장 단위를 20가정에서 3~5인으로 확 줄여서 우리집안 농사라는 인식을 주고 식량난이 호전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지하자원과 우리 기술과 자본을 합쳐 경제 협력을 하면, 남북 간에 정치적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순서를 밟아서 진행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통일맞이'와 기독청년아카데미가 함께 주최한 통일인문학콘서트에서 4월 24일 한완상 적십자사 전 총재가 강연한 '평화의 나라와 통일' 강연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녹취 및 정리 :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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