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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 저녁 드시러 오실래요?
환대하는 일상

"언니, 언니가 저번에 저희에게 해준 잡채를 하면 어때요? 너무 맛있었는데…."
(조금은 쑥스러운 듯 발그레해진 언니) "그럼, 그럴까? ^^"
"그럼 전 김치볶음밥을 준비할게요."
"매운 것에 민감한 아이들을 위해 야채볶음밥도…."
"저는 맑은 된장국을...."
"남은 김칫국물에 생수를 붓고 매실액으로 간을 맞춘 후, 사과를 얇게 썰어 즉석에서 만든 동치미까지…."
저마다 준비할 것들을 얘기하며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초대받은 이들을 마음에 그리며, 좋은 재료를 선택하여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것. 그 과정이 혼자라면 버거울 수 있겠지만, 함께 준비하는 손길들이 있기에 거뜬하다. 초대받은 이들이 긴장을 풀고 맛있고 기쁘게 먹는 모습을 보는 순간,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피로는 사라진다. 밥을 나누는 것은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서로의 생명을 키우는 것.


위의 풍경은 내가 몸담고 있는 더불어교회에서 마을공동체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친구들을 초대하기 위해 나눈 이야기들이다. 작년 이맘 때, 난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마을 사람들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따스함과 즐거움을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내가 마을 친구들과 함께 초대하는 주체가 되어 새로운 친구들을 초대하는 시간을 가진 것은 예전에 받은 감사의 마음을 또 다른 이들에게 흐르게 한 귀한 시간이었다.

마을로 이사 오기 전, 누군가를 초대한 적이 언제였더라. 부모님과 살 때는 가족이나 친척들의 생일날이나 기념일 정도였고, 그 전에 혼자 살 때는 간혹 친구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지만, 일 년에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깐…. 마을에 온 후 여러 변화들을 체험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서로의 집을 넘나드는 문턱이 이렇게나 낮아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비단 집의 문턱만이 아니라 마음의 문턱을 한껏 쌓아올리며 다른 이들과 소통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인을 떠올리면 홀로 외딴 섬에 살며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진정한 소통은 어떤 것일까. 마음을 열어, 나를 그들의 삶에, 그들의 삶을 내 안에 담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문턱을 낮추기 시작하면 어느새 높이 쌓아두었던 마음의 문턱도 낮아질 것이다.


마을 언니와 오빠 부부가,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집에 저녁 마실을 왔다. 올 초에 담가둬서 맛이 잘 배인 사과차를 내어놓는다.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는데, 서로에게서 향긋한 사과향이 난다. 바느질을 잘 하는 언니에게 집에 걸린 수건을 쑥 내밀었다. 며칠 후, 예쁘게 리폼 된 주방수건 두 개를 선물 받고, 언니가 집을 이사하기 전 날, 혼자 식사한다는 얘기를 듣고 점심 초대를 했다. 나물 향기가 가득한 색다른 잡채와 잡곡밥. 소박하면서도 풍성했다.


집에서 컴퓨터 쓸 일이 많지 않다며 컴퓨터가 필요한 우리 집에 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저녁밥상을 대접했다. 그 친구와 더불어 마을에 부부로 살아가는 친구들도 초대했다. 전에 반응이 좋았던 나물잡채를 주 메뉴로 다시 도전했다. 김을 싸먹으면 순간 김말이가 되는 재미난 나물잡채. 우린 질리지도 않는다. 집에서 담근 매실액과 밤, 사과를 후식으로 가지고 온 친구들. 함께 먹으며 훈훈해진 기운에 게임도 하며 소소한 기쁨을 나눈다.

마을로 이사 오기 전 나의 출퇴근 시간은 왕복 1시간이었는데, 이사 온 후 왕복 네 시간이 되었다. 주 6일의 근무와 출퇴근 시간 때문에 아마 홀로 살았다면 퇴근 후 지쳐서 저녁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어서 새로운 기운으로 충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마을에서 초대하고 초대받고 서로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내겐 매일 아침마다 어김없이 일어나서 출근할 힘을 주는 것이다. 전에는 특별한 날에만 하는 이벤트로 생각되었던 초대가 이웃하여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을 통해 조금씩 나의, 우리의 일상으로 자리잡아가는 기쁨과 설렘을 누리고 있다. 단, 초대할 때 나의 평소 리듬을 건강히 지켜가는 것도 중요하다.

'저녁이 있는 삶'은 저녁에 단순히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질적인 삶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특별한 일이 없어도 부담 없이 저녁 마실 갈 수 있는 이웃으로 살아가는 관계, 내 시간과 공간을 열어놓고 다른 이들이 깃들 수 있도록 비워두는 마음, 마을공동체로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초대하는 삶일 것이다. "저희 집에 저녁 드시러 오실래요?"

이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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