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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에 색을 입히는 도시총각들


너무 쉽게 봤다. 절임이 이렇게 오묘하고 어려운 것일 줄이야. 소금 뿌려서 그저 8시간 놔두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째 이놈의 배추는 여전히 빳빳이 오기를 부리고 있는 건지….

인수마을 도시남자 여섯이서 김장을 하기 위해 형제공동체 집 ‘사랑방’에 모인 것이 어제 저녁 여섯시였다. 거실에 둘러 앉아 스텐다라(대야)를 하나씩 얼싸안고는, 쪽파를 손으로 일일이 다듬고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마늘을 까고 무채를 썰고 재료를 준비했더니, 어느덧 아홉시. 배추에 소금을 속속들이 뿌려 넣고 마무리한 것이 밤 열시였다.


아삭한 맛을 보장한다는 그 레시피대로라면 아침 6시면 배춧잎들이 물컹 접혀야 하는데, 톡 소리가 나며 생배추마냥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절임이 맛을 좌우한다는데. 낭패였다. 결국 새벽잠을 즐기던 모두가 일어나 다시 일일이 뒤집고 소금을 치며 배추를 달랬다. ‘보통 절인 배추를 주문하던데, 대세를 따랐어야 하나…’, ‘소금을 계량해서 넣었어야 했는데 손 감각을 너무 믿었어’, ‘올해 배추가 가을 기상이변 때문에 표준 배추보다 훨씬 작아서 어려웠던 거야’… 온갖 생각이 들었다. 반나절 지나고 나니 다행히도 배추는 맛있게 절여졌다. 둘러앉아 김칫속을 버무리고 배춧잎 한 장씩 들추며 빨갛게 양념으로 색칠했다. 남은 김칫속과 보쌈으로 점심을 차렸다. 듣던 대로 보쌈은 김장의 화룡점정이었다.


울릉도를 걸어서 여행한 적이 있다. 차를 타면 반나절 걸릴 코스를 걸어서 완주하니 3박4일이 걸렸다. 발품을 팔아 걸으면서 만나는 길가의 꽃들, 널어 말린 밭작물들, 해안도로를 돌아갈 때 발견되는 마을 전경이 여행의 쏠쏠한 기쁨이었다. 살림의 맛도, 예전에 지나쳤던 일상의 소소한 것에 숨어 있는 색깔과 모양, 정감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먹던 김치가 이제는 다채로운 관심의 주제가 된다. 고춧가루가 왜 비싼지 이야기 나누면서, 그 넓은 밭의 고추가 한줌의 고춧가루로 되기까지 수고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을의 때아닌 장마로 턱없이 속이 비어 있는 올가을 배추를 보면서 속이 상하고, 기상이변이 이제 내 밥상의 문제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홍천마을 밥상에서는 더 소박한 양념으로 김장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내년 김장에는 어떤 시도를 해볼까 떠올려보게 된다. 살림하며 도시총각들이 계절의 리듬을 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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