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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랑 만나고 싶었어
예부터 여성을 살리던 부뚜막, 우리 시대 한여름밤에 되살리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날마다 식구들 조석거리를 차리느라 부엌 부뚜막에 군불을 지폈는데, 이런 생활이 옛날 여성들을 온갖 부인병에서 지켜줬다 합니다. 황토가 발라진 부뚜막에서 불을 땔 때 나오는 온기와 원적외선이 사람 몸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랍니다. 집안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아랫목을 내어주고 부뚜막 앞에 쭈그리고 둘러앉은 여성들은 몸 어딘가 아픈 곳을 치유하는 자리로 서로를 초대했을 것입니다. 반면 지금 여성들이 이래저래 많이 앓는 건 부뚜막에서 궁둥이를 뜨끈하게 덥히던 지혜가 사라져서일까요. 고된 집안일과 가부장제 질서에 무기력해지지 않고 묵묵히 서로의 몸을 돌보던 관계를 잃어버려서일까요, 혹 둘 다일까요.

서로 지켜주는 만남으로 초대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3일 저녁 서울 강북구 수유마을에서 여성들 서른 명이 ‘부뚜막’이란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전통적인 부뚜막 시설을 갖춘 건 아닙니다. 모임 이름이 그렇다는 거죠. 그래도 그 찜통더위에 서른 명이 부뚜막 이름만 듣고, 열일 제쳐두고 반가운 마음으로 모여 방 하나가 꽉 차게 둘러앉아 그야말로 인간 부뚜막을 이뤘답니다.

무슨 취미가 같아서 모인 동호회도 아니고, 나이도 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세 살부터 사십대 중반까지 다양합니다. 일터에서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저녁도 거르고 달려온 여성도 있고, 또 그런 친구를 떠올려 새참으로 파래전이며 시원한 효소음료를 싸온 이도 있었습니다. 같이 사는 친구들과 한주동안 분주한 일상을 정갈하게 하며 부뚜막을 준비했다는 이들도 있었지요. 다 수유지역에 사는 이웃들만 온 건 아니에요. 다른 지역에서 지내는데 모임을 마치고 잠잘 채비까지 해서 온 여성들도 있었어요. 기혼과 비혼 여성들이 골고루 어우러졌고, 뱃속에 태아를 품고 온 임신부, 모처럼 젖먹이 아기와 떨어져 홀가분하게 외출한 엄마들도 있었습니다. 아이와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살림집을 모임공간으로 기꺼이 내어준 이도 있었지요. 이날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오롯이 서로의 언니이고 동생이었습니다.

얼마 전 가정을 이룬 여성은, 결혼 전까지 한집에서 먹고 자던 친구들과 만나 변함없는 우정의 눈빛을 나눴고, 같이 사는 식구들만으로 관계가 좁혀지는 것 같다고 여겼던 이는, 언니들을 만나 고민도 풀고 든든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집을 떠나 새로 수유마을에 이사 온 이는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기 이전 생활습관을 돌아보고 이제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후끈 달아오른 부뚜막이 사그라들기 전에 제 할 일을 다 해야죠. 이 자리에 모인 여성들은 고요히 마음 모아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누군가’는 최근 병과 씨름하며 몸의 총체적 치유와 전환의 과정을 통과해가고 있는 친구들이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친구집에 찾아가 수족이 되어 생활을 돌보는 역할을 돌아가며 하고 있는 친구들이기도 하고, 병명은 달라도 결국 크게 다르지 않은 질병들로 신음하고 있는 동시대 여성들과 문명적 질환에 민감한 생명들, 곧 우리 모두이기도 합니다. 기도가 어떤 힘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게 해주리라 믿습니다.

전체 모임에 이어서 너덧 명씩 여러 집들로 흩어져서 밤이 깊도록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습니다. 작은 모둠으로 둘러앉으니 자연스레 더 속 깊은 고민도 털어놓고 그간 잘 몰랐던 친구의 정황도 이해하게 되었지요.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내내 끊이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의 작은 호흡에 귀 기울이며 서로의 삶에 책임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니 이대로 계속 이어서 잠도 같이 자고 싶고 아예 다음 부뚜막은 하루를 함께 살면 더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아쉬운 마음으로 서로의 집을 바래다준다며 밤 산책을 즐기다 헤어졌습니다.

내 문제 넘어 다른 이 향해

사람들이 개별화된 우리시대에는 자기연민이라는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 힘들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독백하며 스스로 울타리를 치는 겁니다. 가부장제 질서의 차별과 폭력, 현대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하게 하는 환경재앙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대부분 이런 한계에 갇혀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 몸 사타구니와 치부를 향해 뜨끈한 치유의 기운을 쬐어주는 자리에 둘러앉게 해주는 부뚜막은 오늘 어디에 있을까요? 안락한 관계의 배치를 바꿔서 자기를 비춰줄 수 있는 다른 이와 관계 속에 자기를 열어젖히면 나 홀로 뚫고 나갈 수 없던 문제를 넘어설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나만의 아픔을 보던 시선이 바뀌어 다른 여성의 아픔이 보이고 또 이 땅 모든 여성의 경험과 아픔을 이해하게 되면서, 끈끈한 우정과 연대가 시작됩니다.

진정한 우정과 연대는 당위와 선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기반으로 구현됩니다. 구체적 생활을 공유하지 않으면, 일시적인 교제와 결의는 공허해질 수 있습니다. 마을에서 옆에 있는 친구를 보며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삶, 그것이 부뚜막이 준 선물입니다. 이 땅 곳곳에 마을공동체 속 부뚜막이 자연스레 되살아난다면, 홀로 아파하는 이들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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