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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자라는 아이들을 보다

임신·출산·육아는 타자를 내 몸 안에 받아들여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다른 생명과 함께하는 삶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마을을 이루어 어우러져 사는 일상이 있기에 나는 두려움을 떨치고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마을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그에 힘입어 부모로서 내게 주어진 몫을 잘 감당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때로는 고독도 견디고, 나보다 앞서 겪은 언니들과 든든히 연대하며, 때로는 사회적 관계에도 참여하며 그렇게.

아이가 돌을 지나고서 한 살을 더 먹을 무렵,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절실해졌다. 부모와 아이, 서로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관계를 확장할 때가 된 것이다. 아이도 또래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엄마도 익숙해진 육아 일상을 전환해서 뭔가 다른 걸 할 에너지가 솟는 듯했다. 그리고 이미 마을공동체에서 여러 형태로 아이들을 함께 길러내는 경험과 지혜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세 살 동갑내기 아이를 둔 육아주체들과 품앗이를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 아침밥 먹이고 씻기고 짐 챙겨서 매일 오전 10시에 한 집으로 모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너무 이른 시간 일어나서 피곤해하거나, 늦잠 자지 않도록 전날 밤 일정한 시간에 재우고, 가정마다 다른 생활패턴을 품앗이 시간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리듬을 잡아가야 했다. 공동의 육아에 마음을 모으는 실천이었다. 아이와 부모만 있던 시·공간이 아닌 더불어 키우는 장에서는 약속이 있고, 일관성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서로의 육아방식을 간섭하고, 생활습관, 부부관계, 소통방식까지 속속들이 건드려지기도 한다.

돌아보면 자기 가정과 아이의 정황을 특수화하며 내 아이 내가 보는 게 가장 낫다는 속단을 한 적도 있지만, 서로에게 귀 기울이면서 같이 있는 자리가 즐거울 때나 버거울 때나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다. 품앗이는 단지 돌아가며 대신 아이들 돌봐주는 게 아니라 내 아이, 네 아이를 우리 아이들로 기르는 적극적 결정이다. 친구에게 자기 놀잇감을 양보하지 않는 아이와 소통하면서 집에서 몰랐던 면모를 보기도 하고, 아이가 자기만의 기질이나 습성을 친구들 속에서 스스로 넘어서고 뿌듯해하는 모습에서, 아이를 규정했던 시각을 교정할 수도 있다. 어떤 육아방식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으로 홀로 전전긍긍하기보다, 자기를 객관화하고 부족한 점을 묻고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자연스레 아이도 부모도 성숙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은 집을 떠나 같이 지내는 일상에 점점 적응하고 또래들과 어울려 놀면서 활기차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을 사는 모든 '멍멍이'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는 산책길은 5분 거리도 30분 넘게 걸리는 고행(?)이었다. 간간이 놀러온 마을 어른들은, 이모삼촌 손을 서로 잡겠다는 아이들의 경쟁 어린(?) 사랑을 받았다. 아이들은 점점 안정감을 느끼고 엄마와 헤어질 때에 울먹이지 않고 "엄마, 안녕!" 하며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눴다. 엄마들이 쓰는 시간도 늘려갔다.

오랜 기간 육아만 하다가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너무 갖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했지만, 먼저 아이와 서로 독립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미안해하고 나약한 마음을 갖게 되기 십상이다. 나도 처음엔 아이와 떨어져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차 품앗이하는 집에서 인사를 나누고 문 닫고 뒤돌아 나오면서, 책임있게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아이들을 품고 지켜보는 이모삼촌들이 있기에 나는 활기차게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고, 또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7개월 동안 품앗이하며 섞여 지내는 삶을 경험했기에 이후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도 마음 모아 결정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서로 의지하여 적응해서 손잡고 씩씩하게 산으로 산책 다니는 아이들이 대견했다. 늘 같이 사는 것마냥 친구, 이모 이름이 수시로 등장하고, 만났을 때에는 물 만난 고기처럼 기운이 상승한다. 지금도 마을 여러 곳에서 이웃들과 뜻 모아 육아품앗이를 하고 있다. 올해 세 살 된 아이들이 서울 인수마을에서 '도토리집' 공동육아를 준비하며 종일품앗이를 시작했고, 홍천마을에서는 '완두콩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세 살부터 다섯 살까지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있다. 마을로 사는 삶 속에서 맺는 관계망에 대한 기대, 더불어 크는 아이들을 보는 감사함이 있기에 시도할 수 있는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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