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처음 느낀 그 맛
식구들과 도란도란 함께 담그는 매실효소
싱싱한 매실이 도착했습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매실을 처음 만난 건 2년 전 초겨울이었습니다. 제겐 아직 낯선 사람들 속에서 함께 나누는 간식으로 매실을 처음 맛보았습니다. 더 즐겁고 풍성한 삶을 살고 싶어 마음을 다잡고 마을공동체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사람들도 조금 낯설었지만, (매실효소를 담고 건져낸) 매실알갱이도 제게는 생소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제가 먹던 간식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죠. 먹어보라 권하지 않았다면 손이 안 갔을 그 매실 알갱이는 아마 제가 거의 대부분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맛있었거든요.
알갱이를 하나하나 마른 헹주로 깨끗이 닦습니다.
매실을 먹는 것조차 낯설었던 제가 처음으로 매실효소를 담갔습니다. 물론 혼자서는 아닙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친구들, 지금 한 집에서 함께 먹고 놀고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자는 동생들과 했습니다. 40kg 매실효소가 혼자 사는 이에게 필요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마른 헝겊으로 매실 알맹이 하나하나 닦아내고 병에 담는 일은 힘이 들기도 하고 재미있는 일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이들과 도란도란 앉아 수다를 떨며 웃으면, 매실 꼭지를 따고 유리병에 매실과 설탕을 담는 일은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면, 매실 담그는 일은 매년 이맘 때 꼭 하려고 맘먹게 되는 즐거운 수고가 됩니다. 지난해에는 매실을 너무 조금 담그기도 했고 일찌감치 다 먹어버려서 다시 매실 담글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속 불편할 때나 몸살 날 때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고, 요리할 때 넣고, 손님 오면 차로 대접하고 하다보니 금세 동이 난 거지요. 마을 이웃들이 조금씩 나눠주긴 했지만, 매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올해에는 큰 맘 먹고 40kg을 주문했습니다. 효소는 오래 두고 먹을수록 좋다고 하니, 빨리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비정제 설탕과 뜨거운 물로 소독해서 말린 항아리와 유리병를 준비했습니다.
방 식구들과 마루에 둘러앉아 매실 열매를 깨끗이 닦으며 마음도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연스레 매실처럼 자기 삶을 닦게 해주는 이야기들도 나옵니다. 매실이 준비되면 설탕도 매실과 같은 무게로 부어 넣습니다. 그렇게 다 담긴 매실을 보면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때로는 소화제로 쓰이는 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마운 일이 있을 때 건네는 선물이 되기도 하는 보물이니까요. 더욱이 자연과 우리 손으로 만든 맛있는 음료와 간식을 가졌으니까요. 그러나 단지 매실효소가 그런 기분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매실효소를 함께 담그고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자는 친구들, 자신의 신념대로 우직한 일상을 채워가는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은 더 큰 보물입니다. 자는 시간 쪼개가며 공부하는 친구 덕분에 저 또한 필요한 공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하게 됩니다. 또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무척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 아침에 큰 어려움 없이 일어나게 되고 때론 운동을, 때론 아침 밥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사는 이들이 일찍 하루를 시작해서 덩달아 저도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실과 설탕이 효소로 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100일입니다. 추석 즈음이 될 것 같은데요. 매실 병을 개봉할 때의 설렘과 기쁨으로 이번 추석은 더욱 풍성할 것 같습니다. 유리병 속에서 숙성되어가는 매실처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삶도 성숙해가길 기대합니다.
유리병과 항아리에 설탕과 골고루 섞어줍니다.
100일 동안 숙성시키면 새콤달콤한 매실효소가 됩니다.
조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