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부리던 된장남, 맛 부리는 된장남 되다
무엇보다 간편해서 좋았다. 전자레인지에 한 오분 돌려 전기밥솥에서 뜬 밥에 얹어주기만 하면 한 끼 준비 끝. 먹고 설거지까지 30분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으니. 30분가량은 아껴 '자기계발'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도시 자취생이었던 나에게 끼니는 때워야 하는 것일 뿐, 밥상을, 몸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몸에 좋다는 된장은 또 그렇게 싫어했다. 그 식감이, 맛이. 먹고나면 콤콤한 냄새가 배는 된장,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요리는 고사하고 된장으로 소문난 식당에서도 김치찌개를 시키곤 했던 나. 몸에 좋다고들 하지만 된장은 내 입엔, 내 장엔 안 받는 음식이라고 생각던 나. 인스턴트식품을 즐기고 된장은 냄새조차 싫어하던 내가 어쩌다 된장요리 즐기는 '된장남'이 되었을까?
밥상보다 '끼니'였던 도시자취생에서
▲ 서로를 위해 맛깔나게 밥상을 차려주는 형들 덕분에 무뎌졌던 미각을 깨우고 함께 사는 맛을 알아간다.
삶에서 감사가 넘치던 형들 넷과 '아궁이'라고 이름 지은 공동체방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레 '밥상'을 새롭게 만나게 된 것 같다. 내가 형제방으로 이사해서 들어갔을 땐, 각자 퇴근시간이 달라서 저녁에 다같이 얼굴 보기가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매일 아침식사를 함께하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설정한 시기였다. 돌아가면서 아침식사를 준비했는데, 한 형이 된장국을 끓이는 걸 즐기셨다. 그리고, 맛있었다. 신기하게 먹을 만했다. 감자 넣고 끓인 된장, 해물된장, 야채가 듬뿍 들어간 된장 등 종류도 다양했다.
'어라, 된장이 이렇게 깔끔한 맛이었나?' '텁텁한 게 아니라 구수한 것이었군!' 자주 맛있게 먹으며 된장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바꿔갔다. 된장과 극적 화해를 넘어 로맨스로 이끈 건 요리였다. 된장과 새롭게 만나던 그날이 생생하다. 육수를 우린 물이 적당히 끓어 감자, 시금치, 파 송송 썰어넣고 된장을 넣었다. 뚜껑을 덮고 한소끔 끓인 뒤 맛을 보려고 한 숟갈 떠서 혀에 적셨다. '어, 이 맛이 아닌데?' 당황하여 소금, 국간장 등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다 넣었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왜 녀석이 맛을 못 낼까?' 국냄비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아니, 된장 한 덩이가 시금치 밑에 다소곳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반갑던지! 된장을 잘 풀어준 뒤 푹 끓이니 구수한 된장 맛이 났다. 나도 이런 맛을 낼 수 있구나 싶었다.
함께 사는 맛을 발견하다
괜찮은 장만 있으면 실패확률이 적은 음식이기에 된장과의 만남은 자연스레 잦아졌다.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 깊은 맛을 단번에 구현해주다니, 구원투수와 같은 중요한 녀석이었다. 보기도 먹기도 싫어 안 넣었으면 했던 멸치와 다시마가 육수계의 특급 투톱이었다니. 다 차려진 밥상을 아무 생각 없이 받기만 할 땐 몰랐던 것들이다. 과정을 몸으로 이해하며 음식이 혀에 닿을 때의 미각도 더 섬세해졌다. 이건 후추를 좀 쳤군, 진간장인가, 황태를 넣었나, 바지락 맛인데, 복잡하게 통합된 맛 속에서 세밀한 각자의 맛들을 선별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채롭게 펼쳐진 맛들과 하나씩 인사하며 음미하는 느낌이었다. 독특하던 각자의 맛이 엉키고 혼합되어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게 새삼 놀랍게 다가오기도 했다.
미각과 더불어 '함께 사는 맛'도 새롭게 깨달아간다. 아침 일찍부터 공동체방 식구들을 생각하며 정성껏 된장 풀던 형들의 구수한 뒷모습. 그 뒷모습을 통해 된장에 대한 애정과 살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으리라. 혼자 살았다면, 삼분요리를 끼고 살았다면, 버튼 하나로 지폐 한 장으로 차린 밥상만 받아먹으며 지냈다면 느끼지 못했을 '맛'이다. 이제 자신 있는 요리가 뭐냐 라는 질문에 '된장국'이라고 대답하게 된다. 된장 한 덩이 냉장고에 있으면 든든하다. 된장에 대한 놀라운 인식의 변화다. 이런 변화를 체험하며 개인의 인식의 오류는, 함께 할 때 더 충일하게 극복됨을 느끼게 된다. 된장 한 스푼 정성 없이 풍덩 넣는 것이 아니라 밥상 함께 나눌 형들 생각하며 한콩한콩 정성껏 푸는 뒷모습, 이제 제가 보여드릴께요.
김승권 | 사회에 대한 여러 질문과 새로운 꿈을 품고 사는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