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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불가능하지 않다
평화협정 이후를 전망하며

남과 북, 동북아에 모처럼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휴전협정 65주년, 종전조약으로 갱신할 수 있을지, 평화협정이 맺어질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우리는 그동안 분단과 전쟁으로 고통당해왔다. 이젠 끝내야 한다. 어떻게 평화를 일구어갈 수 있을까? 칸트는 그의 책 <영구평화론>(1795)에 ‘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는 평화에 관한 논의를 현실성 차원이 아닌 가치의 문제, 목표의 문제로 일단 한정 짓고 있다. 논리적 전략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평화를 설득해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영원한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칸트가 보기에 영원한 평화의 최대 위기는 너무나도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영구평화론>은 예비조항, 확정조항, 추가조항과 부록으로 구성된 짧은 논문이다. 예비조항에서 전쟁 방지에 관한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상비군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눈에 띈다. 군대 없는 세상에 전쟁이 있을 리 없다. 칸트의 예비조항에 전쟁 무기를 사거나 팔 수 없다는 조항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쟁을 통해 어떠한 이익도 취할 수 없도록 하는 금지조항을 추가하면 어떨까?

1.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은 어떠한 평화조약도 결코 평화조약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2. 어떠한 독립국가도 상속, 교환, 매매 혹은 증여에 의해 다른 국가로 전락할 수 없다.
3. 상비군은 조만간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4. 국가 간의 대외적 분쟁과 관련하여 어떠한 국채도 발행해서는 안 된다.
5.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와 통치에 폭력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
6. 어떠한 국가도 다른 나라와의 전쟁 동안에 장래의 평화 시기에 상호신뢰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 틀림없는 다음과 같은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여섯 차례나 반복되는 ‘안 된다’라는 표현은 칸트가 얼마나 확고하고 처절하게 전쟁을 반대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칸트는 1789년 프랑스혁명 과정을 관심 가지고 지켜보았고, 전쟁을 반대하는 프랑스헌법에 감동받기도 했다.(‘프랑스 인민은 정복을 목표로 삼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포기한다. 프랑스 인민은 다른 어떤 인민의 자유에 대항하여 프랑스 인민의 힘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상황은 칸트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칸트의 조국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 스페인과 프랑스 혁명상황에 개입하며 1792년 프랑스와 전쟁에 돌입했다. 초기에는 프랑스가 불리했으나 프랑스의 반격으로 전세가 뒤집히고 1795년에 바젤조약을 맺기에 이른다. 이 조약으로 프로이센은 사실상 프랑스 혁명정부를 인정하게 되었고 또한 10년간 중립을 지킬 것을 약속하게 된다. 조약에는 라인강 지역의 프로이센 영토를 평화가 회복될 때까지 프랑스의 점령 하에 맡긴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라인강 지역의 프로이센 영토를 프랑스에 양도한다는 비밀조항이 달려 있었고, 이 비밀조항이 알려지게 된다. 전쟁에 이어 전쟁이 벌어지고, 전쟁의 빌미와 명분이 도처에 있는 상황, 칸트의 윤리적 고뇌는 깊어져갔다.

평화란 ‘전쟁의 폐허’ 위에서나 가능한 것인가? 모두가 치명적 피해를 입어 더 이상 전쟁할 힘도 없는 상태에서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평화란 ‘자유의 무덤’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강력한 제국에 종속되어 굴종의 대가로 누리는 평화 또한 평화가 아니다. 힘에 의한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 칸트는 확정조항을 통해 평화의 가능조건을 제시한다.

1.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체제는 공화정이어야 한다.
2.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체제에 기초하여야 한다.
3.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의 조건들에 국한되어야 한다.

평화를 일구는 첫 걸음이 공화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공화정에서는 전쟁 여부를 시민들 전체가 결정한다. 시민들은 전쟁의 책임과 폐해를 감당해야 하기에 전쟁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지배자의 신민이 아니라면 어느 시민이 감히 전쟁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지배자의 보잘것없는 이유, 한낱 유희로 전쟁이 결정되어 왔었다고 칸트는 폭로한다.

칸트는 국가들 간의 평화가 국제연맹 혹은 평화연맹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 국가가 전쟁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이어서 다른 국가들도 약속하면 되는 것이다. 강력하게 계몽된 시민들이 공화국을 형성하게 되면, 이 공화국이 다른 국가들과 평화연맹을 맺으려 할 것이다. 한번 평화연맹이 맺어지면 점차 연맹은 강화되고 확장될 것이다.

칸트에게 평화의 출발점은 좋은 국가 체제(공화정) 아래서 기대되는 국민들의 집단적 도덕성이었다. 개인들은 흔들릴 수 있으나, 밝게 깨어 있는 이성으로 개인들의 일반의지를 구현한 법률, 법의 강제력이 있다면 평화로 가는 길이 반드시 열린다. 이때 가장 큰 장애물이 정치적인 도덕가라고 칸트는 말한다. 이들은 근원적으로 정치와 도덕이 대립하고, 정치는 정치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외의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갈 수 있는 길은 정치적 준칙을 따라 똑바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집단적인 단호함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평화를 일구고자 한다면, 일단 논리적으로 목표(가치)의 차원과 현실성(실현가능성)의 차원을 구분해야 한다. 자칫 ‘평화는 좋으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구할 수 없다’는 식으로 흘러버릴 수 있다. 영원한 평화는 너무나도 절실한 가치이며 인류가 함께 추구할 가치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현실성 있느냐 없느냐는 구체적인 상황을 전제로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영세중립국으로 오랜 세월 동안 평화를 유지해온 사례(스위스, 오스트리아, 코스타리카)가 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평화가 목표이지만 종착점은 아닐 것이다. 평화 이후의 전망 또한 함께 구상해가야 한다. 칸트는 입법의 시대를 살았고, 계몽이성의 결론이자 일반의지의 종합을 법률화하는 것에 기대를 걸었다. 남과 북, 동북아 지역의 평화 논의는, 입법 이상을 전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입법의 무력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칸트가 권력의 견제와 분화를 입법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면, 우리 시대는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균형과 비위계화, 지방권력의 세분화와 자립적 단위의 생성 정도로 구상할 수 있지 않을까? 칸트가 자유로운 개인과 자립적 국가만으로 설정한 것을 그 사이에 마을을 놓을 수 있지 않을까? 마을을 기본단위로 한다면 개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국가를 전제할 수 있고, 공화정을 내용적으로 채우고 국가 간의 평화연맹을 추동해갈 수 있지 않을까? 마을공화국을 미래전망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인곤 | 머리로 생각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성장해가는 청년, 20대부터 마을공동체운동 참여하면서 청년, 역사, 평화에 관심 가지며 생기발랄하게 살고 있다. 이제 곧 마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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