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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어 우리는 함께 자라간다
집 떠나와 함께 지내보고, 방학 때도 모여서 배우고 놀고


집을 떠나 또래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을 누비며 배우는 들살이. 1월 8~10일 홍천 밝은누리움터에서 청량학교 어린이 겨울들살이가 열렸습니다. 초등학생 열두 명이 2박3일 동안 부모님 품을 떠나 또래들과 함께 놀고, 밥 먹고, 생활했습니다.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린 이번 겨울이었지만, 신발이 다 젖도록 눈놀이하고, 잎새 떨군 나무들이 꿋꿋이 겨울 나고 있는 뒷숲 한 바퀴 돌면서 아궁이 불 피울 잔가지도 한 아름씩 주워왔습니다.

지난 여름들살이와 이번 겨울들살이 때 부모님 없이 처음 자본 어린이도 있고, 친구들과 자는 게 너무 좋아서 들살이를 더 길게 하고 싶다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사흘 동안 함께 먹고 자고 하면서 서로 한결 가까워지고, 낯설고 불편했던 공동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져서, 헤어지는 날은 너무 아쉬웠습니다. 자기 옷가지와 물건 잘 챙기기, 뒷사람 배려해서 신발 가지런히 놓기, 문 닫고 다니기, 자기가 먹은 그릇 스스로 설거지하기… 자꾸 까먹을 때마다 잔소리쯤 해줄 수 있는 사이도 된 듯합니다. 밝은누리움터에서 배우며 가르치며 지내는 이모삼촌들과도 오며가며 마주치고, 밥상에 오는 아가동생 한얼이도 돌아가며 안아보고, 터전을 지키는 동물식구들에게 먹이도 주고, 뒷간에서 밭거름이 될 내 똥오줌도 확인하고, 여러 모양새로 살아있는 것들의 숨결을 만나고, 마을의 삶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청량학교는 병설유치원 포함 전교생 스물한 명인 농촌지역 작은 학교이지만, 마을이라는 너른 품에서 우리집 아이 남의 집 아이 구별 없이 ‘우리 아이들’이 활기차게 자라가는 배움터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또래들과 함께 어우러져 배워가는 배움터, 아이들 자람새에 맞게 몸과 마음 힘 골고루 길러가는 배움터, 가정 울타리를 넘어 마을 어른들이 삶으로 가르치며 함께 성장하는 배움터, 농촌지역 작은 학교 살리며 마을공동체를 일구어가는 배움터, 우리 마을 둘레 자연들을 마음껏 누비며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배움터, 한 마을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길러가고자 뜻을 모은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23일에는 한 해 동안 배워온 배움을 갈무리하는 갈무리잔치도 했습니다. 우리 삶과 모습을 담아 노랫말을 바꾼 노래, 노래에 멋진 몸짓이나 화음 넣어 연습한 노래, 한 음 한 음 나눠 맡아 들려주는 손종(핸드벨) 연주 등, 어린동생들부터 큰언니오빠형누나까지 여럿이 함께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혼자만 잘할 필요도 없고, 또 누구 하나 좀 못하더라도 함께 어우러지면 충분히 아름다운 소리가 되고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는 걸 아이들도 몸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이들 자람새를 지켜보는 한 마을 사람들은 교실 가득 모여 학생들을 응원해주었습니다. 한 해 동안 지내온 모습들을 사진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봄에 친구네 놀러가서 야생화 구경하고 화전 부쳐 먹었던 날, 도시락 싸들고 생태숲으로 나들이 갔던 것, 여름방학 때 들살이하며 함께 밥 먹고 잠 자고 물놀이 했던 시간, 학교에서 요리 해먹고 밤하늘 공부하고 별 보기 했던 날, 주말마다 꾸준히 연습해온 택견을 큰 무대에서 공연으로 보여줬던 것 등등, 사진에 담겨진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소중한 기억으로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행복한 배움의 장을 펼쳐줬고, 아이들은 신나게 어울려 배우며 넘치는 생명력으로 이만큼이나 자라줬고, 서로서로 고마운 마음이 가득 깃드는 날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돌봄의 사각지대가 생기기 쉬운 방학 동안에도 배움터는 열렸습니다. 점심은 부모님들이 서로 날짜와 차림을 나눠 품앗이로 밥을 지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뜻 모아 아이들을 함께 길러가는 것과 밥 한 끼라도 건강한 먹을거리를 나누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음만 잘 모아지면, 함께 할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든 오빠형의 졸업식에서 선사할 축하공연과 그림작품도 준비했습니다. 청량리에서 서예와 서각을 가르치시는 김장수 어르신을 모셔서, 할아버지께서 겪어오신 인생 이야기며 명심보감 이야기도 듣고, 직접 서예를 배워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흔쾌히 초대해주신 친구네 집 뒷마당에서 볼 빨개지도록 신나게 눈썰매도 탔고, 불 피워서 속 노랗게 구운 고구마도 호호 불며 먹었습니다.


마을공동체를 토대로 농촌 작은학교에서 배움터를 꾸려가는 젊은이들, 통폐합 위기에 놓인 학교를 살려가는 젊은 귀농귀촌인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격려해주시는 마을사람들이 뜻을 합치니, 시골 작은학교에 큰 배움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제 올 한 해 동안 청량배움터에는 또 어떤 나날이 펼쳐질까요? 청량배움터를 꾸려가는 주민교사들은 또 머리를 맞대고 서로 나눠 맡을 수 있는 역할, 힘 모아 벌일 수 있는 큰일을 찾아 중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서석온마을배움터 누리집 http://cafe.daum.net/onmaeul

소란 | 함께 어우러져 행복한 삶을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신문을 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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