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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어야 잔치가 산다
함께 사는 마을이 없어지며 덩달아 사라진 잔치

하루에 오곡밥 아홉 번 먹기. 꼭 매끼를 다른 집에서 먹기. 그러면 복이 온단다. '정월대보름에는 성姓이 다른 세 집 이상의 밥을 아홉 번' 먹어야 한다는 게다. 전통 농경사회가 씨족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친척끼리만 말고 이웃집에도 가라는 말이다. 이 날은 낮에는 밥을 얻어먹느라, 밤에는 노느라 바빴다.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을 기점으로 겨울이 끝나고 농사 준비가 시작된다. 놀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마을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연을 날리고 줄다리기를 했다. 달 뜰 때를 기다려 달집을 태우며 소원을 빌었는데 이때 갓 혼인한 사람이 불을 피우게 했다. 아이가 생기기를 기원해서다. 마을을 돌아보아 누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을까 숙고했을 마음이 전달된다. 정월대보름에는 함께 놀면서 겨울철 부족해진 영양을 보충하고, 풍년을 기원했다. 혹 살면서 이런저런 일도 서먹해졌어도, 너나없이 어울리면서 마음을 풀었다.

저 살기 바빠 더 이상 함께 놀지 않아

누군가 속 썩이면 안 보고 마는 건, 오늘날 마을잔치가 사라져서가 아닐까. 잔치를 열기에 시골은 사람이 너무 없고, 도시는 제 살기 바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특별한 날이라고 알리고 싶지 않다. 각자 하는 일과 삶의 리듬이 다른데 그걸 무시하고 나만 신난다고 시끄럽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다. 진득하게 붙어 있으면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를 보아주고, 삶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의 의미를 읽어줄 관계를 잃었다. 그건 한 마을에서 한 평생 살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학군이 좋은 곳으로, 부동산 시세가 오를만한 곳으로 이사하면서다. 바쁘게 살다 문득 돌아보니 놀 사람이 없다. 그 자리를 이벤트 회사가 차지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큰일을 누구와 어떻게 치르나. 이 고민을, 자본이 정확히 읽었다.

사람은 없고 돈이 주인이 된 잔치

간편해졌다. 예식, 돌잔치는 전문 장소에서,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그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 대신 무엇을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된다. '스드메'라 불리는 깔끔한 표를 펼쳐놓고 고심 시작. 스튜디오 촬영+드레서 대여+메이크업 패키지를 가리키는 '스드메'는 다양한 선택폭을 제공한다. 식장을 꾸밀 때 조화로 할지, 생화로 할지 결정한다. 반주는 피아노 단독에서 바이올린과 첼로가 가미된 트리오로 바꿀 수 있다. 잔칫날 팡파르가 울려야 한단 말에 심란해지면 호른, 트럼본 등이 들어간 금관 5중주를 고르면 된다. 물론 추가금액이 따라 붙는다. 돌잔치는 더 단순하다. 부부와 아기의 옷, 돌상, 성장 사진, 돌잡이 진행 등이 패키지다.

자본이 주도하는 잔치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드러난다. 대부분은 겉치레를 위한 것. 돌잡이에 나오는 것은 판사봉·청진기·마이크·골프공. 혼례 장소는 호텔이나 적어도 궁전 모양을 한 건물, 기념 사진은 최대한 연예인처럼 화려하게, 신혼여행은 적어도 해외. 그렇다 보니 돈이 없으면 잔치를 못한다는 걱정이 팽배하다.

우여곡절 끝에 잔치를 열어도 주인공들이 뒤로 빠져 있다. 만약 신랑신부가 결혼식에서 무얼 하나 넣거나 빼려 하면 절차가 복잡해진다. 전례가 없는 것은 돈으로 계산되어 있지 않아서다. 신랑신부가 그날의 주인이라도, 예식장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편하다. 돌잔치는 진행자가 하는 대로 흘러간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무리한 발언을 하거나, 참여한 사람에게 즉석에서 돈을 꺼내 아이에게 주라고 해도 그대로 따를 뿐.

초대받은 사람은 관람객 역할만 해야 한다. 상상해보라. 그 옛날 가나안에서처럼 식장에 포도주가 떨어졌고, 손님 중 누군가 마침 더 좋은 포도주를 가지고 있어서 대량으로 내놓았다. 음식업체에서는 왜 계약을 어기고, 다른 포도주를 내놓았냐며 항의할테고 식장이 어수선해질 것이다. 잔치의 주인공들을 다른 방법으로 축하하고 싶어도 부디 자제해야 한다. 그 마음은 축의금이나 돌 반지로만 할 것. 이것이 오늘날 돈 잔치의 불문율!

돈 잔치는 생채기를 낸다. 함께 기뻐하기보다 '일'로 삼은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는다. "그것보다 이게 나아요" 해서 따랐더니 빡빡한 청구서가 날아온다. 자기도 모르게 하객수과 축의금을 계산하고 있다.

한바탕 어울려 놀기를 잘했던 우리는 어느새 노는 법을 잊어 버렸다. 좋은 날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꾸릴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그 날을 맡기고, 내 일같이 여기지 않는다고 상처받는다. 어떤 이는 잔치를 열고 싶지만 남 따라하려니 돈이 없고, 다르게 하려니 방법을 몰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다. 좋은 날, 축하하고 축하받는 잔치를 함께 열 마을이웃, '그 이웃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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