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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잔칫상 둘러앉으니 풍성
나와 너의 몸을 지켜줄 먹거리로 함께 나누는 잔치의 맛

마을공동체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흥겨운 한마당에 잔치음식이 빠질 수 없다.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잔칫상에도 고스란히 올라간다. 천편일률적으로 파는 음식, 콜라·사이다로 더부룩함을 달래야 하는 음식이 아니라, 나와 너의 몸을 해치지 않는 건강하고 담백한 먹거리를 선택하고, 과하지 않고 소박하게 차려낸다. 그래도 마을사람들이 정성어린 손맛을 담아 함께 둘러앉으면 한층 맛깔나고 푸짐해진다. 맛있는 건 같이 먹어야 제 맛인 줄 아는 이들이기에 이웃들과 더 좋은 음식을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다. 마을경사일에는 이제 갓 밥을 먹기 시작한 어린아이, 생명을 잉태했거나 아기를 키우는 사람, 몸 아픈 사람 등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남녀노소 한 자리에 어울려 잔치의 진수를 음미한다.

신랑각시 친구들이 손수 국수 말고 비빔밥 준비

“후루룩 후루룩 쩝쩝.” 혼인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이 면발을 맛본다. 한 마을에서 알고 지내다 짝을 이뤄 이날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는 축하해주러 온 이들에게 국수 한 그릇씩 대접했다. 국수는 기다란 면발처럼 오래 잘 살라는 의미로 예부터 잔칫날에 꼭 나오던 음식이다. 화려하고 고급스런 뷔페에서 몇 접시 돌려야 축의금 본전 뽑는다고 여겨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지단고명 올린 국수 한 그릇이라니,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장소도 자신들이 만날 친구들과 밥을 먹던 마을밥상을 빌렸다. 정겨운 잔치로 진짜 ‘국수 먹여준’ 신랑각시 이쁜 마음에 감동 받은 이들은 별미에 국물까지 기분 좋게 들이켰다. 이날의 주방은 마을에서 잘 알고 지내던 칼국수집 아주머니께 부탁드렸다. 솜씨 좋은 아주머니 진두지휘로 사전에 도우미를 자청한 신랑각시 친구들이 곁에서 척척 국수를 같이 말았다. 아주머니는 지금도 마을에서 신랑각시를 만날 때마다 흐뭇하게 내 자식처럼 안부를 물어보신다. 좋은날 함께 나눈 국수발 길이만큼 부부의 사랑도 깊어지리라.

혼인잔치 음식으로 비빔밥을 내놓은 부부도 있다. 산뜻한 봄철에 한 몸을 이루었다는 의미를 담아 다채로운 푸성귀며 산채를 듬뿍 올려 쓱쓱 비벼 드시도록 상차림을 했다. 이 또한 마을사람들이 힘 모아 직접 장봐서 재료 다듬고 요리했다. 음식 장만으로 혼례식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결혼 선물이자 마을사람들과 뜻 깊은 잔칫상을 나누고자 뒤에서 보이지 않게 수고한 친구들의 헌신이 아름다웠다.

정초에 혼인한 동갑내기 신랑각시는 혼례잔치 날, 새해를 시작하는 때에 걸맞게 마을사람들과 뜨끈한 떡국을 나눴다. 명절음식인 도라지무침과 동태전이 상마다 한 접시씩 놓였다. 한 상에서 찬을 같이 나누는 건 한 마을에서 서로 가깝게 믿고 지내는 사이에나 부담스럽지 않는 일이다. 장소는 마을학교 공간을 빌려 다들 편안하고 여유롭게 피로연을 즐길 수 있었다.

올해 수유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친구 두 쌍이 나란히 강원도 홍천에 귀촌하여 살림을 차렸다. 이들은 홍천마을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웃으로 살고 계시는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직접 끓인 국수를 대접했다. 조촐하게 열린 두 번째 혼인잔치였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와서 좋다고 반가워 하셨고, 갓 귀촌한 젊은 부부들은 주민들과 한층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이가 나고 자란 밥상에서 나누는 돌상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마을밥상이나 찻집에서 돌상을 받는다. 밥상은 젖먹이 키우면서 집에서 상차리기 어려운 엄마들이 알찬 식단으로 천천히 꼭꼭 씹어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엄마가 건강식을 먹는 동안 이모삼촌들이 아기와 놀아주고, 아기는 밥상 된장국을 곁들인 이유식으로 입맛을 익히며 쑥쑥 자란다. 얼마 전 첫 생일을 맞은 아기를 위해 이웃들이 정성들여 현미설기떡을 쌓아올리고 콩으로 앙증맞게 단장한 돌상을 선사하기도 했다. 밥상과 찻집을 오가며 태어날 때보다 훨씬 건강해진 아기의 생명력을 고백하는 엄마아빠의 편지 낭송을 같이 들으며 제 자식 일처럼 눈시울을 붉힌 이웃들도 있었다.

마을잔치에서는 음식도 평소 밥상에 올리는 소박하고 정갈한 먹거리들로 채워진다. 우리 일상을 벗어나려는 잔치는 일상을 초라하게 만들지만, 일상과 조화를 이루는 잔치는 일상을 빛나게 한다. 음식이 오기까지 무수한 손길과 자연의 노고를 기억한다면, 생명의 기운이 향긋하게 버무려진 하루하루의 밥상을 잔칫상처럼 대할 수 있으리라.


글 임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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