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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게 울고 웃는 마을잔치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이웃과 더불어 삶이 흥겨워지는 마당

마을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잔치의 연속입니다. 누군가 나고 자라서 성장의 기점을 맞고, 배움을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일터를 잡거나 가게를 열고, 연분을 만나고 혼례를 올리고, 생명을 품고, 새로운 이웃을 환영하고, …. 둘러보면 기념하고 축하할 일이 무진합니다. 이때마다 마음보다 돈을 들이고 우리를 만족시켜줄 생판 모르는 외부인을 사서 각종 이벤트로 채우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사람의 잔치, 마을의 잔치가 아니라 돈의 잔치를 마주쳐야 할 때 씁쓸해집니다. 마을은 잔치를 온전히 회복하는 관계입니다.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이웃과 함께 삶이 흥겨워지는 마당입니다. 30호 마을신문 표지이야기는 마을잔치입니다. 사람 냄새 나는 마을잔치를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잔치는 주인공뿐 아니라 참여하는 이가 모두 함께 새로워지는 시간이다. 새로워진 나를 지켜봐주는 이가 있다는 건, 더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그래서 축하하는 사람과 축하받는 사람 사이에 책임 있는 관계가 맺어지는 자리다.

마을에서는 새로운 이들이 공동체로 찾아와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시작할 때 다함께 환영하는 잔치를 벌인다. 부모님께 의존하던 집이나 홀로 지내던 곳, 습성대로 혹은 어쩔 수 없어서 생활해온 방식을 떠나, 마을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함께 지켜봐주며 축하하는 시간이다. 새롭게 태어난다고도 할 수 있다. 잔치에 앞서 그 주인공은 마을사람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여 지나온 인생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떠한 의무감 없이도 백여 명이 좁게좁게 모여 앉아 화자와 눈을 맞추며 한 생명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데 집중한다.

인생길 이야기는 함께 살아갈 이들에게 자신을 투명하게 열어 보이는 시간이기에 꾸밀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듣는 이도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가벼운 연민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함께 들은 이들은 짤막한 엽서에 마음을 담아 그이에게 포옹이나 악수와 더불어 건넨다.

이제 한 공동체가 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를 마을로 함께 살아가도록 해준 힘과 은총에 감사하며 기쁨을 나누는 축제를 벌인다. 소망과 격려, 다짐과 당부가 어우러지는 한마당이다. 마을사람들은 참신한 재치를 발휘해 축하공연을 선보인다. 개인의 예술적 기량을 뽐내기보단, 여럿이 팀을 꾸리고 여러 날 호흡을 맞춰 멋진 한판을 만들어낸다. 주인공 정황에 맞게 기발하게 개사한 노래는 한동안 마을 아이들에게 유행가가 되기도 한다. 나이 불문하고 기꺼이 몸을 사리지 않고 재미와 진한 감동을 선사하니, 주인공도 어설프나마 진심 어린 공연으로 보답한다. 배꼽 빠지게 웃다가 감격에 겨워 울다가 하면서 잔치를 통해 든든한 하나가 된다.

얼씨구, 잔치는 저렇게 놀아야지

“얼씨구, 잔치는 저렇게 놀아야지.” 올 여름 열린 마을 혼인잔치에 축하해주러 오신 손님 한 분이 뒷자리에서 추임새를 외친다. 무대에 선 신랑각시 친구들이 우리 장단에 맞춰 ‘남생아 놀아라’로 하객들과 같이 흥을 돋우며 슬슬 부부를 원 가운데로 몰아넣는다. 앞소리로 '신랑아 놀아라'를 매기고 하객들이 ‘촐레촐네나 잘 논다’로 받으니, 신랑이 처음엔 쑥스러워 하다가 이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어 보인다. 이어서 여지없이 ‘각시도 놀아라’ 하자, 기다렸다는 듯 각시도 두 팔을 들고 활짝 웃으며 들썩들썩 춤춘다. 편안한 생활한복을 입은 신랑각시는 즉석에서 생생하게 기분과 표정을 드러내며 예식을 즐긴다. 잔치에 주와 객이 따로 있지 않다. 하객들은 무릎을 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이어서 마을학교 학생들이 열심히 연습한 축하 공연을 펼친다. 신랑이 마을학교 기숙사 생활교사로 만나왔던 학생들은, 그동안 선생님과 같이 먹고 자고 일상을 공유하며 끈끈하게 쌓인 우정, 자신들이 기침감기로 잠 못 이룰 때 옆에서 밤새 돌봐줬던 시간, 청소년기 질문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거나, 애정 서린 잔소리로 혼내주던 나날을 떠올려 노래 가사에 담았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선생님이 결혼하고 잘 살아가나 지켜보는 관계가 되었다.

혼례잔치는 마을의 일상이 확장되는 공간이다. 장소도 가까운 구민회관이나 학교 강당을 저렴하게 빌려서 한다. 부모님과 외부에서 오는 하객들을 배려한다며 교통 편한 도심 한가운데 어색한 예식장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마을로 모셔서 잔치 주인공과 이웃들이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소개해드리고 흥겨운 한마당을 함께 느껴보자고 초대한다.

마을잔치에선 품앗이가 빛을 발한다. 혼례를 앞둔 두 사람은 마을에서 먼저 가정공동체를 이룬 선배 부부들에게 찾아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고, 예복을 물려받거나, 준비과정을 나누고 조언을 듣기도 한다. 둘의 만남을 곁에서 지켜봐온 이웃들은 짜임새 있는 마을잔치를 기획해 역할을 나눈다. 잔치에서 역할을 맡은 이들은 출퇴근하고 살림하고 바쁜 주중에도 짬을 내어 몇 번씩 모여서 머리를 굴리고 실전처럼 맞춰 보는 번거로움도 감수하면서 기꺼운 마음으로 준비한다. 재능과 일머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재밌게 일할 때 드러나는 법이다. 힘 모아 경사를 치르고 나면 그네들끼리 나눌 이야기가 또 많을 것이다.

아이 키워주셔서 고맙다고 떡 돌리기

마을에선 매년 새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한 해 동안 아기들 여섯이 또래로 태어난 적도 있다. 올 가을에도 엄마 뱃속에서 꼼지락대며 세상에 나올 채비를 하고 있는 태아들이 셋이나 된다. 자연히 아기의 잉태를 이웃들에게 알리는 때, 출산한 날, 삼칠일과 백일, 돌 등 기념하고 축하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내 아이 남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로 마을의 아기로 함께 품고 키우기에 마을 돌잔치는 가족모임이 아니라 모두 함께 누리는 잔치가 된다.

아기는 한 해 동안 커온 모습을 지켜본 이모삼촌들과 형님들의 축하를 받고, 부모는 함께 살아가는 마을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넓은 창으로 예쁜 정원이 보이는 마을찻집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조촐하게 축하공연도 펼친다. 어른 중심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아기에게 익숙한 곳에서 아기의 리듬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길지 않게 마친다.

얼마 전 열린 돌잔치 날엔 엄마와 같이 모임을 해왔던 이모들이 손수 동글동글한 수수팥떡을 만들어 나누기도 했다. 다른 이모삼촌들은 아기가 살아갈 삶에 대한 소망을 담아 특별한 돌잡이를 보여줬다. 주인공 아기 앞에는 숟가락과 밥그릇, 보온병, 손 조각상, 나무자석 세트, 장난감 악기가 놓였다. 숟가락과 밥그릇은 밥 잘 먹고 잘 자라서 남에게 밥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보온병은 뜨거운 열정을 품으라고, 손 조각상은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라고, 나무자석 세트는 혼자도 잘 놀고, 함께도 잘 놀라고, 장난감악기는 음악처럼 신명나게 살라고 하는, 사물에 대한 창조적 해석이 잔치에 재미를 더해줬다.

일상에 새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밥상

아름다운마을밥상은 매일 잔치가 일어나는 곳이다. 밥상에 오순도순 둘러앉은 이웃들이 내 정다운 식구들이다. 식구들이 밥상에서 기다리는데 홀로 외로이 대충 한 끼 때울 까닭이 없다. 각자 일터에서 땀 흘려 수고하고 돌아오면 이웃들과 밥상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쌓인 피로를 푼다. 진한 미역국으로 위로를 얻고, 우리 삶이 작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단 걸 새삼 느끼고, 다시 세상에 나갈 밥심으로 충천해진다. 마을로 사는 건 잔치가 끊이지 않는 일상이다. 잔치는 자신의 기운을 끌어올리고, 다른 사람의 기운도 끌어올리는 사건이다. 마을에서 잔치하며 내가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사는 이치이다.


글 김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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