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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로 초대하는 마을학교
생동하는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는 순간마다 이모삼촌들 함께 신나며 ‘얼쑤!’

5월 5일 어린이날 이른 아침 수유에서 출발한 버스는 홍천 효제곡마을을 향했다. 아름다운마을학교 수유터전과 홍천터전 아이들, 선생님, 학부모, 이모삼촌들은 이날 운동회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음껏 달리고 응원하며 시골학교 운동장을 동심으로 가득 채웠다. 다 같이 둘러서서 몸을 풀며 눈인사를 나눈 뒤 학생과 교사, 학부모 세 모둠으로 나눠 겨루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 실력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단 진행자 발언에 학부모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 경기는 단체줄넘기. 여럿이 발을 맞춰 펄쩍 뛰는 줄넘기는, 키가 제각각인 아이들보다 어른이 유리했던지, 학부모 모둠이 우승을 차지했다. 쑥스러워진 학부모들은 상품으로 나온 홍천 할머니표 엿을 학생들에게 돌렸다. 학생들은 엿을 받아들고 금세 다시 신이 났다. 다음은 축구경기. 그동안 꾸준히 연습해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학생들이 빠른 발놀림과 팀워크로 선전했다. 압권은 중계방송이었다. 진행자와 공동으로 경기를 중계한 학생이, 학생선수가 상대편에 공을 빼앗길 때마다 말을 멈추고 ‘아~’ 하는 안타까운 탄성을 지르며 친구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은 선생님들과의 시합에서 4대 2로 이겼다.

운동회의 절정은 바로 이어달리기. 떨리는 마음으로 출발해서 홀로 뛰다가 나란히 뛰는 친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지칠 때쯤 내 바통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는 건 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엄마들도 아빠들도 전력을 다해 달렸다.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지만, 막판에 너무 열심히 뛰어 결국 1등을 한 아빠는 아이들에게 ‘에이~ 어린이날인데!’ 하며 눈총을 받았다. 바쁜 도시 일상으로 굳어있던 몸이 생기 있게 살아나는 운동회였다.

제대로 놀 줄 아는 아이들

집에서 손수 싸온 도시락들로 꿀맛 같은 점심식사를 나눈 뒤 홍천터전 교정으로 향했다. 학생들이 정성껏 준비하고 마을사람들을 초대한 ‘효제곡 마을음악회’가 기다렸다. 흥겨운 풍물놀이로 앞장선 학생들을 따라 다같이 봄 싹이 돋고 있는 마을길을 걸었다. 학교 마당에 편 돗자리에 앉아 두 시간 내내 알찬 공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어른이라고 구경만 하는 게 아니었다. 마을 놀이패 '신명나게 놀자' 이모삼촌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같이 삽시다 아아아~”를 외쳤다. 아이들의 끼와 발랄함은 어른들을 능가했다. ‘아름다운마을학교’ 글자를 따서 ‘도레미송’을 개사했는데, “을매나 좋은지 몰라요”란 구절로 기발함을 보여주자 박수와 웃음이 터져나왔다. 맑고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리코더 합주는 논밭에 부는 바람 소리를 담아냈다. 한복을 차려입은 세 소녀가 남학생 고수 장단에 맞춰 소리를 떨고 꺾으며 판소리 '수궁가'를 들려줬다. 수유에서 온 아이들도 준비해온 게 있었다. 형님들 가락 한 수에 ‘도라지 타령’으로 답하고, 그동안 갈고 닦은 태권도 품새 태극 1장을 호흡을 맞춰 실수 없이 보여줬다. 꾸밈없고 능청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님과 함께’를 개사해 ‘벗과 함께’를 들려줬고, 오락가락밴드는 선생님과 같이 기타와 키보드, 드럼까지 갖춰 그럴듯한 콘서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어서 마당 곳곳에 가지가지 놀잇판을 펼쳐놓고 자유로이 오가며 즐겼다. 투호 던지기, 장작 패기도 하고, 한지로 부채도 만들고, 장작 패기 마을 아이들과 어른들이 미리 내놓은 옷가지며, 생활용품들이 가지런히 놓인 장터도 열렸다. "떡, 떡!" 어디선가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다. 떡메치는 소리였다. 마을 어르신들의 훈수를 들으며 두 사람이 박자를 맞춰 떡판에 있는 찹쌀 반죽을 떡메로 쳐댔고, 다된 떡반죽에 콩고물을 묻혀 인절미를 만들어 먹었다. 한쪽에선 마을 사는 토박이 아이들이 소문 듣고 기다려왔던 벽화 그리기가 한창이었다. 마을 앞에 군부대였던 낡은 건물을 밝은 미색으로 칠하고 아이들이 그리고픈 꽃과 곤충으로 채워넣었다.

학교 잔치는 바로 우리 일

마을공동체는 너와 나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관계다. 잉태됐을 때부터 줄곧 아이들을 가까이 봐왔던 삼촌이모들은 부모 못지않은 감수성으로 아이들의 성장에 동행하게 된다. 그리고 한 순간도 똑같지 않고 움직이고 커가며 생명의 약동을 보여주는 아이들은, 마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배우고 때에 맞게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마을공동체 교육은 모든 일상과 관계에서 일어나는 통전적인 교육이다. 아이들은 책상머리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공부시간이 끝난 뒤 혹은 교실 바깥에서 어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걸 눈과 귀에 담으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면화한다.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는 삶은 그대로 아이들의 교과서가 된다. 마을 어귀에서 마주쳐 인사 나눈 아이에게 있어서 나는 곧 마을이고 아이가 배움 속에 가진 질문의 답변을 주는 존재가 된다. 아이들의 크고 작은 일들은 곧 내 일이자 마을의 일이며, 마을학교 잔치는 온 마을사람들의 잔치가 된다. 마을 아이들이 배움을 갈무리하는 마무리잔치나 졸업식이 열리면 학부모나 선생님이 아닌 마을 이모삼촌들은 내 일처럼 시간 맞춰 잔치에 참여하고 일손을 돕는다.

마을학교 아이들은 마을이 한 마음으로 잔치할 거리를 안겨준다. 아이들이 있기에 마을은 다 같이 기운을 모아 한판 벌이는 게 설지 않다. 아이들은 잔치를 제대로 즐길 줄 안다. 마을 아이들은 또래들과 형님아우들과 이모삼촌들 사이에서 다양한 관계망을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 아이들이 있기에 잔치는 더 흥이 난다.


글 임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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