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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맛' 나는 김치
마을밥상에서 밥 나누는 이들 모두 모여 '김장 잔치' 치르다


김치는 우리네 밥상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굵직한 음식이다. 그래서 김장김치에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삶의 배치와 일상의 가치가 깃들기 마련이다. 인수마을밥상에서는 밥상지기들이 이번 김장을 준비하며 어떻게 김장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공부해왔다. 마을밥상에서는 어린아이들도 함께 밥 먹기 때문에, 평소에도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는 밥상차림을 해왔다.

무엇보다 쉽지 않은 고추농사와 아직 고추를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며, 설거지물로 흘려보내는 고춧가루가 없으면… 하는 데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지금 마을밥상 김치는 백김치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모두가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탄생하였다.


김장하는 날 아침, 날리는 눈을 맞으며 마을밥상을 자주 찾는 청년들, 회사에 휴가내고 온 직장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온 엄마와 아빠 등 다양한 마을사람들이 밥상으로 모였다. 따뜻한 차와 떡을 나누며 둘러앉아 밥상지기에게 오늘 김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함께 몸 풀기 운동으로 몸을 깨우며 김장잔치의 시작을 열었다. 각자 맡은 곳에서 쪽파를 다듬고 무와 갓을 썰고, 미리 만들어둔 풀죽으로 속재료를 만들었다.

고춧가루를 적게 넣는 이유를 듣고 공감하기도 하고 찹쌀로 만들어 아직 밥알이 생생하게 보이는 풀죽에 흥미로워 했다. 콩물과 고구마가루, 다양한 재료를 넣어 우려낸 다시마물 등 풀죽을 만든 과정을 듣고 그 정성과 깊은 맛에 감탄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김치소를 넣을 때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밥상에 대한 이야기, 요즘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분주한 손놀림에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잔치의 흥겨움이 김치소에 어우러져 스며들어갔다.


밥상에서 밥하기 시작하며, 밥상이라는 공간 안에 ‘풍성함’이 깃들기를 소망해왔다. 밥상을 찾는 이들과 차림을 준비하는 밥상지기들 모두 그 넉넉함을 누리도록 말이다. 그래서 이번 김장은 울력이자 잔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하였다. 배추김치, 갓김치, 동치미 담근다고, 칼과 도마, 앞치마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 들고 오시라고 누리집에 초대글을 띄우고 넉넉한 참을 준비하고 갓 담근 김장김치와 보쌈으로 즐거운 점심밥상을 나누었다.


김장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마을밥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소 모습으로 정돈되어갔다. 밥상의 일상을 기억하는 사람들 손길 덕분이었다. 퇴근하고 밥상을 찾은 이들은 김장김치에 대해 상찬하며 수고한 이들을 격려하고 미처 정리되지 못한 부분들을 도와주었다.

넉넉하게 담근 김치는 나눔에도 기쁨이 더해졌다. 난생 처음 자기가 담근 김치를 어머니께 맛보여드리고 싶다는 청년 손에 김치를 들려주며, 여러 해 동안 마을밥상에 김치를 담가 보내주신 홍성 은퇴농장 어머님께 김치를 보내며 더욱 뿌듯했다.

오늘 김장은 내가, 그리고 함께 마을밥상을 이루어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기운이 모아져 담아낸 것이다. 홍천마을밥상에서는 김장에 필요한 여러 물품과 삭힌 고추를 기꺼이 내어주었고, 김장잔치 소식을 들은 마을분들 손길로 마련한 장독에 김치를 저장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맛이 더 좋아질수록, 깊어질수록 우리의 함께살이도 그렇게 맛좋고 깊어진, 신명나는 삶이 될 거라 생각한다. 밥상의 밥맛이란, 오늘의 ‘살 맛’이 아니겠는가.


주희 | 마을에서 배운 사랑과 받은 생명으로 신나게 밥 지으며 살아가는 마을 청년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깊어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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