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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고를 알면 그냥 못 먹어요"
서울 청소년공부방 봉사동아리 운화회, 청량리마을 농활로 맺는 아름다운 인연


오랜 가뭄을 끝내고 제법 비다운 비가 며칠 내렸습니다. 마른 땅을 적셔주는 이 비는 모두가 기다리던 선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비 때문에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7월 15~22일 홍천 서석면 청량리로 농촌봉사활동을 온 대학생들입니다. 34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를 이겨내며 일 좀 해볼까 했더니만 아깝게도 이삼일 장마가 겹친 것입니다. 그래도 자식 같고 손주 같은 젊은이들이 찾아온 청량리 마을에는 활기가 돋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학생들을 환영하는 마음이 담긴 현수막이 붙어 있고, 학생들이 6박7일 동안 밥 해먹고 쉬는 숙소가 된 마을회관 앞에는 줄줄이 널린 빨래며 삐져나온 운동화들이 사람 사는 냄새를 풍깁니다.

2009년부터 해마다 여름이면 청량리마을로 농활을 오는 교육봉사동아리 운화회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7월 12일 늦은 6시 하루 작업을 마치고 들어와 씻고 저녁 먹은 다음, 손빨래를 하거나 선풍기로 젖은 머리를 말리거나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자유롭게 쉬는 중이었습니다. 기다려온 비를 한껏 받으며 힘을 얻는 논밭 작물들처럼, 피로가 금세 가신 듯 생기발랄하기 그지없는 스물, 스물한 살 청년들입니다.

"저희 집에서 벼농사를 짓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이 농사일 하시는 걸 보긴 했어요." 집에서 농사 지어봤냐고 물으니, 대부분 이제껏 농사 경험이 없는 듯, 재호 님(21살)만 대답을 합니다. 보기는 했어도 공부만 하고 자란 티가 납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다보니 실수할 때도 있겠어요?" 질문에, 다들 사연 하나씩은 있는 듯 웃음부터 보입니다. "감자 캐다가 감자에 상처 입히고, 고추 줄 매기 하다가 고추가지 끊기도 하고, 아휴…." 말하는 정현 님(21살) 뿐 아니라 다들 민망하고 안타까운 기억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저희에게 안 맡기시죠." 다행입니다. 농민분들도 몸 써서 일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대학생들이 그나마 잘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골라서 시키는가 봅니다.


낯선 밭일, 실수도 하고, 배려도 받고

"그날그날 농가들마다 내일 무슨 일 할 거라서 몇 명이 일하러 오면 좋겠다고 마을 반장님께 연락해주시면, 반장님이 저녁마다 이리로 오셔서 어느 집에 몇 명, 또 어느 집에 몇 명 필요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1학년과 2학년을 섞어서 집마다 배치해서 알려줘요. 아침 7시에 차로 데리러 오시고, 저녁 5시에 다시 데려다주세요. 저녁에는 저희끼리 모임 하겠다고 미리 말씀드려서, 배려해주시는 거예요." 농활대 작업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성훈 님(20살) 이야기를 들으며, 일 년에 단 일주일이어도 마을사람들과 어긋나지 않게 세심하게 소통하고 일하는 틀을 만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동아리 1, 2학년만 농활에 참가하는데, 올해 2학년인 재호 님은 지난해 1학년 첫 농활 때 방문했던 농가에서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올해 다시 찾아갔다고 합니다. 하루지만 함께 땀 흘려 일하고 이야기 나누다보면 끈끈한 정이 흐르나 봅니다. "대부분 집밥을 차려주시는데, 엄청 맛있고, 많이 주세요. 막국수 먹었다고 자랑하는 친구도 있구요." 점심밥에 낮잠 잘 시간까지 챙겨주고 하면서 농가에서도 즐거운 손님맞이가 되었겠지요. "농민분들이 제일 저희가 다칠까봐 염려하세요. 일보다 안전하도록 계속 일러주시고요." 서로 만날 일 없던 도시청년들이 농촌어르신들과 사심 없이 맺어가는 찐한 관계가 느껴집니다.


"밥을 소중하게 먹게 돼요. 야채 하나하나 어떻게 재배할지 걱정돼요." 감사한 정도가 아니라 왜 걱정된다고 하는 걸까요? "힘드니까요. 감자 하나도 얼마나 고생해서 얻는 건지… 느껴지는 게 많았어요." 마트만 가면, 전자상거래 단추만 누르면 뭐든 사먹을 수 있는 시대에 소비가 아니라 생산의 입장이 되어보는 건 세상 사는 데 든든한 힘이 되겠단 생각이 듭니다.

운화회 학생들이 머무는 동안 마을회관은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습니다. 이른 7시까지 일 나갈 채비를 하려면 아침 6시에 일어나기도 빠듯할 텐데, 늦은 12시까지 뭘 하는 걸까요? 운화회에서 여름농활은 67년 창립 때부터 중요하게 여겨온 농민들과 연대의 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매년 1학년생들이 운화회 활동의 주역으로 서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합니다. 2학년은 1학년에게 인계해주고, 1학년들은 이제부터 스스로 해나갈 일에 서로 마음을 맞추는 거죠.

'운화회'는 서울 미아사거리역 인근에서 청소년공부방을 꾸려가는 동아리라고 합니다. 1967년에 시작되어, 종로에서 경제적 이유 등으로 학업을 포기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업학교를 설립해 야학을 운영해왔고, 2005년 공부방으로 전환해서 저소득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반디청소년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해마다 스무살 청년들이 새로운 교사가 되어 자기보다 작은 사람을 이끌어주는 이로 서면서 공부방 역사를 이어온 것이지요.

농활을 마치면 1학년생들이 공부방 교사를 맡게 됩니다. 교사 임기는 일 년입니다. 중학생들에게 국·영·수·사·과 교과목도 가르치고, 테마교육이나 체험학습 등을 기획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지금 중학생 11명이 공부방에 나오는데, 이 학생에게는 이런 게 더 맞겠다 같은 판단을 해가면서 실력보다는 개별 필요에 맞게 도움을 주려 한답니다. 요즘 중학생들이 극단적 정치성향의 웹사이트에 노출될 위험이 점점 커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영상자료를 보기도 하고 사회적 이슈를 알려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봉사정신으로 오랫동안 청소년공부방도 운영

'학생들에게 형평성을 가지고 대하기', '중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학생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외부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일 년 교육현장에서 터득해서 후배 교사들에게 전해줄 당부들도 많습니다. "가르치는 게 부담될 수도 있지만, 보람도 느끼겠어요?" "넘쳐나죠" 자신 있게 답합니다.

"중학생들이 3학년 올라갈 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 보람을 많이 느껴요. 저도 성장했어요. 스스로 책임감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책임감이 필요한 일을 하면서 달라진 것 같아요. 동문 선배들도 공부방 경험이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세요." 

"대학에서 점점 봉사라는 게 줄어드는 게 사실이에요. 돈으로만 결정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아쉬워요. 꼭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좋은 가치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잖아요?"

중학생들에게 언니 같고 오빠 같은 젊은 선생이지만, 자신이 가진 적은 것이나마 가르쳐주며 함께 변화해가는 스승으로 서려고 부단히 몸부림치는 일년 교육봉사가 쌓여 오랜 역사를 한결같이 이어올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뜨거운 여름 낯선 농촌현장에 찾아온 도시대학생들이 머리를 비우며 새로워지고 있는 청량리 마을에서 말입니다.

최소란 | 지난 가을 홍천에 터잡고 여러 이웃들을 만나며 글 쓰며 지냅니다.


<아름다운마을>은 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과 농촌과 도시를 함께 살리는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전합니다.


펴낸곳 |  생명평화연대 www.welife.org

문   의 |  033-436-0031 / maeul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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