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한 시간 달리면 철책선 앞에 서게 됩니다. 한 시간이면 서울살이 평균 통학 시간이나 출근 시간보다 짧습니다. 정말이냐고요? 서울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50분을 달린 후, 문산에서 기차를 갈아타서 10분이면 임진각 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기차역을 나서면 철책선이 두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한테 남북 분단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임진각역을 걸어 나가면 넓은 주차장도 있고 전망대도 있습니다. 마음이 두근거릴 것입니다. 저는 괜히 눈물도 나왔습니다. 행정 관청에서 걸어둔 영혼 없는 현수막도 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현수막도 있지요. 그 글귀가 마음에 와서 박힙니다. 이런저런 일로 바빴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그동안 잊고 지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철책선 멀리 보이는 북녘땅을 보면서 감격하고, 아무런 장애 없이 남북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보며 부러워할 겁니다.
이번 평화 순례는 2013년 9월에 치른 순례와 같은 일정으로 진행한다. 임진각에서 출발해 경기 문산 접경 일대를 걷는다.
벌써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들의 의지도 아니었고 누가 우리들한테 묻지도 않고서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그래도 3년 가량은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도 있었습니다. 분단 정부가 세워지고 전쟁이 있은 후에는 영영 갈라섰습니다. 통일의 노력도 있었고 화해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군사분계선은 오히려 높아지고 두 겹 세 겹이 되어버렸습니다. 군대는 커지고 군사기술은 발달해 서로를 더욱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통일은 오지 않는 미래일까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2015 세계 추세>에서는 2025년이면 한반도에 통일된 정부가 들어서있거나 남북연합에 준하는 상황이 되어있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지만 상당히 권위있는 보고서입니다. 물론 예측 보고서이고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들의 느낌보다는 훨씬 가까운 미래에 통일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은 어쩌면 군사분계선에 몸만 막혀있는 게 아니라 마음도 막혀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통일이 가까이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체념하며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현실에서 기독교신앙을 순전하게 해갈 때에 남북 분단을 만나게 됩니다. 해결되지 않는 갈등과 반목, 개인과 개인 그리고 단체와 단체를 갈라놓고 만나지 못하게 하는 불신과 미움, 두려움과 편견 같은 것의 뿌리를 찾아가다보면 남북 분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례라는 말은 정치적 행위와는 결이 다른 실천을 말합니다. 순례는 종교적인 심성으로 현장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순례는 분단된 나라와 분열된 사회에서 화해와 일치의 누룩으로 살길 다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평화를 저 먼 곳에서 찾지 않고 지금 당장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해가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난 70년 세월이 알려준 소중한 깨달음이지요.
5월 9일 토요일, 봄나들이 가기 좋은 때에 평화와 화해의 마음을 가득 안고 임진각으로 가렵니다. 떼제공동체, 대학생선교단체 IVF 사회부와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연대기획으로 마련했습니다. 청년들, 청년활동가들이 참여할 것이고 중고등학생, 4~50대 어른들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봄 바람 맞으며 봄 햇살 속에서 걷고 이야기 나누고 기도도 하려고 합니다. 9시에 도보 순례를 시작하고 12시에 점심밥상 교제를 합니다. 오후에도 3시간 가량 걷고나서 마무리 모임을 합니다. 무리해서 걷지 않고 자기 몸에 맞게 걷습니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요. 함께 할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