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날아온 씨앗, 나를 지켜주다
매일 밥상에서 무릉배추를 만납니다. 홍천마을에서 채종한 무릉배추 씨앗을 받아 지난 7월에 심어 기른 것입니다. 김장김치로 담궈 반찬으로 먹습니다. 저는 강원도 속초에서 가르치는 학생들과 지난 한 해 동안 학교에 딸린 텃밭을 일구었습니다.
속초는 봄에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붑니다. 심은 지 몇 주도 안 되어 고추, 토마토, 가지 모종이 모두 말라 죽었습니다. 씨를 뿌린 부추와 잎들깨만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강한 바람에 두 번이나 모종을 심는 동안, 씨를 뿌려 자란 부추와 들깻잎싹을 보며 그 생명의 강인함을 학생들과 배웠습니다.
한여름이 지나면 김장채소를 준비합니다. 주로 속초에서 지내지만 홍천마을과 함께하는 기운으로 농생활 절기달력을 보며 저도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곤 했습니다. 마침 홍천마을에서 소농들이 직접 채종한 씨앗을 나누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무릉배추 씨를 받아 밭에 뿌렸습니다.
한여름은 학교 방학입니다. 씨를 뿌리려고 혼자 밭에서 거름을 주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을 했습니다. 땀을 많이 흘린 덕에 몸도 가벼워지고, 이명도 사라졌습니다. 배추를 씨 뿌려 키우는 것은 처음이라 돌보는 손길이 익숙지 않았습니다. 씨를 뿌려놓고 계속 찾아가서 고랑을 살핍니다. 뜨거운 햇볕에도 싹이 났습니다. 자라기를 기다리고 옮겨심기도 했습니다. 앞서 경험한 사람들의 설명을 들었지만, 의심이 많았습니다.
의심 많고 어설픈 손길에도 배추는 씩씩하게 자기 때에 맞게 잘 자랐습니다. 무릉배추는 처음에는 벌레가 많이 먹더니, 어느 정도 자라면서는 이겨내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 해 강원도 땅에서 자라 채종한 씨의 강인함인가 싶었습니다. 다른 동료의 밭에 배추 모종을 심어 알이 굵게 자라는 것과 비교가 되어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땅과 씨의 생명력으로 잘 자란 무릉배추는 끝까지 잘 자라주어 김장할 시기에 넉넉한 양의 소출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가을 하늘땅살이는 생명을 가르치는 저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밭에 가려면 저는 더 자주 가서 밭에서 자라는 생명과 학생들의 기운을 늘 신경 써야 했습니다. 덕분에 가르치는 학생들과도, 함께 기르는 작물들과도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명을 돌보는 정성이 나를 살리고 서로를 살린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무릉배추 일부는 아직 밭에 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씨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영동은 영서보다 따뜻해서 밭에 그대로 두고 마른풀들을 덮어주었습니다. 이 추위에 죽지 않을까 염려도 있지만 한여름 잘 자라 귀한 김치를 준 배추를 믿고 있습니다. 채종한 씨로 올해 가을 하늘땅살이에서 또 다시 새롭게 학생들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송미영 | 서울에서 특수교사로 일하다가, 2년 전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강원도 발령을 자원하였고, 지금은 속초에서 청해학교 학생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하늘땅살이로 특수교육현장에서 더 깊은 만남을 소망하며 힘차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