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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너머의 삶을 사는 마을 직장인


올해가 벌써 직장생활 8년 차입니다. 직장생활을 제법 했네요. 일하고 있는 곳은 전자상거래 회사고, 도서부문 영업부에 속해 있습니다. 도서영업부에서는 책 분야별로 담당을 나눠놓았어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는 청소년, 자연과학, 종교 이렇게 세 개 분야입니다. 분야 담당을 '도서MD'라고 부르는데, MD라는 말만 들으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구매해서 판매하는 업무가 주를 이루다보니, 영단어인 '머천다이저(Merchandiser)' 줄임말로 MD라 부릅니다. 동료들끼리는 "뭐든지 다한다"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전자상거래 쪽은 시스템 개발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책 한 권 한 권 팔리는 게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매출 합산, 관리도 하루 마감 단위로 해서 변화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전산 작업과 더불어 매일 수십 통씩 날아오는 메일과 전화, 업체와의 회의와 외근으로 근무시간에는 정말 쉴 새 없이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 때 온라인서점은 할인판매와 무료배송으로 어마어마한 매출성장률을 기록하며 출판유통 시장에서 덩치를 무지하게 키워갔었죠. 그래서 소규모로 운영하던 많은 지역 서점이 자취를 감췄어요. 하지만 한정된 시장규모에서 무한정 성장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현재는 온라인서점이 매출 성장에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대형서점들 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에요. 특히 올해 11월 21일부터 시행하는 도서정가제를 두고 업계는 바짝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게 되면 중고책을 제외한 모든 책은 최대 할인 10%에 자체 적립금 5% 이내로 할인규모를 제한 받게 되기 때문이지요. 할인을 기반으로 책 판매촉진을 하던 운영 방식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회사는 늘 성장하는 것을 전제로 운영하기에 실적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책 판매에 따른 손익계산 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 실적, 자산관리, 신규사업 등에 따른 주가(기업 이익에 대한 전망)까지 염두에 둡니다. 그렇기에 성장하지 않으면, 매출이 좋지 않으면 냉정하게 정리 수순을 밟는 것이 또한 기업의 모습이지요. 최근 몇 년간 매출 실적이 좋지 않아 사무실 분위기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람이 많이 줄었고, 업무 강도도 세졌습니다.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더 어수선하기도 합니다.

‘불안’ 심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더 크게 작동되는 것 같습니다. 회사 조직 내에 불안 심리가 퍼지게 되면 너와 나는 동료가 되기보다는 경쟁자가 되고, 직장을 그만둔 후의 삶을 기대와 희망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근심과 걱정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대부분 개별 가정단위로 삶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가정단위로 봤을 때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 명의 수입이 줄어들게 되면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회사가 호황일 때 입사해서 매출이 줄어 조직과 업무에 변화가 있던 시기를 거쳤고, 이제는 외부제도의 변화로 조직 성격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던 한 가지는 바로, 마을을 이루며 사는 삶입니다.

마을 단위의 물적 토대가 아닌 개별적 가정 단위의 물적 토대 위에 사는 삶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물적 토대를 마을 단위로 둔다는 것은 식의주락 생활양식 전반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파트를 고집할 필요가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각종 보험이나 금융자산 확보에 힘을 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자립과 자족하는 삶을 배우고, 마을을 이루며 함께 꿈꾸는 바-마을 아이들의 교육을 어떻게 대안적으로 해나갈 것인가, 마을밥상을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가, 또 다른 마을의 필요는 무엇인가 등-를 위해 힘을 쏟습니다. 월급은 개별 가정단위에 국한해서 사용되지 않고, 마을을 이루는 삶 전반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요. 누군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잠시 쉰다 해도 함께 사는 관계 속에서 자신과 마을의 필요를 찾아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직장에서의 생존에 모든 것을 걸면 누구나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피라미드 구조 조직에서 직장생활 연차를 더해갈수록 생존 경쟁은 더 심화됩니다. 불안 속에서 저를 지켜주는 것은 함께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는 관계입니다. 제가 마을을 물적 토대로 두고 사는 것처럼, 마을 이웃들 또한 그렇게 살고 있고 저를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일하되 그 기운에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소시민적으로 살지 않고, 함께 뜻한 바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지금 일하는 곳에서의 소임이 마무리되면 두려움 없이, 후회 없이 밝은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지금 직장생활을 하며 품고 있는 제 마음이며 마을 직장인으로 사는 제 삶의 모습입니다.

김현기 | 온라인서점에서 책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호흡이 가빠질 수 있는 생활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으며 지내려는 8년차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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