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변해야 마음도 새로워진다
오늘의 절망을 내일을 위한 몸수련으로
저는 양평 용문산 아래 마을에 사는 서른두 살 직장인입니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회사생활은 여전히 삶의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입니다. 숫자로만 업무가 평가되는 조직 속에서 제 생명이 고갈되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직장 내 선배들을 보면서, 제 이후의 모습을 예측해보곤 합니다. 10, 20, 30년 어떤 회사에 몸을 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장 안에는 거대한 힘이 흐르므로, 거기에 몸을 계속 두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힘에 의해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회사 일에만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며 보냈습니다.
첫 번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밭을 일구고 생명을 심고 길러보았습니다. 올 봄에 감자, 콩(메주콩, 불콩, 강낭콩, 서리태), 상추, 케일, 쑥갓, 청경채, 치커리 등을 심었습니다. 씨앗들을 심고 한 동안은 싹이 움틀 것을 믿지 못해 매일 밭에 나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으나, 어느 순간 솟아난 초록잎들을 보며 감격스러웠습니다. 밭에 나가 작물들이 변화하고 자라는 것을 살펴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밥상을 대할 때 그냥 허겁지겁 먹기 바빴는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아침, 저녁 몸수련을 즐겁게 했습니다. 회사라는 곳은 내 삶을 통째로 흔들 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었습니다. 3년 전 입사해서 처음 마주한 현실은 근무시간 내에는 도저히 마칠 수 없는 업무, 소통이 단절된 듯 보이는 사무실 분위기, 그나마 쉴 수 있는 밤마저도 빼앗아가는 잦은 술자리 문화 등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일터 이상의 장이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들 앞에 쩔쩔매고 있을 때, 몸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도시임노동자의 삶을 시작하며 마주하게 된 절망적인 현실 앞에 굴하지 않고, 내일의 새로운 시간을 기약하기 위해 몸을 훈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업무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지만, 언젠가 회사 안에서도 제 자신과 다른 생명을 살리는 창조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는 기대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피곤하더라도 새벽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몸을 충분히 풀어주었습니다. 출근 전에 그렇게 몸을 풀어주면, 그 하루 회사생활을 조금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경직되고 바쁜 몸과 마음으로 출근하게 되면, 하루를 무기력하고 딱딱하게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최소 30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 몸이 충분히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평안해질 때까지 운동을 하였습니다.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시간을 내어 수련을 한 것이 3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수련을 방해하는 많은 어려움들과 싸워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하는 몸수련은 더욱 정성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일이 많더라도 50분 책상에 앉아 일했으면, 밀린 업무와 상사의 눈치를 모른 채하고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5~10분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몸을 풀어줍니다. 호흡이 가빠지면 늘 실수를 하게 되는데, 몸을 천천히 일정하게 움직이는 것, 의식과 몸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을 제 수련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몸을 유연하게 만드는 수련을 하면,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유연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고, 오장이 튼튼해지면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앞에서도 여유가 있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의식을 따라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천천히 호흡하며 하는 수련은 몸과 마음의 흐름이 끊임없이 분열되지 않고 하나 되도록 도와줍니다.

세 번째로 '삼일학림'에 입학하여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삼일학림'은 고등·대학과정을 통합한 학교입니다. 거기에는 10대 청소년들부터 40대 형, 누나들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장입니다. 정말 제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자립해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공부를 하고 싶어 서른두 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학림을 통해 농(생명을 키우고 기르는)생활을 배우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3년째 회사생활을 하며 직장에서 살아남는 것, 단순히 고용을 계속 보장받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많은 업무와 어려운 관계 속에서도, 제 마음과 몸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어제보다 더 생기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간절한 바람은 있지만,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마음은 금방 변하고 지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몸이 변해야 마음이 새로워지므로, 올해는 몸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몸수련의 필요를 느끼겠지만 수련을 꾸준하게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우리 생명을 빨아먹는 도시산업문명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내일에 대한 전망이 없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권상원 | 회사 식당에서 흰쌀밥만 먹는 게 아쉬워서 잡곡밥을 도시락에 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유별나다는 듯 바라보던 동료들이 점차 호기심을 보이고 먹어보고 싶어들 해서 잡곡밥을 점점 더 많이 싸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료들이 집에 있는 다양한 잡곡들을 가져다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회사에는 점심마다 잡곡밥을 나눠먹는 작은 무리가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직장인 4년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