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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세계관을 가져라
뿌리깊은 사대주의 바꿔가는 역사실천가의 외침


안녕하세요? 김원웅입니다. 제가 단재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사단법인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항일독립운동가들인 안중근, 윤봉길, 여운형 선생 등의 뜻을 기리는 20여 기념사업회들이 뭉쳐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연합회 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저는 중국 중경(충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아버님은 의열단원이셨는데 가슴에 늘 신채호 선생님이 쓰신 <조선혁명선언>을 품고 다니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때 단재 신채호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국수주의적 폐쇄주의를 주의하되 민족에 바탕을 둔 광활한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누구보다 삶으로 역사가로서 실천한 분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셨습니다.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는 항일운동의 뜻을 기리는 일도 하고, 그 정신을 현재에 이어받는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교학사 국사교과서 채택과 발간을 막는 일을 했습니다. 또 한일군사협정 체결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 잡는 일에 앞장선 사람의 군복을 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반대하여 막아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일을 해오면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아야겠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 자신한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식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식민지배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1965년 박정희 정권 때 맺은 ‘한일기본조약’에는 일본 식민지배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식민지배가 오히려 합법적이었다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 3억불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축하금’이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축하금을 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는 아직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동북공정에 관해 들어보셨습니까? 동북동정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국가프로젝트입니다. 저는 중국 역사학자들을 만날 때마다 왜 우리 역사를 왜곡시키려고 하느냐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의외의 반응이 옵니다. 한국에서 이미 통일신라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미 한국사에 고구려와 발해가 빠져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라 중심의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고구려와 발해를 한국사라고하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를 그렇게 해석하더라도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 배제하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사대주의 때문에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한테 불편한 내용을 빼버리고 역사를 썼습니다. 또 기존의 역사서들이 중국의 것을 비판적으로 보지 못하고 베껴오기만 했습니다.

또 일제가 조선을 36년 간 식민지배하면서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조산사편수회를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여기에 참여했던 이병도, 신석호 같은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의 역사학계를 주도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고 역사의 비극이지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통일신라라는 표현을 처음 썼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사에서 고구려와 발해 역사가 축소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엄연한 단군 역사를 ‘단군신화’로 하면서 온갖 이론을 가져다 썼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조선상고사>에서 말씀하셨듯이 단군은 엄연한 역사입니다. 단군시대 유물이 세형동검입니다. 단군조선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실재했던 큰 나라였습니다. 신채호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위만조선은 우리 역사의 한 곁가지일 뿐입니다. 또 고구려의 역사는 700년이 아니라 900여 년에 이릅니다.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에 영토를 구축한 강국이었습니다.

한국사 3대 대첩 중 하나인 살수대첩은 당태종이 수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해왔을 때 살수와 안시성 일대에서 이를 크게 물리친 사건입니다. 안시성은 요하의 요동에 있는 작은 성이었지만 당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큰 비가 왔을 때 성벽이 무너져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 검은 비단을 입은 100여 명이 순식간에 출동해서 거미줄을 걷어내듯 당나라 군사들을 물리쳤습니다. 이를 계기로 당태종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은 비단을 입고 머리를 짧게 깍은 사람들을 ‘조의선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의선인의 한 갈래가 신라시대 ‘화랑’입니다. ‘선인’ 전통은 우리 역사에서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고 나라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우리 땅과 역사를 지켜온 조의 선인을 기억하고 이를 계승해 가야 합니다. 여기 계신 청년들 학생들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김원웅 | 독립운동가 김근수, 전월선의 장남으로 중국 충칭에서 태어났다.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식민잔재 청산과 민족화해협력에 힘써오셨다. 이 글은 선생이 8월 21일 밝은누리움터에서 '단재 신채호와 역사의식'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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