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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오길 참 잘 했어요"
태어난 지 50일, 송희 마음 담은 편지


이모삼촌, 형님들! 저를 많이 환영해주시고 축복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엄마젖 잘 먹고 밤에 잘 자고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답니다. 집에는 이모삼촌들이 챙겨주셔서 형님들이 쓰던 배냇저고리며, 속싸개, 기저귀, 내복, 양말 등 많은 제 물품들이 한가득 와 있어요. 소중히 잘 쓰고 다음에 태어나는 마을 아우에게 잘 전해줄게요.


어느 형님은 제 사진을 보고 예전에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찍었던 '시원' 오빠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면서요? 함께 밥 먹고 함께 아이를 키우는 우리 공동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제 얼굴에서 여러 형님들 얼굴이 보인다고 해요. ‘지현’언니는 제 사진을 보고 자기 사진이라고 우겼다고 했지요? 제 얼굴에서 또 누구 형님 얼굴이 보이나요?

저는 엄마아빠가 마을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지 9년 만에 이 세상에 왔어요. 아빠엄마가 정말 많이 기다리셨죠. 저도 이 세상에 오기 위해 많이 기다렸답니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싶어요. 저는 엄마아빠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기쁨이 되고 있어요. 저는 계속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서 세상의 기쁨도 될 거랍니다. 엄마아빠는 제 이름을 기릴 송(頌), 기쁠 희(喜), 송희라고 지으셨대요. 근심 많은 세상에서 제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대요. 저도 제가 가는 곳 어디나 기쁨이 넘치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엄마는 지난해, 덩실덩실 살려고 마음을 먹고 공부도 시작하고 아이들 만나는 일도 시작했죠. 그때 제가 찾아왔대요. 엄마는 예전에 한번 뱃속 태아를 잃은 적도 있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대요. 엄마 나이가 적지 않은데도 임신기간 동안 크게 힘들지 않았대요. 그래서 또 순적하게 제가 태어나리라고 믿으셨대요. 엄마아빠는 공동체에서 생명과 함께 하는 삶을 배우고 훈련했기 때문이래요. 많은 공동체 분들의 기도가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제가 태중에 있을 때 아빠엄마는 저를 '개똥이'라고 불러주셨어요. 대화 나눌 때에도 계속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저도 심심하지 않았답니다. 예전에는 엄마아빠가 서로 속상하게 하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제가 찾아오고서는 거의 다투지 않으셨대요. 이게 생명의 힘인가 봐요.

제가 태어나기 나흘 전 새벽에 갑자기 양수가 흘렀대요. 그래도 엄마는 당황하지 않으셨고 그날 낮에 일터에서 하실 일을 완수하고 집으로 오셨지요. 안 좋은 상황도 있었지만, 엄마는 저에게 '괜찮아' 하고 계속 말씀해주셨어요. 예정일이 열흘 정도 남아 있었지만, 저는 그보다 빨리 태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도 무리 없이 엄마 몸의 길을 따라 잘 태어났어요. 그래서 조산사 할머니께서 기특하고 지혜로운 아이라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엄마는 저에게 "아침이 되었어요", "지금은 밤이에요" 하고 낮과 밤을 열심히 가르쳐주세요. 저는 태어난 지 50여 일이 되었고 살이 포동포동 올랐어요. 점점 자라면서 엄마 젖을 더 먹고 싶은데 엄마 젖이 부족할 때는 가끔 울기도 하고 짜증내기도 해요. 엄마는 저에게 젖을 주면서 "주여, 주여" 하면서 기도하셔요. 또 노래도 열심히 불러주시지요. 엄마는 기저귀도 갈아주고 젖도 주었는데 그래도 울면 기도가 절로 된다고 해요. 그래서 생명을 품는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구나 깨닫게 된다 하셔요.


아빠는 제가 엄마 뱃속에 찾아오고 나서 산후조리와 육아를 하겠다고 큰맘을 먹으셨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다닌 회사도 그만두기로 결정하셨죠. 아빠에게 이런 결심은 큰 변화랍니다. 엄마 보시기엔 살림과 육아에 부족함이 많으셨거든요. 그리고 공부도 하겠다고 하셨죠. 그래도 엄마의 세끼 밥도 차려주시고 미역국을 아주아주 맛있게 끊여주신답니다. "맛있지? 맛있지?"를 연발하시면서요. 그리고 저를 안아주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답니다. 노래도 자주 불러주시고 책도 많이 읽어주셔요. 저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답니다.

저도 이모삼촌, 형님들이 무척 보고 싶어요. 만날 날이 우리 5월 24일 홍천마을에서 만나요. 그때 홍천마을에서 큰 잔치가 열린다고 해요. 그때 제가 100일 가까이 되거든요. 큰맘 먹고 멀리까지 마실 가려 해요. 그때 우리 정겹게 만나기로 해요. 그럼 저는 팔랑팔랑 부는 봄기운 먹고 무럭무럭 튼튼히 자라고 있을게요.

송향미 | '송희'를 낳고 키우면서 생명을 품는 넓은 품을 배워가는 마을의 이모
안기인 | 자격증 준비를 하며 틈틈이 살림과 '송희' 육아에 참여하는 마을의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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