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홍천마을 하늘땅살이 날적이

7월 1일
일찌감치 고개 내민 마는 덩굴이 되어 지주대 둘러준 망을 잡고 위로 뻗어가기 시작하는데, 오늘 고개를 내민 마도 있다. 여주도 마찬가지. 딱 하나 나서 귀하신 몸으로 보살폈는데 오늘 하나 더 발견! 밭에서는 하나로 설명되고 정리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장독대 주변 환삼덩굴이 항아리를 휘감을 기세라 부랴부랴 정리했다. 명아주는 나무가 되어가고 있고 쑥도 개망초만큼 키도 크고 줄기도 세어졌다. 풀을 걷어내고 나니 누군가 심은 봉숭아와, 날아온 씨에 절로 난 듯한 살살이꽃 발견, 마음이 환해졌다. 풀이 한 무더기 나와 내일 작게라도 오줌풀거름 한 더미 만들어둘 수 있겠다. - 한영

▲ 산딸기 따서 입에 넣고 빵에 넣느라 바쁘다.


7월 2일
길에 떨어진 살구 주어다가 살구잼 만들고, 산딸기 따서 입에 넣고 빵에 넣느라 바쁜 요즘입니다. 엊그제는 밭에 갔다가 큰 비에 쓰러진 옥수수와 서리태 발견! 급한 김에 쓱쓱 발로 이리저리 세워줬더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말짱합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요즘 혹시나 쓰러질 것 같은 놈들 단속하고 있어요. 누렇게 다 죽어가던 감자도 하나 파보았더니, 무려 일곱 알이 나오네요. 역시 겉만 보고는 알 수 없어요. - 승화

▲ 막 머리를 감고 난 옥수수.


7월 2일
적절하게 내린 비로 작물들이 금세 많이 자랐습니다. 토마토 두 번째 끈 달아주고, 고추는 지주대와 묶어주었습니다. 호박, 오이, 참외, 옥수수, 고추, 열매 달 작물들에 지난해 만든 거름 뿌려줬습니다. 메주콩을 가리고 있던, 절로 난 들깻잎 솎아주고 반찬용, 장아찌용, 선물용으로 나눠 정리했습니다. 깻잎, 케일, 쑥갓, 부추, 아욱까지 밥상에 오를 푸른 채소들이 정말 풍성한 때인 것 같습니다. 작물과 함께 자란 풀들, 낫과 호미로 정리했습니다. 바람 동반한 비로, 제법 자란 수수, 수확 앞둔 강낭콩 쓰러지지 않도록 살피며 지내야 할 것 같아요. - 윤희

7월 3일
작년 가을 숲을 누비며 모아둔 산초열매, 가루 내어 국밥에 넣어 먹으려다가 오전 내내 진땀났다. 곱게 갈리지 않아 씹히는 맛이 살아있는데다, 껍질만 갈았어야 했는데 열매까지 몽땅 갈아버려 기름도 묻어나와 촉촉하기까지. 어떻게 먹을지 이리저리 생각해본다.
밭에 5분도 못 있을 시간대인데 오늘은 흐리고 서늘하여 김도 매고, 몇몇 아이들 이사도 했다. 뒤늦게 들어온 고구마에 치이는 듯한 우엉싹, 솎아낸 파, 빽빽하게 난 들깨까지. 4월 초 가장 먼저 심은 옥수수 하나는 키가 한참 더 커야 할 텐데 벌써 꽃이 피려 한다. - 한영

7월 5일
오늘 점심밥상은 요즘 밭에서 한창인 상추, 쑥갓, 깻잎 따위를 넣은 생채소비빔밥에 곱게 썬 우뭇가사리묵과 오이를 콩국물에 말아 함께 내었다. 무더운 때, 불을 거의 쓰지 않는 요리를 하니 덜 지치고, 뒷설거지도 간편하다. 맛도 있어 여름에 종종 해먹게 되는 짝꿍요리다.
오후에는 오이소박이 담궜다. 서른 개 정도 되는 오이, 식구들 다 같이 한 번 나눠먹을 양이라 설렁설렁 가볍게 했다. 저녁밥상을 차리고 보니 오이초무침에 상추샐러드, 부추김치, 푸르고 푸른 빛깔이 꼭 지금 밭을 닮았다. 바깥은 뜨겁고, 실내는 서늘했던 하루. 해 덕분에 널어둔 빨래가 바짝 말라서 개운하다. - 한영

7월 9일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웠는데 점심 먹고 나서 비 시원하게 내리며 더운 기운 조금이나마 가셨다. 그제, 어제 저녁에 여럿이 김장밭 다듬고 밑거름 넣어뒀는데 땅에 잘 스며들겠다.
들깻단 벤 것 받아서 장아찌 담글 깻잎과 나물로 먹을 깻잎 순으로 정리했다. 꽤 많은 양인데 여럿이 손을 보태 곱게 포개두는 것까지 마무리하고 물기 빼는 중. 정리할 땐 벅차도 반찬으로 만들어두고 나면 든든하고, 맛도 있으니 깻잎 선물은 뒷일 생각 않고 환영하게 된다. 가을에 단풍깻잎 따서 두 항아리는 삭혀두면 좋겠다. - 한영

7월 11일
새벽에 밭 둘러보다가 낫질하듯 잘려나간 메주콩 발견. 고라니가 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지만 실제로 닥치니 멍해진다. 저녁 먹고 콩밭 대강 매면서 하나하나 살피니 많이도 먹고 갔다. 며칠 동안 콩밭에 와보지 않고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더 무겁다. 열일 제쳐두고 고라니망 살피고, 부스럭 소리 나는 비닐 여기저기 걸어두고, 출입문 단속했다.
밭에 왕고들빼기 너무 많아서 한 포기 남기고 모두 정리했는데 그냥 말려버리긴 아까웠던지 한 학생이 김치 담자고 제안해왔다. 덕분에 다듬고 씻어 슴슴한 소금물에 담가두었다. - 한영

▲ 조롱박 꽃이 피었다.


7월 12일
조롱박 꽃이 피었습니다. 잎을 시원하게 펼치고, 쑥쑥 뻗어가는 줄기를 보는 것도 늘 놀라웠지만, 역시 꽃을 발견하는 순간에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서늘해지는 저녁이 되면 조용히 꽃잎을 펼치네요. 올해 처음 심고 만나는 박과의 만남이 새롭고 즐겁습니다. 꽃이 피는 것은 열매에 대한 소망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 더 두근두근합니다. 이제 벌을 초대하고 있어요. "벌아, 예쁜 박꽃에 놀러와~. 그리고 빛나고 단단한 열매를 선물해줘." - 민선

7월 16일
부쩍부쩍 자라서 옆 땅콩과 토마토를 누렇게 뜨게 만들던 절로 난 들깨. 괜히 아까운 마음에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쓱쓱 베다가 인수에 보낼 것 정리하고, 빵 만들어 먹었다. 작년에 수확한 들깨까지 팍팍 넣어서 만들었는데, 깻잎향이 제대로다. 밭에서 빵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참 좋다. - 승화

▲ 수확이래야, 그냥 익은 놈 먼저 모셔와 친구들과 나눠먹는 수준.


7월 22일
옥수수와 왕토마토, 노각오이, 감자 수확했다. 양이 많지 않아, 그냥 익은 놈 먼저 모셔와 친구들과 나눠먹는 수준이다. 어제 사먹은 무농약 옥수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맛이다. 감자는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이제야 새순이 나오고 쌩쌩한 것들이 있다. 하나 파보니 작은 감자알이 새로 달려있다. 오늘밤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직파 뒤 겨우 하나 성공한 상추 꽃대에 비닐 씌워줬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를 맞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승화

▲ 활짝 핀 쑥갓 꽃이 비에 녹을까 우산 씌워 뒀다.



7월 22일
보랏빛 난꽃같은 작두콩 꽃, 노란 여주꽃, 꽃 끝에 달린 새끼손가락만한 오이, 제법 커진 옥수수, 고라니 다녀간 뒤로 더 부지런히 새잎을 만들어낸 메주콩, 그리고 이 놀랄만한 변화들을 점점 가리는 기세등등한 풀! 며칠 길게 밭을 비웠더니 뭐부터 하면 좋을지 머리가 어지럽다. 일단 내일부터 길게 이어진다는 큰비 앞두고 감자부터 캤다. 긴 가뭄, 병 때문인지 크기도 작고 수도 적지만 그래도 씨로 보관해두면 내년을 그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한영

7월 24일
야생콩 덩굴과 환삼덩굴의 기세가 위협적인 서리태밭, 수수밭부터 김매기 시작. 환삼덩굴까지 밭에 들여놓게 될 줄이야. 각성하는 마음으로 서리태, 수수에 북줘가며 풀을 정리했다. 수수대는 꽤 굵어져서 깜짝 놀랐다. 심은 오이는 이제 첫 오이 매달고 손가락만해졌는데, 수수밭 거름더미에서 절로 난 오이는 어느새 노각 두 개를 만들어뒀다. 냉큼 들고 왔다. - 한영

7월 26일
심상치 않은 바람소리에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쑥갓에 씌워준 우산 생각에 잠이 쉬이 다시 들지 않는다. 뒤척이다가 날이 밝아와 밭으로 갔더니 지주대와 우산이 함께 누워있다. 계속 부는 비바람에 저항이 덜할 것 같아 비닐봉지 바람구멍 내서 씌워두었다. 아침 먹고 나서 올해 처음으로 비옷 꺼내 입고 밭 둘러봤다. 키 큰 옥수수 쓰러진 것 외에 대체로 무사하다.
좀 늦었지만 가을농사 계획 중. 배추 씨가 귀해 대부분 모종으로 키울 생각하며 상토 만드는 법을 찾아봤다.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만들어볼만한 것 같아 상토를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 한영

▲ 꽃핀 뒤 맺힌, 빛나고 단단한 조롱박 열매.


7월 26일
비 멈춘 사이 늦게 심은 강낭콩 수확해서 말려둡니다. 날마다 쑥쑥 커가는 조롱박 열매 보며, 바가지 만들 생각으로 벌써부터 흐뭇합니다. 오가며 달맞이꽃 보며 즐겁고, 산기슭에 덩굴져 올라가던 칡꽃도 피어서, 고운 빛과 향기에 기운을 얻습니다. 어제 오늘 비바람 부는데, 마루에 앉아서 한참동안 비구름 보며 앉아 있었네요. - 민선

7월 28일
점심 찬으로 호박잎 따러 갔다 어느새 주렁주렁 열린 호박들을 곳곳에서 발견. 두 손에는 호박잎 가득 안고, 마음에는 기쁨 가득 안고 부엌으로 돌아왔다. 호박밭에도 절로 나서 자란 오이들은 어느새 노각이 되어가고 있어 냉큼 따서 무쳐 먹었다. 여기저기서 오이, 호박, 참외가 절로 나는 것을 보며 반갑고, 거저 먹는 기분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우리 거름이 저온숙성되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좀더 열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 한영

▲ 알 맺히기 무섭게 두더쥐님이 접수하신 땅콩 밭.


7월 29일
드디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거사를 거행했다. 저절로 난 들깨 정리. 그동안 미련 때문에 그대로 두었는데, 온 밭을 장악하고 있으니 결단을 해야 했다. 비로소 땅콩과 검은깨도 웃는다. 그런데 땅콩 밭이 들떠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았더니 쥐가 쑤셔놓고, 이리 찔끔 저리 찔끔 땅콩을 다 파먹었다. 옥수수도 손대더니 땅콩까지 죄다 헤집어놓았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 승화

7월 31일
봄채소들로 여름김장했다. 미루고 미루다 날을 잡은 것이라 수확 적기를 지나치면서 더위와 긴 비에 시달린 모습들이다. 무더위 때문인지 쉬엄쉬엄 느릿느릿 다듬고 절이다가 갑자기 쏟아붓는 비에 더위 한풀 꺾이고, 그 때부터 부지런히 속도 내어 씻고 양념 만들어 버무렸다. 무더위에 김치맛 유지하려면 냉장고도 필요하고, 여름김장 채소 씨앗도 더 많이 있어야 하고… 길게 내다보며 변화를 그려보게 되는 여름날이다. - 한영

한영, 윤희, 민선, 승화 | 학교와 텃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생명들을 보며 희망을 얻는 홍천의 소농


뉴스편지 구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밝은누리>신문은 마을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