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흙뿌리, 도라지 껍질 까기
단아한 별 모양 꽃을 피우는 도라지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겨울을 몇 해 지나면서 뿌리를 깊게 내리지요. 도라지 뿌리는 폐를 보호하고 기침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어, 약재로 쓰기도 하고 꿀에 재어 도라지청으로 만들어 먹거나 말려서 도라지차로 마시기도 합니다.
요즘엔 도라지 껍질을 벗겨낸 깐도라지나 아예 채를 썬 채도라지를 많이 팝니다. 어릴 적 명절 때면 엄마랑 도라지를 다듬은 기억이 있는데 도라지를 물에 담가놨다가 과도로 껍질을 깠더랬지요. 이제는 껍질이 있는 생도라지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누군가 껍질을 벗겨 다듬어놓은 도라지를 사서 조리하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사실 도라지만이 아니기는 합니다. 고사리나 시래기도 다 말린 나물을 다시 불려서 삶아놓은 것을 팔고 있습니다. 힘든 과정은 생략한 채 우리는 쉽고 편하게 요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마을밥상에서 생도라지를 까고 채 썰어서 도라지 나물볶음을 한 적이 있습니다. 60~70인분을 하려다보니 도라지반찬이 나오기 3일 전부터 다듬었는데 이틀 꼬박 껍질을 까고 하루 종일 채를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두세 사람이 함께 말이지요. 일단 시작을 했으니 끝은 내야겠는데, 마을밥상에서 얼마만큼 필요할지, 다듬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감이 잘 안 잡혔습니다. 깐도라지나 채도라지를 사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비용의 차이도 있고, 도라지 같은 나물류는 소포장 되어 있어 마을밥상에서 필요한 만큼 대량을 사게 되면 플라스틱과 비닐쓰레기가 너무 많이 생겨버립니다. 그동안 쓰레기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조금이나마 쓰레기를 줄여보고자 하는 마음도 더해서 시작한 일이 예상보다 커졌습니다.
3일 동안 도라지를 까고 다듬고 채 써는 과정에서 마을밥상에 오가는 사람들이 함께 보고 관심을 갖고 신기해기도 했습니다. 뭐하는 건지 궁금해 하는 아이들, 힘들겠다고 염려하는 사람,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 왜 하냐고 묻는 사람, 모양만으로는 뭔지도 전혀 모르는 사람, 도라지 향기가 좋다는 사람 등 여러 반응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음식을 할 때 중간과정을 보는 것, 함께 만들어보는 것이 참 중요한데 그 과정을 통해서 밥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맛있게 정성껏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직접 도라지를 까보니 껍질을 까고 채를 만드는 그 수고 또한 녹록치 않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밥상에 올리기까지 해, 물, 바람, 흙, 벌레와 농부들과 씻고 다듬고 포장하고 날라주는 수많은 손길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절로 생겨납니다. 마을밥상에서 도라지를 직접 까서 반찬을 내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못하겠구나 하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지만 과정에서 힘든 것보다는 배운 것과 감사한 것이 더 많습니다. 생명과 밥과 손길들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더욱 겸손히 밥을 지어야겠습니다.
* 생도라지 손질하는 법
1. 도라지를 흙만 씻어서 물에 하루정도 담가 놓습니다.
2-1. 도라지를 맨 위부터 껍질을 조금 까서 돌돌돌 돌리면서 껍질을 벗깁니다.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깔끔하기도 하고 하얀 속살이 나올 때 뽀얀 게 참 예쁩니다.
2-2. 또는 과도의 칼등으로 긁으면 껍질이 쉽게 일어납니다.
3. 도라지를 위에서부터 3~4등분하여 먹기 좋은 크기로 가르면서 채를 만듭니다.
4. 소금물에 비벼 씻고 찬물에 소금을 넣고 한시간 정도 담가 아린맛을 빼줍니다.
* 도라지오징어채무침
재료: 도라지, 오징어채, 오이, 미나리, 양념(고춧가루, 고추장, 매실청, 식초, 들기름, 깨소금)
1. 도라지는 채 썰어 굵은 소금으로 비벼 씻고(쓴맛 제거) 찬물에 헹군 뒤 굵은 소금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담가놓는다(아린맛 제거).
2. 오징어채는 적당한 크기로 썰거나 잘라 물에 불려놓는다.
3. 오이는 반 갈라 어슷썰기 한다.
4. 미나리는 3~4cm 길이로 썬다.
5. 양념장을 넣고 버무린다.
* 도라지볶음 만들기
재료: 도라지, 다진파, 다진마늘, 들기름, 소금, 멸치액젓, 간장
1. 도라지는 채 썰어 굵은 소금으로 비벼 씻고(쓴맛 제거) 찬물에 헹군 뒤 굵은 소금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담가놓는다(아린맛 제거).
2. 팬을 중간불로 달군 뒤 들기름을 두르고 다진마늘을 넣어 살짝 볶는다.
3. 물기를 뺀 도라지를 넣고 소금을 살짝 뿌려 볶는다.
4. 어느 정도 볶아지면 간장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하고 다진파를 넣어 마무리한다.
조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