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건강하기 위한 게 아니라
살면서 크게 앓아본 적이 없어 건강한 편이라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제 몸이 약해진 것 같다고, 저를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형이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아침마다 오만상을 쓰며 일어나고, 직장에서도 금세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몸 상태가 느껴지니 이대로 머물지 않고, 일상을 경쾌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해 1월 변화를 위해 단식을 택했습니다. 단식은 몸에 쌓여 있던 독소를 빼내고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5일 동안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 끼만 굶어도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막상 시작하니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괜히 쫄았던 거죠. 몸은 오히려 이 시간을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단식 기간은 3일 감식, 5일 단식, 7일 보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산야초와 죽염을 먹는 것과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풍욕을 하고, 출근하기 전 목욕탕에 들러 냉온욕을 했습니다.
아침잠이 많아 6시 이전에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5시에 눈이 번쩍 떠지고 상쾌한 기운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얼굴이 오만상으로 찌푸려지지 않았고요, 직장에서도 오히려 더 생기를 느꼈습니다.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내 몸이 맞나?' 이런 생각도 들었죠. 일상을 리듬감 있게 지내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습니다. 식구들도, 동료들도 전보다 밝아 보인다고 얘기해줬습니다. 이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보식까지 마친 뒤 '하루 한 끼 생채식'을 시작했습니다. '맛이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긴 했지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마을에서 사는 형이 45일 동안 매일 모든 식사를 생채식으로 아주 맛있게 먹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미 꾸준히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부분 점심에 생채식을 하고 아침은 집에서, 저녁은 마을밥상에서 제철 재료로 만든 정성이 듬뿍 담긴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 직장에서 먹을 생채식 도시락을 쌌습니다. 그런데 겨울에 채소를 먹으려니 먹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뿌리채소, 잎채소, 열매채소, 해조류, 두부 등을 골고루 씻고, 먹기 좋게 자르는 일이 번거롭기도 했습니다. 뿌리채소를 꼭꼭 씹을 때는 턱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생채식 도시락은 맛있었습니다. 미리미리 장을 봐두고 재료를 다듬으며 집에서 정갈하게 살림을 하는 재미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평소 직장 근처에서 점심을 사먹고 나면 속이 불편한 채로 오후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는데, 생채식을 하면서 편안하게 오후시간에 일할 수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좋으니, 군침을 흘리는 동료들도 생겼죠.
생채식이 점점 입에 맞아갔습니다. 석달 동안 했던 '하루 한 끼 생채식'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음식을 대하던 태도를 반성하게 됐습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으면 오후에 일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먹고 싶은 대로 먹었습니다. 양상추, 당근, 버섯에게 그리고 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손길에 고마운 마음 없이 그저 내 몸만을 위해 먹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몸이 건강해지려 돈을 써대는 웰빙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밥상 앞에 올라오는 밥 한 끼도 이제는 전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 자신을 내어준 채소들과 농부들의 수고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면 도시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건 농촌입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생명력 넘치게 살려면 농촌과 교류할 있는 관계망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만 생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농촌의 현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단식과 생채식이, 더 잘 살기 위한 삶으로의 고민으로 이끌어주는 것을 보며 이 기간의 경험이 제게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회적 체험이 되지 않고, 내 정황에서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밥을 대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와 연결된, 나를 살리는 다른 생명을 기억하며 함께 먹고 누릴 수 있는 밥상을 우리 일상에서 지켜가고 싶습니다.
유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