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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 가다
청년의 기운을 소생시키는 생명평화농활

도시 사람 열 명에게 밭에서 풀매라고 하면, 그 중에 묵묵히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란다. 좀 하다가 더워지고, 허리 아프고, 끝은 보이지 않고 그러면, 이내 빈둥거리며, 어떻게 하면 풀뽑기를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을까, 풀이 안 자라게 할 순 없을까, 이 정도는 그냥 놔둬도 되지 않나, 가위바위보 해서 일 몰아주기 할까 등등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온갖 잔꾀들을 떠올리며 입만 바삐 놀리게 된다는, 어느 젊은 귀농인이 도와주러 왔던 친구들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했다. 논밭일은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야 할 수 있다는 거다.

지금 도시 청년들 중 대다수가 어려서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다. 부모님이 농사짓는 걸 보고 자란 이도 매우 드물 것이다. 도시 삶은 철저히 농촌과 단절되어 있다. 가끔씩 시골에 가기는 한다. 여행하러, 친척댁에 가러, 혹은 수련회 참석하느라 정도. 언젠가부터 농활도 점점 줄어간다. 방학은 대학생에게 아르바이트며 해외연수 적기다. 농촌도 기계화되어 있어, 감자줄기인지 풀인지도 구별 못하는 학생들 봉사가 아쉽진 않다. 요즘엔 지역마다 체험관광코스들이 계발되어서 참가비 받고 열매 따주는 게 그나마 농촌과 도시사람들이 만나는 접점이다. 오늘 아침 내가 먹은 게 어서 자랐는지도 모르는 채 소비문화에 젖어 있으니 농촌은 참 멀다.

기독청년아카데미는 매년 여름 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낸다. 농촌에서 이색적인 체험을 하고 일손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너를 살리기 위해서다.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모든 창조만물을 돈거래 대상이 아닌 생명으로 대하는 관계로 새로워지고, 자연을 해치는 도시문명의 질주에서 내려오기 위해서다. 생명평화농활은 청년들의 기개가 살아나는 장이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 매주 농촌과 도시를 오가는 일상을 선택하는 청년들도 나오고, 가뿐한 걸음으로 귀촌한 청년들도 있다. 똥과 밥이 연결되어 있음을 배우고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식의 생활양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밭에서 지렁이와 마주치다

올 여름엔 경북 상주로 갔다. 상주 모동지역은 포도 재배로 유명하다. 포도는 비가 왔을 때 많은 물을 섭취하면 너무 빨리 영글어서 제 때에 좋은 당도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래서 나중에 맛있는 포도를 수확하고자 비닐을 덮어주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우리는 포도밭에 비닐 덮는 작업을 하다가, 밭에서 꿈틀대는 지렁이들을 만났다.

거름을 주고자 잠깐 접어놓은 비닐을 다시 덮는데, 축축한 비닐 사이로 지렁이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멈칫하며 놀랐지만, 금세 친근해졌다. 참 오랜만에 보는 지렁이들이었다. 지렁이가 여기 살고 있는지 잊고 지냈던, 지렁이를 잊고 지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우리 몸을 생각했다. 지렁아, 네가 있어 땅이 생기 있다고 그래서 참 고맙다고 인사했다.

농촌에서의 농(農)생활은 단순했다. 잠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똥 싸고, 일하고, 쉬고, 밥 먹고, 일하고, 잠자고…. 이 단순함은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와 비교하면 무언가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도시의 기준일 뿐이다. 단순해 보이는 일과 그 속에서 다양한 만남과 사건이 있다. 단순함 속에 깊이 있는 삶의 호흡을 지속하는 것이 농생활의 힘이다.

매 끼니는 밭에서 따온 것들을 먹었다. 직접 수확한 싱싱한 채소와 열매를 먹으니 낯빛도 맑아지고 밥상에 대한 마음은 더 정직해진다. 함께 일을 하면서 이 음식이 오기까지 무수한 과정과 손길이 있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되었다. 농생활의 노동은 오늘날 돈으로 쉽게 대상화되고 무시되었던 과정에 대하여 깨닫게 하고, 감사한 마음을 깃들게 했다.

단순함 속에 도시 삶을 다시 보게 한 농생활

더운 오후엔 일하지 않고 강의를 들었다. 주변의 좋은 인생 선배들이 청년들을 만나러 다녀가셨다. ‘생활영성과 건강’ ‘강정마을 이야기’ ‘2012년 이슈파이팅’ ‘공동체와 지역운동’ ‘하나님나라와 생명·정치’ 등. 어려서부터 가정·교회·학교에서 기독학생으로 자라온 청년들에게는 낯설면서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주제들이었다.

상주 근처 추풍령으로 귀농해서 살고 계신 지역주민이 자기 삶의 여정을 나눠줬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재적을 당하고, 회심의 경험 후 신학교를 갔다. 그 후 두레마을에서 7년 동안 생활했는데, 매 휴가 때 백두대간 자락에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면서, 폐교들을 유심히 보아두었다. 후에 귀농을 결심하고 교육이 끝난 폐교를 미래를 예비하는 ‘아둘람 굴’로 삼아 귀농의 중심으로 삼았다. 초기에는 작은 도서관을 꾸려서 아이들과 함께했는데, 그것이 동네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묵상하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묵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와서 농촌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 친구는 이번 생명평화농활로 ‘하나님나라’에 대한 지평이 넓어졌다고 했다. 좁은 틀에 갇혀 있던 사유가 달라진 것이다. 졸업하고 나서 농촌에서 살아야겠다는 구체적인 결심을 보인 학생도 있었다. 누리고 배운 것들을 일상에서 한결같이 잘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글 장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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