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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토요일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면 보통 늦잠을 자는데 지난 토요일에는 일찍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했습니다. 긴 겨울 방학을 마치고 함께 하는 공동체지도력훈련원이 개강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으로 공부하러 갈 채비를 시작하는 토요일입니다. 수료증이나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타박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잘 살고 싶어서 하는 공부라고 답하곤 합니다.

오랜만에 함께 모여 공부하는 날이라 그런지 꽃샘추위도 아랑곳 않고 다들 열심입니다. 둘러앉은 이들은 모두 다양한 생활 현장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수가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출근하는 직장인입니다. 가끔 자기계발을 위해 어학공부에 매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사나 신학, 철학, 역사 분야의 책들을 밑줄 쳐가며 읽고 황금 같은 주말을 강의 듣는데 투자한다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닐 테지요. 금요일에는 일터에서 주고받는 메신저의 인사말이 거의 "즐거운 불금입니다~, 불금인데 일찍 퇴근하셔야죠." 같은 말입니다. 강도 높은 업무 스트레스에 계속해서 노출되는 직장인들은 월급날과 주말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하지만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거나 신나게 쇼핑을 해도, 자유로운 영혼처럼 어딘가 훌쩍 떠났다 돌아와도 정신없이 월요일을 지내고 나면 언제 활기 있었냐는 듯 어깨가 돌덩이처럼 굳어져 약손 마사지 할인쿠폰을 검색하게 되는 것이 많은 직장인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까지 12년에서 길게는 16년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또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해 입시를 위한 공부,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합니다. 어찌 보면 공부는 드라마에서 보는 것 같은 행복한 삶과 안정적인 생활을 담보해 줄 보험 같은 것이었지요. 헌데 막상 현실은 이런 기대와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될 줄 알았는데 졸업 후에 시급 5500원, 월급 88만 원의 계약직으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막상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연봉과 성과평가라는 잣대가 한 사람의 가치를 규정해 버리지요. 동료 직원들과는 계속해서 경쟁하도록 내몰립니다. 이런 구도 속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외감을 느끼고 관계 문제로 끊임없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근에 저희 회사에서는 효율성을 높인다며 이른 출근 1분에 +1점, 초과 휴식시간 1분은 -1점, 전산처리 실수 1개당 -10점 등으로 점수를 매겨 조별 프로모션을 진행했습니다. 공지된 세부조항에 따르면 점심시간 60분과 물 마시러 가는 시간을 포함해 전체 근무 시간 중 70분 이상 휴식을 취하면 감점요인이 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물을 마시지 않는다거나 다른 조의 점수를 떨어뜨리기 위해 실수를 발견하면 상사에게 감점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직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처음엔 문제의식이 들었지만 점점 흔히 말하는 ‘멘붕’ 상태가 되었습니다. 혼자서만 이상한 존재로 느껴져 상황을 잘 분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혼자만의 문제로 담아두지 않고 풀어낼 용기도 내볼 수 있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결정권을 가진 상사를 찾아가 제 의견을 말씀 드렸습니다. 다행히 오해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다음 달에는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세부항목을 조정하겠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사가 바뀌느냐 바뀌지 않느냐가 아니라 내가 변화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체념한 채 불평만 하고 있든지 아주 작은 것일지언정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든지 선택은 제 몫이 되겠지요.

분별하는 힘은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으로는 길러지지 않고 낯선 사태와의 만남, 공부를 통해 길러집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한치 앞을 예측하기도 또 막상 벌어지는 사태들을 해석하고 판단하기도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직장에 의해 일상이 규정되어버리기도 하지요. 자신이 믿고 있고 또 평소 말하는 대로 일관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직장인이야말로 누구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들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 공부의 시작은 정성껏 준비한 밥을 감사한 마음으로 나누어 먹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 일 테지요. 밥상으로 만들어가는 일상의 리듬과 든든한 관계가 공부를 삶과 동떨어진 구호가 되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잘 살기 위해 애써 공부하고 그 공부를 자기 삶에 들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습니다. 한겨울이라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꽃이 피는 봄의 문턱입니다. 다가오는 사건들을 담담하게 분별하고 마주하면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저 만치 옮아간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을 기대해봅니다. 철학과 역사, 신학…. 생각만해도 아찔한 두꺼운 책들을 벗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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