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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입니다"
역사 한가운데로 뛰어든 청년, 다시 일상으로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살게 됐어요. 기독교동아리와 교회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점점 모이기 힘들어지고 생존하기 위해서 뭐라도 바쁘게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친구들도 저도 모두 자기 일에만 갇혀서 지냅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더 힘들어지고 행복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현장 탐방에 참여했지요."


'먹고살기도 바쁜데 역사가 웬 말이냐'는 핀잔을 듣더라도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숨쉬며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사건이 역사입니다. 역사의 현장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우리가 평소 오가는 길에 있습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는 청년들과 살아있는 역사현장을 찾아나섰습니다.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도서관과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서대문형무소를 탐방하고 나서 대학생 근범(22살, 국어교육 전공)과 소감을 나눴습니다.

근범 / 친구들과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신앙하는 삶은 자기가 아닌 타자에 주목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평소 역사에 흥미도 없었고 쌓아둔 지식도 없었지만, 역사현장을 탐방하면서 분노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들여다볼수록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또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에 너무나 무감각한 자신을 발견했어요. 저의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하는 혼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김대중도서관, 시대의 부름 앞에 서다

김대중도서관에 탐방한 참가자들. 김대중 전 대통령은 70~80년대 오랫동안 동교동자택에 가택연금을 당했다. 자연스럽게 동교동자택은 반독재인사들이 찾는 곳이 되었고 이들을 '동교동계'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연세대학교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를 기증받아 개관한 최초 전직 대통령 도서관이다.


인곤 / 진정성 있는 역사 공부는 충격과 함께 시작됩니다. 자신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이제는 자신과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과 사건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면 역사가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겁니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많이 듣기만 했다가 이번 기회에 꼼꼼히 공부했습니다.

근범 /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읽었던 책이 200권 이상이었습니다. 감옥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공부하셨던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3·1민주구국선언으로 갇혔을 때도 감시원들 몰래 과자 포장지에 못으로 눌러 쓰신 편지를 봤어요. 닮고 싶은데 왠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저와는 급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인곤 /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타고난 정치인이었어요. 서른 살에 자력으로 선거에 출마한 이후 줄곧 군사독재의 탄압 속에서도 폭넓게 활동했어요. 특히 70년대부터는 김대중 개인사가 우리의 현대사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개인의 능력보다 시대의 부름이었다고 보는 게 정확한 평가일 겁니다.

최초의 전직 대통령 도서관이라서 흥미로웠는데,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만을 기록하고 당신 스스로 인정한 실책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더군요. 93년 대선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아 선거자금으로 썼어요. 상대 후보에 비해 상당히 적은 규모라 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모순되는 행동이었습니다. 불가피했다면 실존적인 고백을 함께 기록해야 뒤따르는 사람에게 교훈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근범 / '현장을 탐방한다'고 하면, 남아있는 역사 흔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인곤 님은 마치 역사책을 비판적으로 읽듯이 김대중도서관을 둘러보신 것 같아요. 시대의 부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뛰어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시대의 부름이 있는 건가요?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나요?

인곤 / 시대의 부름을 생각할 때, 언론이 떠들썩하게 주목하는 사건 때문에 헷갈리는 경우도 있어요. 마치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진보적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지요. 진보는 아는 것과 사는 것의 괴리를 좁혀가는 일상적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가려면 과거와 다른 삶을 만들어가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양한 삶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과정 자체도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일단 자신의 삶에 걸어들어오는 역사적 만남에 제대로 응대하기 바랍니다.

서대문형무소는 독재정권의 사법살인 알고 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하는 과정에서 의병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1908년 만든 서대문형무소. 최초의 근대식 감옥인 서대문형무소는 1987년까지 약 80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구금시설로 기능해왔다. 1998년부터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인곤 / 인간이 얼마나 치밀하게 잔인할 수 있는지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할 때마다 느낍니다. 서대문형무소 보안과청사 지하실에서 체계적인 취조와 고문을 했다고 해요. 일제가 이런 근대식 감옥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 1908년인데, 전국으로 확산된 계기가 1919년 3·1운동이었어요. 일제강점기 형무소 전국배치도를 보면 마치 전국이 감옥 같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곳을 일제세력에 이어 이승만정권과 박정희정권에서도 이용했다는 것이에요. 서대문형무소의 치명적인 결함은 형무소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최근 조봉암 진보당 대표가 억울하게 사법살인을 당했다는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졌어요. 조봉암 선생이 부당하게 고문당하고 사형당한 곳이 서대문형무소입니다. 또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도 박정희정권에서 부당하게 이루어진 일인데, 도예종 등 여덟 분이 사형당한 곳도 서대문형무소에요. 서대문형무소는 이분들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근범 / 서대문형무소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갑자기 우리 시대가 평화의 시대인 것 같지만 모두 속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은 감옥에 갇혀 있는 거랄까. 학벌, 경제력, 외모, 출신 같은 장벽 때문에 자유로운 교류를 못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교회가 감옥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옥에서 죄수들 간에 소통이 어려운 것처럼, 교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인곤 / 현대사회와 교회가 구조적으로 감옥과 비슷하다는 발견에 공감해요. 효과적 관리를 위해 구성원을 개별화시키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성적을 매기지요. 그러나 완벽히 구조화되어 있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해요. 그래서 악독한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폭력적인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의미 있는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억압적인 구조는 실재하지만 사람들에게 삶의 자율성도 있거든요. 그래서 구조만 탓하는 것은 게으른 겁니다. 근범의 삶과 관계를 변화시키려면 어떤 삶의 자율성이 있는지 깨달아야 해요.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입니다. 삶과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일상적 삶에서 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역사현장에서 청년들이 꿈과 행복을 발견하길, 건투를 빕니다.

정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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