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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희생되지 않는 세상 꿈꾸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을 만나다

청년아카데미 사회선교학교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탐방 일정입니다. 이번 사회선교학교는 총 7회로 기획했고 다섯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난민을 돕고 있는 공익법센터 어필, 재개발로 일터를 잃은 아현포차와 그들을 돕는 옥바라지선교센터, 노동의 권리를 박탈당한 아르바이트를 돕는 알바노조를 다녀왔습니다. 4월 12일, 네 번째로 찾은 현장은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에 있는 삼성본관, 그 앞에 있는 500일 넘게 이어져온 농성장입니다. 농성장에서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피해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반도체공장 피해노동자와 가족들이 삼성을 상대로 공개적인 사과와 보상, 재발 방지를 요구한 것이 2007년이었습니다. 벌써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어 죽거나 투병 중인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삼성은 공개 사과도 하지 않았고 피해자 배제 없는 투명한 보장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언론사에서는 삼성 측에서 이미 사과했고 보상도 진행 중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편집자 주>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농성 중이신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님과 이종란 노무사님을 만났습니다. 삼성본관 앞에서 농성하신 지는 3년째, 삼성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황유미 씨가 급성백혈병으로 돌아가시고 싸워 오신 세월은 10년이 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분들이 이렇게 긴 시간 싸워온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지 얘기를 들었습니다.

500일 넘는 시간, 그 이유를 묻다


이종란 노무사님은 2007년에 황상기 아버님을 처음 만난 얘기를 해주셨어요. 당시에 아버님은 딸을 잃은 지 얼마 안 되던 때여서 굉장히 슬픈 표정이었는데, 삼성 측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매우 단호하게 얘기하셨답니다. 내 딸이 2인1조로 일하는 곳에서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넣었다 뺐다 하는 일을 했는데, 백혈병에 걸렸다고요. 같이 일했던 이숙영 씨도 백혈병에 걸렸고, 둘 다 돌아가셨대요. 그런데도 삼성은 개인 질병이라고 우긴다고…. 삼성에 노조라도 있었으면 내 딸이 그렇게 가지 않았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노무사님은 이런 아버님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단체들과 힘을 합해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를 만들었죠. 이렇게 ‘반올림’이 2007년 11월에 결성됩니다.

황상기 아버님께서는 처음에는 따님이 걸린 백혈병이 회사 작업환경에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는데, 따님과 같은 구역에서 일했던 언니들이 유산하거나 백혈병 걸리는 걸 보고 뭔가 이상하다 여겼고, 산업재해를 어렵게 신청하는 중에 삼성은 산업재해를 인정해주지 않고, 돈 줄테니 산업재해 신청 접고 조용히 있으라는 ‘협박’ 들은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딸이 입사할 때만 해도 삼성 같은 대기업에 취직한다고 좋아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삼성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삼성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고요. 또 다시 따님 같은 산재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내가 끝까지 싸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싸워오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기업 취직한다고 좋아했었는데


때로는 “그런다고 따님 목숨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따져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황상기 아버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싸우고 계신 것은 유미 하나 때문이 아니라고. 더 이상 유미와 같이 억울하게 죽는 노동자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요. 그것이 우리 유미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실제로 반올림에서는 삼성반도체 노동자 뿐만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들과도 손 맞잡고,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아버님 얘기 들으면서 아버님의 줏대 있는 모습이 주목되었습니다. 사실 당장에 병원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10억을 준다 하면 그냥 받을 수도 있을 텐데 끝까지 투쟁하고 계시는 모습이 울림이 되었고, 그러한 줏대 있는 모습 배우고 싶었습니다.

현재까지 백혈병이나 뇌종양, 각종 암, 유사 희귀 질환에 걸린 사람이 삼성전자에서만 225명, 사망자는 78명입니다. 그런데도 삼성은 이들이 모두 개인적 질병이라는 얘기만 되풀이합니다. 개인적 질병이 아니라면 증거를 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반도체를 만드는 작업 중에 쓰이는 유해한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회사 기밀사항이라고 밝히고 있지 않아, 증거를 대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증인 덕분에 반올림이 산재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고, 결국 2011년 황유미 씨를 포함한 2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산재 인정 승소,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산재 인정도 받고, 삼성이 제3의 사회적 조정기구인 ‘조정위원회’까지 동의한 상황인데요. 이러한 상황만 보면 직업병 보상문제가 해결된 것 아니냐는 물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종란 노무사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성은 지금 언론을 조작해서 자신들이 직업병 보상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요. 삼성은 지금 자신들이 동의해서 세운 조정위원회의 권고마저 무시한 채, 반올림과는 아무런 상의 없이 자체로 피해자 입막음용 ‘보상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가해자(삼성)가 보상기준을 정하고, 보상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가해자가 주도해서 이루어지는 보상절차가 투명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모두 다 잘 아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반올림은 삼성의 이러한 행동에 반대해서 지금까지도 싸워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종란 노무사님은 아직도 우리 얘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으려고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 너무나도 힘이 된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이분들의 애씀이 무색하지 않게 저도 일상을 살아야겠다고 마음 굳게 다져봅니다.


청년아카데미에서 매주 다른 현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저곳 방문만 하고 제 삶은 바뀌지 않는다면 안 된다는 긴장이 있습니다. 먼저 이러한 방문과 만남 통해 배운 것을 어떻게 제 삶으로 들여올지 톺아보며,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주은 | 강원도 홍천 삼일학림(고등대학통합과정) 학생입니다. 지금은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있는 독립학습 기간으로 강북구 인수마을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정든 마을 떠나왔지만 또 새로운 마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마음 나누며 정겹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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