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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이 있는 마을에서 배움은 절로
우리 문화(풍물) 배우고 가르치는 이야기


놀이와 삶 그리고 문화

아이들과 풍물 공연을 보고 왔다. 집에 오더니 첫째는 머리에 파리채를 묶고, 둘째는 머리에 고무줄을 묶어서 길게 늘어뜨린다. 한 손에는 놀잇감 접시를, 한 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두드리며 머리를 흔든다. 파리채는 부포(상쇠가 머리에 쓰는 모자 같은 것)고, 고무줄은 상모란다. 30분 넘게 신나게 논다. 놀라운 건 제법 자세가 나온다는 것이다(내가 몇 년 동안 연습한 걸, 아이들은 쉽게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삶의 문화를 습득하고 내면화한다.

아이들은 가르치고 있는 교육의 내용보다 삶에서 누리고 있는 문화를 통해 배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이 삶의 문화로 자리 잡지 않는다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교육이 되기 쉽다. 학교에서 아침열기 시간과 수업 시간에 우리 삶이 담긴 노래와 말놀이를 꾸준히 해왔다. 그럼에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만만치 않은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우리 안에 자리 잡지 않는다면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피아노와 기타 소리는 익숙했지만 민요, 판소리, 풍물 소리는 익숙하지가 않고 오히려 낯설었다. 시끄럽고 끙끙대는 소리로 들려 도무지 즐길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국악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렸던 기억도 난다. 얼마 전에는 태평소가 어떻게 생긴 악기인지 모르는 분에게 ‘나팔’ 같이 생긴 거라 설명했더니 바로 이해했다. 우리 전통악기를 설명하기 위해 외국의 악기로 비유해서 설명하는 현실이다.

자본은 우리를 생산의 주체로 만들지 않고 수동적인 소비자로 만든다. 문화생활 또한 마찬가지이다. 돈을 내고 구경꾼이 된다. 우리 민족의 문화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만들고 참여하는 문화였다. 삶과 분리되지 않은 문화였다.

빼앗기고 왜곡된 우리 문화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좌우 지식인 집단 어디에서도 전통문화에 대한 주체적 재해석과 서양 문화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라는 논리가 들어설 수 없었다. ‘해방공간’이라고 불리던 미군정 시기는 ‘영어를 할 줄 아는 기독교인’들이 군정의 지도와 보호를 받으며 지식인 집단을 형성하여 그들의 생각과 가치를 제도화하는 시기였다. 미군은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하여 이틀 후인 9월 10일에 록카드 대위를 현재의 교육부 장관에 해당하는 문교부 부장에 임명한다. 일제의 문화적 잔재들을 청산한 빈자리마다 미국문화는 똬리를 틀었다. 해방 이후의 한국 문화는 미국의 가치와 척도에 의해서 재편되었다.

‘절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 앞에서 문화적 종속 운운하는 것은 이후 정권에서 배부른 이야기였다. 서구의 시각으로 우리 문화를 스스로 비하하는 정서는 오랜 시간 역사의 아픔이 축적되는 과정과 함께 견고해져갔다.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서양 문화에 깊게 노출되며 지냈다. 할리우드 영화와 팝송을 통해 미국 문화를 동경하게 되고, 대중매체를 통해 서구의 가치를 욕망하며 자랐다. 영어 문구가 들어가거나 서양 사람이 선전하면 왠지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고 가치가 올라간 느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삶 속에서 배우는 우리 문화


2011년 마을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셈인데, 풍물교육에 대해 어떤 의미를 두고 배우고 가르쳐야 할지 질문이 생겼다. 그래서 풍물을 가르치는 곳들의 교육 목적을 살펴봤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내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을 그저 우리 ‘전통’이기 때문에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익힐 때 반복은 중요하다. 갓난아기가 걷고 말하게 되는 과정도 무수한 반복이 있기에 가능한 것처럼, 새로운 것을 몸에 들일 때에는 무수한 반복이 필요하다. 그냥 반복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반복이어야 한다. 어른들은 배우고자 하는 동기가 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즐겁지 않으면 반복하는 게 고역이 된다.

처음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음악적 합에 중심을 뒀다. 세밀한 기술보다는 서로 맞춰가는 재미를 느껴보자는 의미였다. 서로 맞춰가려면 서로의 호흡을 살펴야 한다. 나에게 집중되어 있으면 맞출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내 소리 내기도 바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기 힘들다. 처음에는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맞춰간다. 어느 순간 합이 딱 맞았을 때,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공명이 일어나는 느낌이랄까?). 배운 지 1년 정도 되어갈 때, 이런 경험이 학생들에게 있었다. 한 학생이 지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 이거였구나 하는 표정으로 친구들을 바라보던 그 표정! 그런 상황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싶은 욕망을 끌어내고, 반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나 이런 학습은 꼭 풍물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첫 질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중에, 풍물이 가지고 있는 대동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주체적으로 문화를 만들고 향유했으며, 그것은 마을공동체를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걸 공부를 통해 알게 됐다. 서구문명이 들어오면서 전통문화가 파괴됐다고 하지만, 깊은 이면에는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면서 문화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서구 문명이 마구잡이로 들어왔어도 마을공동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 문화는 이어져오지 않았을까?


우리 전통문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마을공동체 없이 재생이 불가능하다. 우리 문화가 박제화되고 무대화된 것을 비판하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밖에 재생이 불가능하다. 풍물판이 열리더라도 관이 주도해서 하고(또는 관에서 지원받는 단체), 프로그램과 체험 형식으로만 이루어지고 있기에 그곳에는 볼거리만 있을 뿐이다. 풍물판이 담고 있는 삶의 주체성, 대동성은 함께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관계가 없이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학교 졸업식, 운동회, 혼인잔치와 같이 잔치가 열리는 곳에서 울리는 풍물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함께 사는 이모, 삼촌들, 학교 선배들이 벌이는 풍물판에서 놀아본 경험이 풍성하다. 이렇게 풍물을 즐기는 문화 속에 있기 때문에, 풍물을 즐겁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풍물을 처음 배우고 가르칠 때는 음악적인 부분에 많이 집중했다. 배움을 풀어내는 방식도 무대공연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풍물이 가지고 있는 ‘대동성’에 주목하면서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을 했다. 대보름에 길놀이를 해볼까? 혹시 민원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마을창작소를 오가며 마주치는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각이 났다.

풍물은 우리 안에 있는 신명(밝음)을 드러내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잔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학생들과 나누고 한가위에 할머니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할머니들과 소통하기 어려웠다. 우리 말을 건성건성 들으셨다. 학생들이 초대장을 만들어 드리고, 만날 때마다 날짜와 시간을 확인시켜드렸다. 잔치 당일 날 할머니들에게 한 번 더 시간을 알려드렸더니, 구겨진 초대장을 흔들며 ‘잉 알고 있어!’ 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통해 이 날을 많이 기다리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 공연이 시작되니 할머니들은 민요와 판소리를 따라 부르시기도 하고, 나와서 춤을 추시기도 했다. 준비한 새참을 먹으면서 소싯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후에 단오날에도 한 번 더 초대해서 함께 어우러져 놀았다. 만날 때마다, ‘고맙다.’, ‘잘 자랐다’, ‘훌륭한 학생들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우리 전통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기타를 치고 연주하는 걸 좋아한다. 나에게 기타와 장구 중에 어느 것이 좋은지 묻는 건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묻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보다 서구에서 들어온 문화를 더 좋아하고 수준 높다고 생각한다. 그건 정당한 평가가 아니다. 어린 시절 ‘장구’나 ‘꽹과리’는 선택지에 없었다. 내 옷장에 생활한복이 없었듯이 말이다. 아빠가 육아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엄마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듯, 교육과정에 ‘전통문화’ 수업을 가득 채운다 해도, 태풍처럼 몰아치는 대중문화와 겨우 균형을 맞추는 정도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 문화는 체험과 공연형식으로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많은 문화유산도 국가의 지원이 끊긴다면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남아 있고 연명되고 있는 문화는 우리 삶에 큰 의미가 없다. 우리 문화는 그렇게 이어져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문화를 배운다는 건 소비중심적인 문화를 벗어나 내가 주체가 되어 문화를 향유하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조작된 욕망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장구를 치며 판소리를 부르며 새로운 욕망을 만들 수 있다. 다른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아이돌 노래를 흥얼거릴 때, 우리 아이들은 흙놀이를 하며 판소리를 흥얼거린다. 단지 수업시간에 배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든든한 관계성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마을공동체가 함께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이주원 | 인수마을학교에서 풍물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신명나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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