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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만든 마을도서관
내가 꿈꾸던 도심 속 공유 공간, 아름다운마을서원을 소개합니다!


강북구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엔 특별한 게 있다. 마을사람들이 힘 모아, 무엇보다도 ‘좋아서’ 꾸린 공간이다. 이 친구 저 친구 손때 묻은 책들이 가득한 곳, 각자 응원 받은 재능들이 조금씩 모아져 구석구석 가꾸어진 곳, 편한 차림으로 걸어가서 친구들과 일상을 나눌 수도, 조용히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도 있는 곳, 관심 있는 주제로 모여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거나 몸 써서 창작할 수 있는 곳, 살면서 축하하거나 기쁨 나누고픈 일 있을 때, 이웃들 초대해서 조촐하고 정겹게 잔치할 수 있는 곳, 도심 속 사랑방 같은 ‘아름다운마을서원’이다.

친구들 앞에서 공연도 보여주고

첫 돌은 맞은 용수는 과연 무엇을 집었을까?


8월 6일 마을서원으로 여러 모습의 청년들, 어린이들, 부모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내내 땀 흘려 마을서원을 단장한 이들이 마을서원 여는 잔치를 벌이는 날이다. 맛난 주전부리 싸와서 함께 나누고, 즐거운 공연도 보고, 한 마을 사는 이웃들이 맨 얼굴로 만나 오순도순 둘러앉으니, 어느새 들썩들썩 잔치 분위기가 난다.

마을밥상에서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귀여움 받고 자라난 아기 ‘용수’가 첫 생일을 맞았다. 부모랑 또래인 친구들이 마음 모아 마을서원 여는 날에 맞춰 용수 돌잔치도 준비했다. 이모삼촌, 형누나들 환호성에 자신이 주인공임을 아는지 용수는 방긋방긋 행복한 얼굴로 연신 손뼉을 친다. 엄마아빠는 아이와 함께 마을에서 살아가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읽었다. 용수가 살아갈 삶에 대한 소망을 담아 이모삼촌들이 준비한 다양한 돌잡이 선물들도 앞에 놓인다. 용수가 손으로 집은 것은 바로 자두! 자두처럼 탱글탱글 보기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옆에서 만나는 여러 생명들과 어우러져 살아야겠네 하는 덕담이 이어진다.

마을서원 열린 날을 축하하며 공연하는 청년들.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모둠 이뤄 틈틈이 준비해온 공연들도 이어졌다. 마을 잔치 때면 어김없이 멋진 공연으로 흥을 돋우는 마을초등학교 학생들은, 갈고닦은 통기타 실력을 뽐냈다. 마을 청년들, 아이들 보육품앗이를 같이하는 부모들, 일상에서 마주칠 일 잦은 이들끼리 몸치 음치 따지지 않고 웃음보 참아가며 연습했구나 하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지어 붙인 노랫말 하나하나에 삶의 냄새,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내 요리도 나누고 맛난 거 나눠 먹고

감자범벅 만들기에 집중하는 아이들.


잔치 자리에 먹을거리가 빠질 수 없다. 하늘땅어린이공동체 친구들이 아침부터 부지런히 감자 삶고 으깨어 ‘감자범벅’을 만들어왔다. 빵 좋아하는 이들은 손수 빵을 구워와 자랑스레 나누었고, 생일 축하 받은 용수네는 방앗간에서 뽑은 쑥가래떡을 돌려, 더욱 푸짐한 차림이 되었다. 시원한 마실거리로 더위도 식히며 여유롭게 앉아 이야기꽃을 여기저기서 피우니, 제법 찻집 분위기가 난다. 잔치 주인과 손님이 따로 없고, 뒷정리도 다같이 척척 이루어진다.

아름다운마을서원은, 공간 마련부터 청소, 도배, 가구 제작과 배치, 설비, 커튼 등 큼직한 일들을 전문업체에 맡기지 않고, 마을사람들이 여러 날에 걸쳐 시간을 나누고 힘을 모아 직접 했다. 그동안 공동주거공간을 꾸려 지내오며 쌓인 삶의 역량과 생활기술이 이런 때 유용하게 쓰이기도 하고, 또 부족한 기술은 이참에 익히면서 막힘없이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맡은 이들이 시간 날 때를 정해서 진행하느라, 주제에 따른 책 분류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필요한 물품은 바로 사기보다, 필요를 알리고 기증해줄 집이 있는지 물어봤다. 여기 놔두고 함께 쓰면 된다고 생각하면, 굳이 내 집에 따로 보관해둘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십시일반으로 멋지게 채워지는 공적 공간을 보며, 내 집처럼 소중한 공간이 또 하나 생기는 느낌이었다.

이 방 저 방 흩어져 먹을 것 나누며 이야기꽃 피운다.


마을서원은 인수동 북한산 아랫마을 한 상가건물 4층과 5층 복층 구조로 되어 있다. 4층은 소모임이 가능한 ‘햇살움’(큰 방), 강의 장소로 사용되는 ‘너른움’(거실)으로, 5층은 어린이도서관으로 쓰이는 ‘반짝움’(작은 방)과 재봉틀, 서예 등을 하는 ‘마주공방’으로 나뉘어 있다.

이 친구 저 친구 손 때 묻은 책들 가득

4층은 인문사회과학 서적 1만 권 정도가 비치된 마을도서관이다. 역사, 철학, 종교, 동양고전, 교육 등 다양한 종류별로 이 사람 저 사람 열심히 공부하고 손때 묻은 책들이 책장 가득 모여 있다. 어디서 한꺼번에 들어온 게 아니라, 전부 마을사람들이 각자 집에 소장해온 책들을 한 데 기증받고 선별한 것이다. 마을에서 이런저런 공부모임이 열릴 때마다, 굳이 개별적으로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빌리고 싶은 경우, 대출기록부에 손글씨로 적어두고 빌려갔다가 나중에 제자리에 꽂아두면 된다. 자기 공부를 하거나 회사 재택업무를 할 사람도 알아서 책상 앞에 앉아 자기 볼일 보면 된다. 정갈한 자세로 할 일 하기에는 집보다 낫다.

5층 마주공방 공간은, 커튼을 달아 직사광선을 막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계단을 올라가 아늑한 다락방 같은 느낌을 주는 5층은 마을공방과 어린이도서관으로 사용된다. 마주공방에서는 목공, 재봉과 바느질, 서예 등 손작업으로 할 수 있는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5층 옥탑이라 창으로 들어오는 북한산 산바람을 느끼며, 손재주를 키워가는 친구들 작품을 보면서 쉼을 누리기만 해도 좋다. 어린이책들이 비치된 5층 작은 방은, 마을 어린이들이 마을밥상에서 저녁 먹고 꼭 거쳐가는 작은 도서관이 됐다. 그리고 테라스에선 상자텃밭 안 다양한 생명들이 자연과 벗하는 삶을 선사해주고 있다.

마을서원은 관리하는 이, 사용하는 이가 따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자율적으로 쓰고 관리하는 공동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마을서원을 함께 사용하는 이들, 다음 사람을 배려하는 예의와 염치만 기억하면 된다. 뒷정리는 기본이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보니, 이런저런 모임들이 겹치지 않도록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를 쓰겠다든지 하는 계획을 미리 알리고 사소한 소통과 조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하고 싶은 것 펼칠 수 있는 장


도시에서 과연 돈을 지불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될까. 돈 내지 않고,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내 사적 공간을 빼면 찾아보기 어렵다. 공부를 하거나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시려 해도 대부분 카페를 찾아야 하고, 차 값 혹은 차 값에 포함된 공간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나를 알고 나를 이해해주는 이들이 아니다.

돈으로, 인맥으로, 이해관계로 인해 공간과 동선도 제약된다. 필연적으로 인생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의 선택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불가능한 꿈도 꿔보고, 하고 싶은 것 해볼까 하는 마음을 실현하려면, 그걸 실제로 펼쳐 보일 수 있는 판이 있어야 한다. 서로를 맑게 지켜봐줄 수 있는 관계가 있어야 한다. 집에서 노는 것과 서원에서 노는 건 다르다. 어느 마을이나 그런 공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오늘 젊은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열려 있고, ‘비빌 언덕’ 같은 곳.

김준표 | 한 주에 한 번, 마을 친구들 덕에 1년 남짓 배운 풍물의 맛을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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