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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에게는 지금이 자기 삶 시작하는 봄이다(2)
삼일학림 하늘땅살이 날적이

10월 24일 흙날
아침에 단비가 왔다. 비가 오니 밀싹도 더욱 큰 것 같고, 얼마 전에 심은 마늘싹도 뿌리를 잘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 올 것 같다. 오늘은 상강, 서리는 내리지 않았지만 이제 곧 기온이 떨어지게 될 것 같다.  - 예진

아침에 도토리가루 담궈 둔 물을 갈아주었는데 어제 밤에 물 갈아주지 않고 오래 두어서 그런지, 아니면 소금 때문이었는지 앙금이 잘 가라앉아있어서 갈아주는 데 10분도 안 걸렸다. 오늘 밤을 마지막으로 가루를 말려 묵을 쑤기로 했다.
고구마 밭에 갔다. 고구마줄기를 덮어주긴 했는데, 흙이 드러나 있어서 낙엽을 주워와 덮어주었다. 낙엽이 바람에 날아갈 걸 생각하며 아주 수북이 올려주었다.  - 은진

겨울 남새인 마늘을 심었다. 마늘은 겨울 되기 전에 먼저 뿌리를 내리고 이듬해 봄에 싹이 올라온다고 하는데 정말 신기한 것 같다. 너무 깊게 심으면 싹이 늦게 올라오고 너무 얕게 심으면 마늘이 얼 수도 있다고 하는데 난 너무 얕게 심은 것 같아서 혹시 얼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덮개라도 충분히 덮어줘야겠다.  - 어진


10월 25일 해날

팥을 수확한 후로 팥에서 계속 아삭아삭 소리가 났다. 처음엔 팥이 마르면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듣다 보니 너무 수상해서 팥꼬투리를 하나하나 터뜨려보기 시작했다. 팥꼬투리들 안에 알 수 없는 배설물들이 엄청 많았다! 내가 이렇게 꼬투리를 까는데도 아삭아삭 소리는 대담하게 계속 들렸다. 결국 찾아냈다! 팥꼬투리 안에서 내 팥을 훔쳐먹고 잔뜩 똥을 싸놓은 녀석은 애벌레였다. 무슨 애벌레인지는 모르지만 애벌레도 놀랐는지 고개를 치켜들고 날 빤히 쳐다봤다. 두 마리나 찾았다. 그 애벌레 두 마리는? 오늘 하늘나라로 갔다. 아직도 팥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성은

밭을 정리했다. 토마토는 지줏대를 뽑아내고, 토마토줄기는 굵어서 잘 썩지 않기 때문에 작두질로 작게 잘라서 밭으로 돌려주었다. 수확하고 밭에 팽개쳐두다시피 했던 고구마줄기와 팥 줄기도 작두질을 해주었다. 잘게 자른 줄기들로 다 덮이지 않는 부분은 산에서 가져온 낙엽을 덮어주었다. 최근에 떨어진 낙엽들은 잘 날아가서, 위에 있는 낙엽들은 걷어내고 밑에 있던 낙엽을 가져왔다. 휑하게 벌거벗고 있는 밭에게 따뜻한 옷을 입혀주니 뿌듯했다.  - 예진

10월 26일 달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녹두죽 만들었다. 어제 쌀과 함께 불려둔 녹두에 물을 채우고 40분 정도 끓였다. 그랬더니 녹두죽이 만들어졌다. 된장을 죽에 풀까 생각했는데 혹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서 풀지 않았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쉬운 요리였다. 내년에 녹두를 심는다면 다른 요리를 해보고 싶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감사했다. 나는 내가 만든 녹두죽인지 맛있어서 세 그릇을 먹었다.
메주콩을 수확했다. 엊그제 심은 것 같은데 벌써 수확하니 신기했다. 이 메주콩으로 메주를 만든다 생각하니 기대가 되었다. 작년 겨울 방 안에 항상 메주 냄새가 나서 좋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진혁

수수가 언제쯤 익을까, 계속 기다리다가 오늘 새 한마리가 내 수수를 물어가는 걸 봤다. 이제 수확해도 되겠다.  - 성은

메밀 갈무리를 했다. 줄기를 한 주먹씩 잡고 손으로 훑어서 털어냈다. 떨어진 알들을 모아서 키질을 해야 하는데 어려웠다. 메주콩 수확해서 콩 말리는 천막에 뒀다.  - 상원

10월 27일 불날
지난번 아미산에 갔을 때 주운 도토리로 쑨 도토리묵밥이 나왔다. 평소 먹던 묵보다 색이 연했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생각보다 떫은맛이 적었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묵밥 한 그릇 먹고 나니 온몸에 열이 돈다. 날이 쌀쌀해지니 따뜻한 국물이 자꾸만 생각난다.  - 예진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인데 너무 환하고 예쁘다. 달이 밝으면 밤에 다닐 때 손전등도 필요 없다. 도시 사는 사람들은 달빛으로도 그림자가 생긴다는 걸 알까? 인공적인 빛 때문에 달빛도 느끼지 못하고 달그림자도 모를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 성은

10월 28일 물날
정말 오랜만에 비가 왔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슬슬 겨울이 오는 것을 느꼈다. 조, 수수를 수확하며 다른 작물들에 비해 이 밭에 애정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밭을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산에 가서 낙엽을 주워와 메주콩밭, 고구마밭에 뿌려주었다. 
팥도 수확하고 포대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팥을 정리해야겠다. 추운 날 열심히 밭일을 한 것 같다. 오늘밤에는 따뜻하게 자야겠다.  - 진혁

메주콩 수확했다. 콩이 잘 마르고 익어서 꼬투리 안에서 콩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곧 수수도 수확해야지.  - 성은

고구마줄기 바싹 말라서 봉투에 담아두고, 검은 참깨 털었다. 키 들고서 까불리는데 어쩜 그리 안 되던지 바람 불어 떨어지고, 너무 세게 까불려 떨어졌다. 주워 담으니 흙이 섞여 키질이 더 어려워졌다. 우여곡절 끝에 깨 키질을 마치고 나니, 깨가 반절이나 줄어있었다. 흘린 것도 있을 테지만, 까끄레기가 반이었다 해도 헛말이 아니다. 내친 김에 밀까지 까불렀다. 밀은 묵직해서 더 쉬웠다. 녹두 갈무리했다. 털어서 어레미에 거르고, 키질했다. 민요 부르면서 하니, 똑같은 일 되풀이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 주은

10월 29일 나무날
조를 수확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수확과 밭 정리를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수는 아직 덜 익은 것도 있어서 수확을 안했고, 조는 노란 황금빛깔로 예쁘게 익어서 먼저 수확했다. 수확량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좋았지만, 나중엔 너무 많이 나와서 갈무리할 걱정을 했다. 그래도 농사가 잘 되니 기분은 좋았다. 씨까지 잘 받고 싶다.  - 어진

팥을 깐 꼬투리를 버리지 않고 불 땔 때 썼다. 정말 너무 잘 타서 깜짝 놀랐다. 덕분에 불이 잘 붙었다. 같이 사는 해민언니가 아파서 뜨겁게 땠다. 오늘 해민언니를 아랫목에서 재울 거다.  - 성은

10월 30일 쇠날
다함께 메주콩을 털었다. 마른 콩은 잘 털어졌는데, 아직 덜 말라 잘 털어지지 않은 줄기가 많았다. 신나게 메주콩을 때려주었다.
밤에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꿀을 먹는 건지 고구마를 먹는 건지 헷갈릴 만큼 달았다.  - 은진

메주콩 털었다. 아직 덜 마른 메주콩도 있었다. 노래 부르면서 박자에 맞춰 막대기로 두들기기도 했다. 콩이 사방으로 날아가, 나중에 허리 숙이고 떨어진 콩들을 찾아야 했다. 두들겨 맞은 메주콩은 씨로 쓰기 좀 그러니까, 털기 전에 씨앗 할 것만 따로 빼두었다.  - 성은

11월 2일 달날
지난주에 조를 수확하고 툇마루 위에서 조를 말렸다. 계속 툇마루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서 갈무리를 시작했다. 조도 콩처럼 털어서 갈무리할 수도 있지만 나는 비벼서 갈무리를 했다. 한 번에 다 비비기엔 많은 양이라 나눠서 비비려고 생각하고 있다. 집에 가져가서 조밥 먹을 생각을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 어진

11월 3일 불날
오늘은 무의 날이었다. 밥상모심으로 동치미와 깍두기를 담그기로 했다. 아침에 동치미를 만들 무를 씻었다. 동치미로 쓸 무는 상처가 나지 않은 단단한 것이 좋다. 씻은 무를 소금물에 절여뒀다가 내일 아침에 동치미를 만들기로 했다. 오후에는 깍두기를 담갔다. 네 소쿠리의 무를 빡빡 씻어서 사각형으로 잘랐다. 자른 무를 절이는 동안 양념을 만들었다. 무와 섞었을 때 싱거워질 것을 생각하고 조금 짜게 만들면 된다. 저녁에는 깍두기를 양념에 버무려 김치통에 담았다. - 은진

11월 4일 물날
아침에 쪽파를 거두고 갓을 수확했다. 푸른 갓으로 동치미를 담그면 맑은 국물이 되고, 붉은 갓으로 하면 분홍색 국물이 된다. 갓과 쪽파를 깨끗이 씻어 놓고 동치미 물을 만들었다. 동치미 국물에는 물과 소금, 찹쌀풀, 생강, 다진 마늘을 넣었다. 무와 대추, 고추를 섞어 담은 항아리에 만들어 놓은 물을 가득 부어주었다. 그 위에 쪽파와 갓을 올려주고 항아리 뚜껑을 닫았다. 갓과 대추는 톡쏘는 맛을 내준다고 한다. 오늘 담근 동치미는 12월에 먹을 수 있다. -은진

11월 5일 나무날
3일 동안 비빈 것을 키질했다. 처음에 대강 한번하고 두 번째로 키질을 했는데도 남아있는 까끄레기가 있어서 고민이다. 세 번하고, 네 번하고, 계속하면 점점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아무리 키질을 잘해도 떨어지는 조가 있기 때문에 이젠 키질을 해서 날리는 까끄레기보다 떨엊는 조가 더 많을 것 같아서 그만뒀다. 오늘 키질을 처음 해봤는데 재미있었다. - 어진

11월 11일 물날
오늘부터 김장을 시작했다. 오늘은 김장 양념에 넣을 쪽파도 까고, 배추도 다듬고 절였다. 절이는 동안에 계속 배추 속을 떼어먹고 서로 먹여줬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춥지 않게 일했다. - 성은

11월 12일 나무날
어제에 이어서 김장했다. 오늘은 절여놓은 배추를 씻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엄청난 양의 양념을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섞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온몸으로 양념을 섞어야 했기 때문이다. 점심 먹고부터는 드디어 배추를 버무렸다. 매년 양념이 모자랐어서 양념을 아껴가며 버무렸는데도 양념이 모자랐다. 결국 양념이 없어서 모든 배추를 다 버무리진 못했지만 많이 했다. 다들 고생했을텐데 보쌈이 나와서인지 지친 얼굴들이 밝아졌다. 김장을 무사히 마무리지어서 다행이다. - 성은

11월 19일 나무날
도토리가루로 묵을 쑤어보았다. 가루와 물을 부피비로 5:1로 녹인 다음 소금을 조금 넣고 저어주며 끓였다. 물의 비율과 끓이는 시간으로 찰랑찰랑 거리는 것이나 식감이 결정되는 것 같다. 도토리 가루가 금방 녹았다가도 다시 앙금을 만들기 때문에 타지 않도록 쉴새 없이 바닥을 저어주었다. 젓다보면 젤리같이 되는데, 찬물에 넣어보았을 때, 흐트러지지 않고 굳어질 때까지 끓이면 된다. 틀에 끓인 묵을 담고 식히면 묵이 된다. 이 가루는 녹일 때부터 벌써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마 내일 묵은 맛있을 것이다. - 은진

11월 20일 쇠날
어제 만든 묵이 엄청 찰랑거렸다. 어제 물을 1:5보다 조금 더 넣었었는데, 조금 많았는지, 잘 부서졌다. 먹어보니 저번처럼 떫은 맛이 거의 없고 맛있었다. 묵도 양념도 맛있어서 밥을 많이 먹었다.
메주 쑬 준비를 했다. 장작을 패고, 잔가지를 주워 모으고, 한울에서 모여 메주콩을 골라내었다.  - 은진

11월 26일 나무날
오늘도 눈이 왔다. 어제보다 더 춥고 굵은 눈발이 날린다. 지붕 끝에 고드름도 얼고 물웅덩이에 살얼음이 언다. - 상원

11월 30일 달날
오랜만에 날이 맑다. 햇님 등지고 앉아 어레미질하니, 따땃한 볕이 포근히 등허리를 감싸준다. 
눈 땜시 미루고 있던 일들 마무리했다. 밀밭 마른풀도 덮어주고 오이밭 설거지도 했다. 날 어둑어둑해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꺼끌거리는 오이 덩굴 걷어내고, 고스란히 덮어줬다. - 주은

12월 1일 불날
배추밭에 깔아놓은 배추잎이 좀 듬성듬성하다. 마침 팥 갈무리하고 나온 꼬투리가 있어 덮어주었다. - 주은

비닐집에 걸어두었던 수수를 갈무리했다. 수확한지 꽤 되어서 망에 넣고 탕탕 쳐주었다. 바싹 마른 수수가 떨어져 나간다. 망에 있던 수수열매들은 모아두고, 줄기만 따로 챙겨두었다. 다음에 수수 키질하면 되겠다. 수수 갈무리하고 남은 줄기로는 빗자루 만들면 좋겠다. - 예진

12월 11일 쇠날
메주를 쑤었다. 가마솥에 씻은 콩을 넣고 현미밥 지을 때처럼 손목까지 물이 오도록 채웠다. 불을 지피고 3시간 넘게 끓여주었다. 중간에 한 번씩 와서 콩물이 넘치지 않도록 뚜껑을 열어 찬 공기를 넣어주었다. 다 익은 메주콩은 고구마처럼 달았다. 예전에 마른 메주를 떼먹을 때에는 몰랐는데, 메주콩은 달고 고소한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렇게 말하지만 마른 메주도 맛있어서 엄청 떼어 먹었었다.) 으깬 메주콩을 틀에 넣어 단단하게 만들어 준 다음, 모서리가 날카로우면 잘 떨어지기 때문에 모서리를 만져 둥글게 만들어주었다. 콩이 메주가 되고 메주가 된장과 간장이 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도 복잡하고, 정성도 많이 들어간다. 올해 봄 메주를 담가 보았고, 장을 갈라보았고, 겨울에 메주를 만들어 보았는데, 이런 과정들 사이사이에 수 백 년의 지혜가 쌓여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 은진

상원, 해민, 은진, 진혁 성은, 어진, 예진, 주은 | 밝은누리움터에서 하늘, 땅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삼일학림 학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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