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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공간과 몸의 습관의 힘

어떤 장소에 들어가면 몸을 조심하게 된다. 작년 공동육아워크숍에 참가하러 일주일에 한 번씩 하자센터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아기 이유식을 데우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쓰려고 할 때마다 전자레인지 플러그가 뽑혀 있었고, 누구 하나 잔소리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유식을 데우고 나면 꼭 플러그를 뽑아 가지런히 두곤 했다. 고압송전탑 때문에 고통 받는 밀양 할머니들 소식을 들으며 머리와 가슴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을 때였지만, 여전히 내 몸은 절전보다는 풍족함에 익숙했다. 그런데 그곳에선 내 몸이 조심하게 되었다. '음식쓰레기 제로'에 도전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고 센터 마당에 알록달록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음식부산물을 퇴비로 만들어주는) 지렁이집을 보게 되는 그곳에서 밥을 남기기란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홍천생명평화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내 삶의 방식이 드러나 부끄러울라 몸을 조심하게 되고 긴장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그냥 공간 자체가 주는 긴장이랄까. 재미있고 의미 있지만 난 못하겠다 싶은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생태뒷간이다. 바가지에 큰일을 보고 톱밥과 왕겨를 뿌려 퇴비를 만드는 뒷간이 버젓이 눈앞에 보이는데 평소처럼 물휴지를 마음껏 쓰기란 어려웠다. 데리고 간 아들이 옳다구나 하고 두 번이나 응가를 했는데, 물휴지를 쉬 뽑지 못하고 엉덩이를 물로 씻기는 수고를 하게 되었다. 볼일 한번 보고 물 18리터을 쓰며 소위 깨끗한 생활을 영위하던 내 일상이 부끄러워지는 시점이었다.

우리가 나고 돌아갈 이 땅을,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리 살기 위해 내 생활의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돌아보면 내 머릿속 지식과 열망이 가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똥을 왕겨에 싸서 통에 담고 그렇게 모인 똥퇴비를 퇴비간으로 옮겨 발효시킨 후 거름으로 사용하는 삶과 수세식 변기 버튼 하나로 편리함을 얻는 삶의 차이만큼이나 내 머릿속 생각과 몸의 습관의 차이는 넓고 크다. 생태뒷간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도심 한가운데 사는 사람이 따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먹고 싸는 가장 기본적인 일상으로 생명평화를 실현해내는 생생한 모습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머리와 가슴에 있는 것을 몸이 살아내기까지 홍천마을 사람들에게는 무수한 고민, 사건, 노력, 시간이 있었으리라. 전기를 쓰고 물을 쓰고 세제를 쓰고 응가하는 일 뿐이랴. 어떻게 하면 이 땅과 이웃과 벗하며 잘 살까하는 오랜 시간의 치열한 고민들이 흙집으로, 생태뒷간으로,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의 삶 속에 드러났을 것이다. 말이 아닌 몸으로 사는 삶, 몸의 습관으로 보여주는 높은 뜻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혜석 님은 중학교에서 영어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3살, 5살)를 키우며 공동육아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열두 가정이 공동체주택을 지어 살아가면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4일 서울 하.나.의.교회 식구들과 함께 홍천생명평화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생명이 자리잡고 기다리는 모습 같던 '움'

지난 3월 15일 홍천생명평화마을을 방문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황토로 아름답게 지은 마을학교와 여러 황토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뒤에 있는 숲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황토집처럼 마을을 소개해주신 분과 오며 가며 인사를 건네는 마을 식구들의 따뜻한 미소가 서로 닮아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방들 앞에 방 이름이 붙어있는데, 멋스러운 한글 이름이 너무 잘 어울렸다. '밝은누리움터'와 같이 '~움터' 이런 식으로 지어져 있는데, 작은 방들이지만 작은 움(싹)들이 그 안에서 생명의 싹을 틔우기에 더없이 충분한 느낌이었다. 영어 'womb(움)'처럼 뭔가 생명이 그 안에 자리 잡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런 이름들을 통해 이 마을이 바라보고 걸어가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생태화장실이다. 소변과 대변을 따로 모아서 퇴비를 만들고 그것을 땅에 돌려주는 방식으로 서로 순환하는 모습이 불편하기보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편안함이 있었다. 늘 양변기에서 물을 많이 써야 하고, 어디로 흘러가서 어떻게 땅을 더럽힐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몸은 편해도 마음은 불편했는데, 화장실 가는 것도 이웃과 자연 앞에 떳떳해지는 느낌이었다.

이후에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난 분들의 얼굴에서 밝은 생명이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마을 이름처럼 온 생명으로 다른 모든 생명들과 함께 어우러져 참 평화를 이루어가는 마을이 되길 바라고, 내 삶도 이와 같이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모든 생명과 하나가 되길 소망해본다.

일산에서 박용현, 정난희, 주원 님이 가정이 3월 15일 홍천생명평화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박용현 님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일하며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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