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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지만 오랜 친구처럼 지낸 나날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브루더호프 사람들은 사진으로 찍을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메이플릿지 마을 앞에서 우리끼리 방문사진을 찍었다

2014년 1월 23일 : 메이플릿지에 도착!


뉴욕 외각, 가로등도 몇 개 없는 산골짜기, 그곳에 브루더호프가 있었다.
도착하니 어둠속에서 공동체 식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해요!"

2014년 1월 24일 : 마운트아카데미 방문하다

브루더호프 고등학교인 '마운트아카데미'로 갔다. 2012년 10월 1일에 개교한 마운트아카데미는 준비하는 데 10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전교생이 200명 정도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우리에게 영어로 말씀하실 때 굉장히 천천히 말씀해주셨다. 그곳 학생들에게도 "이분들이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마운트아카데미에는 컴퓨터도 없고 컴퓨터 관련 수업도 없다. 학생들이 컴퓨터 수업을 원하지 않을까? 교장선생님은 가정이나 이웃에서 전혀 쓰지 않기에 학생들도 그런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학생들이 각자 개성과 재능을 어떻게 발현시키는지, 혹시 공부에 흥미가 없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함께 교육해가는지 질문을 드렸다. 다양한 학생들의 재능을 모두 지원하기가 어려워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공동체에서 다양한 사역들이 이루어지기에 때로는 공부를 하지 않는 핑계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고 하기 쉬운 것이 무엇인가보다 자기 선물이 무엇인지 주목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하셨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적극적이었고,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손을 번쩍번쩍 들어 대답했다. 원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교장선생님의 깜짝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농부'였다. 아마 부모들 삶을 통해 자연스레 '농(農)'의 가치를 몸에 들인 것 같다. 공동체에서 자란 아이들이 외부를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열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해주는지도 궁금했다. 그에 대한 답은 없다고 하셨다. 물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모든 학생에게 같은 방법을 쓰려고 할 때 실패했다고 한다. 각자 맞는 답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니 내가 묵는 집 가족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곳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노래를 부른다. 누구든지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노래책에 적힌 그 노래 번호를 큰소리로 말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알린다. 누군가 음 높이를 맞추고 노래를 시작하면 모두 화음을 넣으며 따라 부르는데 반주 없이도 풍성한 합창이 만들어진다.

2014년 1월 25일 : 노동과 여유로운 휴식

아침식사를 하고서 뒷정리를 돕고, 대청소를 함께했다. 매주 토요일이면 마을 곳곳을 쓸고 닦는다고 한다. 집집마다 세탁기를 두지 않고 마을세탁소를 이용하면서 전기와 물을 절약한다. 세탁기뿐 아니라 전기제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청소를 마치고 또래친구를 따라 마을을 둘러보았는데, 아무 집이나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만큼 이웃과 편하고 가족 같은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을 정도였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관심과 환희는 직접써준 환영카드에도 드러난다.


2014년 1월 26일 : 주일 모임, "안녕"

오늘은 예배가 있는 주일이다. 예배를 모임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예배가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일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동체 사람 모두가 한 공간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앉았다. 한 사람이 진실되게 자기 이야기를 나누면, 여러 사람들이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갔다. 전체 앞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의 지점을 드러내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힘은, 일상에서 쌓아간 신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주일 모임을 마치고 머물던 집으로 돌아가서 감사의 편지와 작은 선물을 전하고, 공동체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우리에게 점심으로 먹으라며 샌드위치를 풍성하게 싸주셨다. 낯선 이들을 정겹게 맞이해주시고 며칠간 가족처럼 대해주신 분들께 참 감사했다.

-주은, 해민, 서영-


세이비어교회에서

세이비어교회의 사역을 소개해주시는 팀씨, 빈민들을 위한 사역이 워싱턴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2014년 1월 27일~28일

브루더호프에서 차로 5시간 정도 운전해서 워싱턴디씨에 있는 세이비어교회로 이동하였다. 세이비어교회공동체는 독립된 작은 교회들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교회들은 하나 혹은 여러 사역을 맡고 있다. 처음 문제의식을 가진 한두 명의 사람이 기도모임을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간다. 그러는 동안 동일한 소명을 발견한 사람들이 결합하여 교회를 이루고 재정과 마음을 모아 그 운동을 지속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교회의 의미는 하나님나라 운동이 시작되는 곳이고, 자신의 운동을 물심으로 지지해주는 곳이었다.

노숙인들에게 재활의 기회와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크라이스트하우스는 세이비어교회가 만든 중요한 사역중 하나.


도시에서 높은 월세로 인해 쫓겨나가는 사람들을 마음에 품은 두 여성의 기도와 수고로 주거용 건물을 기증받을 수 있었고, 점차 사람들이 결합하여 낮은 가격으로 주거지를 임대해주는 사역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 10여 채를 가지고 그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그밖에 전과자나 이주민들의 취업을 도와주는 사역,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치유하기 어려운 병을 얻은 환자들이 외롭지 않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함께하는 호스피스병원, 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음악·미술·춤·문학을 통해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도록 가르쳐주는 방과후 문화센터 등 40여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들이 고민을 공유하고 함께 기도하는 마을찻집이 있다. 각 교회(기초공동체)가 각자의 문제의식과 애통함을 가지고 담대하게 그 소명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호-


아미쉬마을에서

아미쉬들은 여전히 마차를 타고 다닌다. 부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되자 직접 대장간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29일


오늘은 '니즐리' 씨 댁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니 수줍고 환한 미소의 크리스티나와 루쓰가 우리를 반긴다. 열아홉 살 난 크리스티나가 이 집 큰 딸이다. 둘은 우리에게 농장과 밭, 양계장을 보여줬다. 이곳에서도 말구경은 빠질 수 없다. 마구간에는 니즐리 씨가 장화를 신고 일하고 계셨다. 새벽 다섯 시에 인근 공장에 나가 일하시고, 점심때쯤 돌아와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집주변은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번엔 크리스티나를 따라 집안 구경을 했다. 지하에 가보니 생각보다 환하고 탁 트인 공간이 인상적이다. 아미쉬들은 따로 교회 건물이 없고 집마다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리는데, 이 집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이 공간을 사용한다고 한다. 지하에는 맞닿은 두 롤러를 손잡이로 돌려 세탁하는 수동세탁기가 있었고, 옛날 석탄난로가 있었다. 우리 할머니도 쓰셨던 발로 돌리는 수동재봉틀이 두 대 있었다. 모든 옷을 만들어 입는다고 했다. 크리스티나는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로 만든 잼과 음료, 병조림이 있는 저장고도 보여주었다. 전기와 전자기기 없이 이 정도 깔끔하게 살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할까? 괜히 새벽 네 시에 일어나는 게 아니구나.

저녁식사 후 담아둔 질문들을 할 기회가 생겼다. 다음은 니즐리 씨 가족과 나눈 대화 일부.
"집안의 커튼이라든가, 마차 장식 등의 문제로 논쟁할 때도 있다고 들었는데, 삶의 형식에만 너무 갇히게 되지는 않나요?"
"우리 삶의 양식과 신앙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이런 방식이 하나님을 가까이하기에 매우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죠."
"모두 따로 살고 재산을 공유하는 제도적 틀도 없는데, 어떤 방식으로 물질을 나누며 한 몸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나요?"
"우리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이나, 사회보장 혜택을 거부하며 살고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 아프게 되면 꽤 많은 비용이 들죠. 이 때 모두가 자발적으로 재정을 모으고 한마음으로 도와요. 그 외에도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하고, 한 가족처럼 서로 보살피고 있어요."
"학교 교육을 8학년까지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학교는 외부 세상에 대해 알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주로 영어·수학·미술·사회 등을 배우는데, 이것은 8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원한다면 대학에도 갈 수 있지만, 그리 권장되지는 않아요. 대신 우리의 신앙과 철학, 농사나 살림법은 가정에서 교육합니다. 70%가 넘는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도 아미쉬로써의 삶을 선택하는데, 그것은 부모의 역할이 큽니다. 부모가 이런 생활에 행복해하지 않는데, 자녀가 아미쉬로 살기는 어렵죠."

2014년 1월 30일

오늘은 아미쉬 초등학교에 갔다. 서른 명 남짓한 학생들이 1학년부터 8학년까지 저학년과 고학년 두 모둠으로 나뉘어, 교실 가운데에 커튼을 쳐서 함께 모여 공부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다른 학년 수업을 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각자 문제를 풀거나 분량을 정해 책을 읽으며 자기공부를 했다. 모든 학년 수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워낙 조용히 지내다보니 서로의 수업에 거의 방해가 되지 않았다. 공교육 방과후에서 열 명 학생에게서도 차이가 커서 힘들다고 했던 내게, 이런 교육방식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조용히 수업을 지켜보다가, 약속한 시간이 되어 우리를 소개했다. 마침 음력 설날이라, 설날에 대해 설명하고 태권무와 민요가락도 선보였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제안하셔서 다함께 '예수 사랑하심은'이라는 찬송가를 불렀다. 우리는 한국어로, 그들은 영어, 독일어로 불렀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 신앙으로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과의 만남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승화-


리바플레이스공동체에서

리바플레이스공동체에 도착한 다음날 비빔밥 50인분을 만들어 대접했다.


2014년 1월 31일

인디애나에서 기차를 타고 시카고 중심가 밀레니엄파크역에 내렸다. 시골인 브루더호프에서 도시인 워싱턴으로 갔을 때 잠시 생경함을 느꼈는데, 워싱턴에 비해 시카고는 훨씬 큰 도시여서인지 더 낯설게 느껴졌다. 시카고 부근 에반스톤이라는 위성도시에 리바플레이스공동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리바플레이스교회와 리바플레이스공동체에 우리 공동체를 소개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비빔밥 50인분을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기로 했다. 순례단이 다같이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다듬고 썰고 무치고 볶아서 식사 준비를 했다. 상마다 한가운데에 비빔밥을 놓고 리바플레이스 분들과 맛있게 밥상교제를 나누며 우리를 소개했다.

공동체 소개글을 읽으시는 데이빗씨. 그는 마을공동체가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삶에 대한 전망을 일관되게 하고 있어서 놀랍다고 하셨다.



2014년 2월 1일

질문과 토론은 계속 이어졌다. 리바플레이스교회와 리바플레이스공동체 간의 관계가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리바플레이스공동체는 교회를 중요한 사역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리바플레이스가 품고 있는 장은 참으로 역동적이고 다양하다. 백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캄보디아인, 네팔인, 아프리카인 등 인종도 다양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살고, 서너 세대가 함께 어울리고 있다. 그런 다양성을 품으면서도, 공동체적 중심을 잡고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다.

리바플레이스공동체 방문 마지막 날 아침식사 뒤.


2014년 2월 2일

리바플레이스의 1.5세대인 리더들, 그리고 초기 개척과정부터 계속 해오신 어르신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1950년대에 공동체를 시작해서 지금껏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고 계신 어르신들과 만나는 자리 자체가 역사를 이어가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은 리바플레이스의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보다, 하나님나라 공동체운동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셨다. 그리고 리바플레이스의 현재 고민과 과제에 대해서 많이 나누어주셨다. 여전히 청년의 얼로 살고 계신 어른들이었다. 우리 이야기도 궁금해 하셨다. 특히 공동체가 재정 공유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셨다. 리바플레이스에서는 초기부터 재정을 모두 공유해서 한꺼번에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생활양식이고 관계를 지켜주는 틀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도 있다고 한다. 틀을 창조적으로 바꿔서 공동체적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다면, 변화를 고려해봐야겠다고 하셨다. 어떤 양식이든 시작할 때는 공동체에서 대안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공동체가 넘어서야 할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리바플레이스 1세대이신 조안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인생에 대한 감회가 느껴졌다.


조안 할머니는 퀼트를 아주 잘 만드는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인생을 퀼트에 비유해서 말씀해주셨다. "인생에는 밝은 조각처럼 행복한 시기,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어두운 조각처럼 힘든 시기, 부족함과 한계의 기억들도 있어. 그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꿰어 맞추어 져서 인생이라는 퀼트가 완성되기에, 우리는 그 전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할머니는 눈물을 닦으셨다. 그 눈물은 아마 후회나 회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삶을 돌아오며 매순간 지키며 애써왔던 것들, 그럼에도 상처 받고 상처 주었던 한계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사랑으로 그것들을 품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숙연함을 느끼는 삶의 고백이었다.

리바교회에서 알게 된 청소년 친구와 함께.


선물로 가져간 엽서에는 홍천마을 생활의 그림이 담겨 있다.


선물로 간 홍천마을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데이빗씨.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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