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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 공동체들

브루더호프 공동체

브루더호프는 1920년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던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1차대전 패전으로 혼란스러운 사회상황을 타개하고자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질문으로 귀결되어 사도행전 성서말씀에 따라서 공동체가 답이라고 마음이 모아졌다. 공동체를 도시에서 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아이들 건강이 나빠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농촌으로 옮겼다. 나치가 집권하자 영국으로 도피했으나, 다시 영국정부에 떠밀려 파라과이로 망명했는데, 정글을 개척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로 다양한 사건과 어려움을 경험하였고, 지금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 모여 살고 있다.

브루더호프는 함께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삶을 산다. 재산을 공유하고 공동체 사역들에 역할을 맡아 일하고 물질을 각자 필요한 만큼 분배하여 단순소박하게 생활한다. 우리는 3박4일 동안 몇몇 공동주택에 흩어져서 지냈고, 주일모임(예배)에 참여했다. 주일모임은 다같이 원형으로 둘러앉아서 하는데, 모임에서 직접적 목회와 회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공동체에서 나고 자란 한 청년에게 성인이 되어 종신서약을 한 이후에 무엇이 달라지냐고 물었더니, "회개와 용서"라고 답했다. 어렸을 때는 모르고 자랐는데, 공동체에서는 회개와 용서를 매일 끊임없이 하게 된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고 답해서 인상적이었다.

세이비어교회

세이비어교회는 1947년 고든과 메리코스비라는 사람의 초기지도력으로 생성된 곳이다. 워싱턴디씨 빈민가에 위치해 있다. 많은 숫자는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보기에 교인수 150명을 넘긴 적이 없다고 한다. 입교를 원하는 사람은 '서번트 리더십 스쿨'이라는 훈련과정에서 배우고 '멘토(목회위원)'와 만나 십일조 등 돈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사역에도 참여한다. 그리고 인생길 이야기를 나누고 서약을 하면 일원이 된다.

세이비어교회는 지역사회의 필요를 사역으로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영성과 사역의 균형을 강조한다. 물론 지역사회의 필요에 집중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과 소명이라고 믿는다. 한두 사람의 기도모임이 먼저 시작되고 동일한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결합하여 재정을 모아서 사역을 한다. 지금 40여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각 사역의 수입과 지출, 그리고 헌금 등 재정규모를 전체적으로 공유하고 연대한다. 우리가 방문한 '크라이스트 하우스'는 노숙인들에게 쉴 곳과 치료가 필요한 것을 보고 시작되었다. 하루 40~50명을 치료하고 성경공부와 밥상교제도 함께한다. 빈민과 노숙인들에게 집과 직업을 구해주는데, 그렇지만 그들이 다시 그 굴레로 돌아가는 한계가 있어서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질문도 갖고 있다.

메노나이트와 아미쉬

메노나이트와 아미쉬는 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인디애나 등지에 널리 퍼져 마을로 살아간다. <순교자의 거울>이라는 책이 집마다 있는데, 종교개혁 때 국가권력에 포섭되는 것에 저항하고 철저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신앙 선배들이 순교당한 역사를 대대로 거울삼아 살아가도록 기록된 책이다. 아미쉬 예배는 교구별로 드리는데, 교회 건물이 없고 가정별로 돌아가며 장소를 제공한다. 그리고 공동체 초기 양식에 따라 펜실베이니아 독일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삶의 양식도 현대문명을 경계하며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겸손의 가치를 따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복장 등 세속과 분리된 삶의 규율이 담긴 '오르트눙'이라는 교리집을 함께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규율을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런 삶의 양식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규율은 방편일 뿐, 이것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데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집과 재산을 가족 단위로 관리하고 대부분 자녀를 많이 낳아 기르며, 가족이 먹을 규모로 농사짓는 땅을 물려준다. 아미쉬 자녀들은 공동체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8학년 수업을 받는다. 신앙적 가치를, 말보다 마을 일상에서 보고 배운다. 공동체에서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신앙과 삶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세례를 받는다.

리바플레이스

리바플레이스는 1957년에 생겨났다. 2차대전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청년들이 말씀을 나누다가 도시로 가서 공동체를 생성했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뿌리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애통한 마음으로 관계를 새롭게 맺어가는 훈련을 해왔다. 공동체가 60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격랑의 시기도 있었다. 영적인 예언과 치유가 강조되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떠나게 되었다. 치유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겪었다. 70년대 말에는 리바플레이스교회를 세웠다. 공동체에 속하지 않지만 예배를 함께 드리는 교인들이 있다. 이후에는 청년지도력을 키우고자 도제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청년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했다.

생활을 더 밀접하게 하고자 한 집에 여러 가정씩 생활공동체로 살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뿐 아니라 부양해야 할 부모님이나 공동체 구성원이 아니어도 자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 이들도 함께 살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재정을 공유하고 생활비를 받아서 쓰는데, 재정을 공유하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수위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리바플레이스 1세대들은, 성서에서 사라의 태가 끊어진 줄 알았지만 자식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주신 것처럼, 여전히 공동체가 새로워지기를 향한 갈망이 있다고 하셨다.

정리 : 길서영, 조원호, 오승화, 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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