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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마을 하늘땅살이 11월 날적이

메주 말리는 방안에 달달한 콩내음 가득하다

11월 3일 한지 바르고 가랑잎 붙이고
지난 주말, 흙집 방 한 칸 한지 도배를 했다. 밀가루로 풀 쑤어, 한지 붙이고 있자니 몸과 마음이 참 편안했다. 살고 있는 집이라 늘 당연한 듯 살아오다가도, 흙과 나무로 지은 집에 광목천으로 방바닥 깔고, 풀 쑤어 한지 붙이고 사는 삶이, 참 거스를 것 없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밀가루풀이 남은 김에, 방에 들여놓은 이불장 문이 반질반질한 게 늘 거슬리던 생각이 나서, 그 문에도 한지 바르고, 가을 가랑잎들 주워와 붙였다. 노동이 놀이요 예술이라더니, 복에 겹게 즐거운 반나절을 보냈다. - 민선

11월 3일 가마솥 씻고 길들이기

지난주에 무청 데치느라 오랜만에 가마솥 불 지폈는데 어두워지도록 일이 이어져, 가마솥 정리를 오늘에서야 했다. 물 여러 번 갈아주며 씻고, 길들이고… 쉽지 않지만, 하고 나면 마음에 미소가 지어지는 일 중 하나. 이맘 때 무청 데쳐 널거나 메주 쑬 때 외에도 가마솥을 일상에 좀 더 들이고 싶은 마음은 늘 있는데 언제쯤 선뜻 몸이 움직이게 될까? - 한영

11월 4일 배추, 무 잘 보관했다가
서리태, 배추 걷었다. 늦게 파종해서 그런지 아직 어리기만하다. 배추, 무 씨를 잘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작년에는 실패했다. 나에게는, 배추와 무를 겨우내 잘 보관했다가, 이듬 해 다시 심어 씨를 받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이다. - 승화

11월 6일 아쉬움을 간절함으로
몇 년 이어진 이어짓기 피해로 김장밭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고, 마련해둔 밭에도 여러 사연으로 김장농사가 잘 되진 않았다. 올해 김장남새는 가까운 곳에서 농사짓는 여러 분들에게 사게 되었다. 이 아쉬움을, 채종과 밭 계획으로 이미 시작되고 있는 다음해 김장농사에 대한 간절함으로 잘 바꾸어가야겠다. - 한영

11월 8일 배춧잎만 몇 자루
오후에는 배춧잎 삶아 걸어두었다. 해먹을 수 있는 음식 떠올리면 밭으로 보낼 배춧잎도 다시 주워 담게 되고, 그러다보니 배춧잎만 몇 자루가 나왔다. 여럿이 함께 해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일. 해질 무렵 후두둑 떨어지는 비에, 말리던 파뿌리, 무말랭이 부엌방으로 들여놓으니 파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 한영

▲ 여럿이 함께 해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김장.

11월 11일 김치 둔 방 온도 주시
다양한 크기의 무 큼직하게 썰어 김치 담그고 나니 드디어 김장 끝! 이제 잘 익혀 먹는 일만 남은 지금, 김치 둔 방 온도가 조금 더 내려가면 좋을텐데, 너무 추워지더라도 그 방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하는 바람으로 방의 온도계를 주시하고 있다. 밀, 마늘밭 덮기, 콩 털기… 내일부터 다시 이어질 일들 헤아려본다. - 한영

11월 12일 눈이 함께 덮어주면
터전 주변 갈대, 억새 베고, 낙엽과 팥 갈무리한 부산물 긁어모아 마늘밭 덮었다. 갈대, 억새 대가 굵고 쉽게 정돈되지 않아 들뜬 느낌. 틈새로 바람이 들어갈 것만 같아, 눈이라도 와서 함께 덮어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스치듯 지나갔다. 밑거름 넣지 않은 밭에는 콩깍지 오줌에 담궈둔 것 건져서 덮어주었다. 덮개와 거름의 효과를 함께 내려고 한 건데, 거름이 너무 강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일부 밭에만 시험 삼아 해보았다. 밭에 남아 있는 어린 배추들은 얼었다 녹았다를 거듭하며 단맛이 강해졌다. 진한 초록빛의 튼튼한 잎을 보니, 며칠 전 김장할 때 잎이 다 부서지고 떨어지던 배추와 절로 비교가 되었다. 뿌리가 튼실한 것 위주로 씨앗 할 것 골라두고, 나머지는 찬거리로 챙겨두었다. - 한영

11월 14일 풍성하던 밀싹을 싹둑
추위에 깜짝 놀라 밀밭과 마늘밭 이중으로 덮어주고 왔다. 그런데 강건너 밭 풍성하게 난 앉은뱅이 밀 싹이 낫으로 싹둑 베인 것마냥 잘라져있다. 또 어떤 동물이란 말인가? 올해 직접 거둔 씨앗으로 야심차게 네 이랑이나 심었는데 한숨부터 나왔다. - 승화

11월 14일 저장고에 찾아온 손님
어제 덮던 밀밭 이어 덮었다. 바람이 불어도 덜 차갑게 느껴져 어제보다 일하기 한결 좋았다. 주변에서 갈대를 베어서 덮으려다보니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아직 조금 더 남았다. 한동안 조용하던 쥐가 최근에 저장고까지 파고든 것을 오늘 확인하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저장고 온도 뿐 아니라 곳곳의 틈도 주시하며 지내게 생겼다. - 한영

11월 18일 절로 가지 떨구는 나무에게 한 수
오랜만에 잔가지 하러 숲에 잠시 들렀다가 온 땅이 낙엽으로 두툼히 이불 덮은 것을 보며 한겨울 그냥 나지 않는 자연에게 한 수 배운다. 바람이나 동물 같은 외부의 자극 때문이든, 필요없는 가지들을 절로 떨구는 것이든 가지치기하며 스스로를 정돈해가는 모습이 오늘따라 새삼스러웠다. 늘 숲에 갈 때마다 잔가지를 한 아름 내어주니 고마울 따름. - 한영

11월 19일 얼었다 녹았다 달아진 배추
주변 갈대 베어와서 밀밭 덮어주던 것 마무리했다. 내리쬐는 햇살에 덮개를 걷어내야 하는 날인가 잠깐 착각될 정도로 따뜻한 오후였다. 밭에 남아있던 배추 마저 수확해서 국도 끓이고, 쌈배추로도 먹었다. 얼었다 녹았다 거듭하고 최근에 눈까지 맞아서 그런지 참으로 달았다. - 한영

11월 21일 잘 마른 메주콩
거의 3주 만에 메주콩 꽁꽁 싸매두었던 천막 걷었다. 잘 말라있어 막대로 두들기니 노린재 흔적 남은 꼬투리 빼고는 잘 털린다. 많지 않은 양이라 다 털고, 검불과 콩만 남겨 천막 속에 싸두었다. 늘 밀려나던 일, 여럿 도움 받아 시작해서 개운하다. - 한영

11월 24일 내 생애 최초 들기름 짜기
어제 거둔 들깨 씻었다. 이제 곧 방앗간서 내 생에 최초의 들기름을 짜게 될 것이다. 시골할머니들 다 하는 일인데 나는 왜이리 설레는지 모르겠다. 나 혼자는 엄두도 못 냈을텐데, 함께 기름 짜는 친구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 승화

11월 25일 잣잎 이불
싹 나 자라고 있는 밀에 덮개 덮어주었다. 볏짚 구하기 어렵고, 갈대 베자니 그것도 여의치 않아, 잣나무숲에서 마른 잣잎 걷어와 두둑히 덮어주었다. 함께 일한 학생들은 '목화솜이불'이라며 만족해했다. 눈 많고 추운 홍천의 겨울 잘 지내길…. '딱! 인 그것'이 없어도 터전 가까운 곳에서 필요를 채울 수 있어 감사하다. - 민선

11월 25일 메주콩 갈무리
메주콩 두들기며 떨어진 꼬투리 같은 큰 검불 골라내고, 어레미로 잔티끌 걸러내고 집안에서 콩 고르기 할 수 있는 상태로 거칠게 갈무리했다. 딱 한 말. 더 추워지기 전에 바깥일 하나 덜어서 다행이다. - 한영


11월 26일 메주걸이, 메주틀, 가마솥 땔감 준비
다음 주 메주 쑤기 앞두고 함께 메주 쑬 학생들과 메주걸이, 메주틀 만들고 가마솥 불 지필 땔감 준비해두었다. 다음 주에 기온이 뚝 떨어진다니 포근했던 이번 주에 메주 쑤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더 추웠을 때 메주 쑤었던 것 기억하며 힘내서 부지런히 콩 골라야지. - 한영

11월 27일 다음 해 씨앗 고르기
콩 고르다가 해 좋을 때 밭에 가서 서리태 거두었다. 두 해 전에 심었을 때도 김장과 메주콩 갈무리하느라 제 때 수확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더 늦어졌다. 꼬투리가 터져 밭 두둑 위에 흩어져 있는 콩들을 줍느라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제 때 마음과 손길을 주지 못한 값을 톡톡히 치른다. 적게 심은 데다 노린재, 고라니까지 겪고 얼마 되지 않는 양이라 꼬투리만 얼른 거둬왔다. 그리고 다시 콩 고르기. 다른 해에 비해 골라낼 것이 많은 중에도 다음 해 씨앗 고르기는 여전히 중하고, 힘이 되는 일이다. - 한영

▲ 첫날 빚은 메주. 따뜻한 방에 걸어둘 때가 되었다.

12월 1일 방안에 달달한 콩내음 가득
오늘부터 메주 쑤기 시작이다. 올해는 터전밭에서 농사지은 콩에다 이웃에서 농사지은 콩을 더해 닷새 동안 열 말 정도 쑬 계획이다. 첫날부터 기온 뚝, 눈바람까지 몰아친다. 가마솥 화덕 주변으로도 눈바람이 들이쳤지만 콩은 그 어느 때보다 푹 잘 삶아진 듯. 메주 말리고 있는 방안에 달달한 콩내음 가득하다. 면보, 콩 으깰 때 발 감쌀 것 등이 더 필요할 듯하여 누런 소창천 마름질하고 재주 있는 손 빌려 재봉질해서 여러 번 삶아 널어두었다. - 한영
▲ 가마솥에 불을 펴 메주콩을 삶는다.
12월 2일 삶은 메주콩 맛
메주 쑤기 둘째날. 어제보다 날이 더 차다. 저장고 온도도 10도에서 4도로 뚝 떨어졌다. 콩 양을 어제보다 조금 더 늘렸더니 콩물 끓어 넘치는 것 조절하는 게 더 까다로워졌다. 오늘 메주쑤기에 함께한 학생들은 불그스름하게 푹 삶아진 메주콩 한두 개 집어 먹더니, 그 맛에 반해 으깬 콩도 달달한 단호박같다며 으깬 것, 아닌 것 가리지 않고 연신 집어먹기 바쁘다. 어제오늘 메주콩 삶고 남은 걸쭉한 물, 식고나니 반고체상태. 올 봄에 담근 된장항아리에 섞어주었다. 된장의 빛깔과 맛 모두 고단한 몸과 맘에 기쁨과 위로가 되었다. - 한영

12월 3일 밭벼 볏짚
첫날 빚은 메주는 따뜻한 방에 걸어둘 때가 되었다. 작년에 얻은 볏짚, 올해 얻은 볏짚에, 혹여나 부족할까 싶어 밭벼 씨로 얻어온 한줌 볏단에서 낟알 훑어냈다. 탈곡기로 털 때는 금방이었는데 손으로 하나하나 훑으려니 꽤 시간이 걸린다. 오늘이 메주 쑤기 사흘째인데 메주콩 삶고 남는 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콩이 푹 삶아지지 않은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내일 첫 마음으로 물 조절, 불 조절 더 세심하게 해야겠다. - 한영

12월 4일 반복되는 일 속에 다른 결이
메주 쑤기 나흘째. 한 학생이 지루하지 않냐 질문한다. 날마다 콩 삶기는 정도도 다르고, 함께 돕고 배우는 이들도 매일 다르니 불 지피는 데 걸리는 시간부터 빚어진 메주 모양까지 달라져 반복되는 일 속에 다른 결이 느껴진다. 가끔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이를테면 오늘처럼 콩이 타버린 것이다. 어제 가마솥에 콩 삶고 남은 물이 조금 고여 있었는데 괜찮겠지 넘겨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탄 것에 비해 콩에서 탄내가 많이 나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 월요일에 쑤었던 메주는 따뜻한 구들방에 걸어두고 말리면서 천천히 띄우기 시작했다. 밭벼 볏짚이 길쭉길쭉해서 엮기 좋았다. - 한영

12월 5일 서리태 고르기
세 시간 가량 엉덩이 한 번 안 떼고 서리태 골랐다. 덕분에 요동치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 승화

12월 8일 하얀 꽃 피다
잠자는 구들방과 함께 메주 쑤었던 학생들의 생활공간에 쉰 장 정도 되는 메주를 다 나눠 걸고, 지난 주 닷새 동안 부지런히 콩 삶아낸 가마솥 닦고 길들이고 나니 메주 쑤기는 마무리된 기분이다. 구들방에 걸어둔 메주는 벌써 작게 하얀 꽃이 피기 시작했다. - 한영

* cafe.daum.net/agimazung (아름다운 마을 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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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 민선, 한영, 윤희 | 학교와 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생명들을 보며 희망을 얻는 홍천의 소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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