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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관계로 산다는 것
우리 집에 찾아온 평화랑 이야기

마흔 즈음의 남자 일곱, 그리고 세 살, 네 살, 다섯 살 어린이 네 명, 이렇게가 제가 주말마다 함께 만나는 '평화랑' 사람들입니다. '평화와 함께', '평화의 물결(浪)'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모아져 모임 이름을 평화랑이라고 지었습니다. 감히 평화의 일꾼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마을에서 힘 쓸 일을 찾아 울력을 하기도 하고, 함께 하는 아이들을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준비해서 들려주고 또 같이 놉니다. 어린 아이들을 집중하게 하려면 다양한 목소리와 몸동작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이제 뭐 약간의 오바도 감행합니다.

문득 마을에 처음 와서 나이에 따라 형, 동생으로 부르는 게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친구가 된 이들이 몇 명 안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많아졌습니다. 말부터 벽을 허무니 마음의 벽도 순식간에 무너져갔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습니다.

평화랑은 막내를 빼면 모두 사십대입니다. 사십대 아저씨들의 생활이 생각만큼 복잡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가능성이 열려 있었던 다양한 활동영역들도 대부분 몇 가지로 정리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일터와 가정의 소중함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문득 삶의 한 귀퉁이에 선 자신을 발견하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보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살아오던 패턴을 바꾸기에는 삶이 너무 무거워졌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저는 마을에 오기 전에 아파트에서 오륙 년 살았습니다. 아파트는 살기 편했습니다. 교통도 편리했고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이나 학교, 학원도 모두 갖춰져 있었습니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찾아와주었고 집값은 정부가 자기일처럼 봐주었습니다. 나는 아파트에서 적당히 벌고 적당히 인사하고 적당히 익명이 보장되는 교양생활을 적당히 즐기며 살았습니다.

삶의 방향이나 여건을 바꿀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쾌적한 주거, 편리한 교통, 안정된 직장, 아이들 학교, 자가용, 집사 직분 같은 것들이 하나씩 세팅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 삶은 차츰 무거워졌습니다. 군더더기가 많아졌습니다. 다른 길을 보았다고 갑자기 길을 바꾸기에는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이래저래 불만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 내용이나 대상은 모호했습니다. 주변에서도 고민은 이해받지 못했고 나는 점점 특이한(삐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친한 가정들과 수시로 만나서 놀고 같이 밥 먹고 수다를 떠는 게 낙이라면 낙이었습니다. 휴가도 같이 보냈습니다. 그러나 노는 것을 넘어서 인생과 신념의 고민들을 삶으로 풀어내기에는 그만한 각오나 공감대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사생활은 늘 관여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경제적인 형편이나 하는 일 때문에 친구가 멀리 이사 가게 되어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실한 관계까지 탐하기에는 제 몸과 정신이 게을렀습니다. 저는 겉과 속 모두 아파트가 되어갔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마을입니다. 그런데 저는 갑자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스스로 부자라고 여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도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도 찾아갔는데, 우리 집은 너무 넓고 가진 게 많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이 년의 시간을 함께 살면서, 용기 내어 시작한 발걸음의 실제 의미를 천천히 확인해가고 있습니다.

인생을 걸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가볍게 살아가는 마을 이웃들 속에서 나는 이제 가벼워져야 했습니다. 부나 가난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상대적이라는 말은 결국 삶의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내가 맞추어야 할 수준이나 기준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도 나에게 어떤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였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고민하고 이 모든 걸 함께 기억해갈 친구와 형과 동생들이 생겼습니다. 나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삶으로 들려줄 이들이 바로 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때로는 그들을 불편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라도 이제는 말 따로 삶 따로 아파트에서처럼 '적당히' 살 수 없습니다. 이번주 평화랑 모임을 우리집에서 합니다. 전 그게 진짜 좋습니다.

이호연 | 나이 마흔이 되어 갑자기 배울 게 많아진 세상. 잘 살기 위해서, 한몸되기 위해서 세상과 사람과 생명을 새롭게 만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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