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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몫이자 우리로 해볼 수 있는 일
공동육아 도토리집이 시작된 이야기


2013년 4월 인수동마을에 공동육아 도토리집이 문을 열었다. 당시 세 살배기 자녀를 둔 부모들과 다섯 어린이들로 출발했다. 마을에서 함께 아이를 품고 낳고 기르며 예방접종과 자연면역력에 대해 공부하고, 보육품앗이도 시도하며 관계를 쌓아온 이들이었다. 인근에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마을어린이집이 있지만, 자리가 나려면 오래 기다려야 했다. 마을에서 새로운 아기들이 매년 태어나기에 어린이집에 보내고자 하는 필요는 계속 생겨났다. 마을에 어린이집이 하나 더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 속에서 마냥 기다리지 않고 직접 공동육아를 해보자는 마음이 모아지고 마을사람들이 응원하는 기운이 더해졌다.

인수동마을에서 10년 넘게 살고 결혼과 임신·출산·육아과정을 통과하면서 마을에 자리 잡은 안정적인 조건들을 누려왔는데, 마을공동체를 일궈온 헌신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잘 감당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 마을에서 이제 한몸살이를 배워가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마을어린이집을 만들 때처럼 시작부터 하나하나 자기 질문을 가지고 경험해가고 싶다는 마음, 진로를 찾다가 마을 어린이들을 만나가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든 마음, 아이가 겪은 어떤 어려움을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잘 극복해가길 바라는 마음, 마을 바깥에서 소식을 듣고 마을에 대한 신뢰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진 마음들이 모여 용기를 냈다.

도토리집은 전임교사 두 명에 더해 부모들이 돌아가며 자원교사가 되었다. 맞벌이 부모나 둘째 출산을 전후한 부모는 여건이 될 때 참여하도록 배려하고, 노래, 몸놀이, 인형극, 요리 등 도토리집 필요를 찾아 각자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분담했다. 어린이집으로 쓸 터전도 물색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어린이집이 마련될 때까지 한 가정이 낮 동안 비어 있는 자기네 집을 도토리집 공간으로 쓰겠다고 기꺼이 제안했다. 오후 네 시, 자녀를 데리러온 부모들은, 이 가정이 불편하지 않도록 낮 동안 교사와 아이들이 지낸 공간을 정성껏 정돈했다.

▲ 마을 산책을 하는 아이들과 교사, 부모, 산책 선생님.


막 걸음마를 뗀 어린이들과 산책하는 오전에는 마을에서 시간이 되는 이모삼촌들이 산책도우미로 함께했다. 특히 어린이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에 반한 비혼 청년들은 틈 날 때면 약속을 잡고 도토리집 문을 두드렸다. 마을어린이집 언니·오빠·형·누나들 손잡고 나들이 가기도 하고, 초등학교와 어린이집, 도토리집이 다함께 모여 동지잔치도 벌였다. 처음에 엄마나 아빠 없이도 낮잠을 잘 수 있을까 싶던 어린이들이 리듬감 있는 하루 일과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잘 자고 잘 먹고, 공동생활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교사와 부모들도 마음이 커가면서 힘 모아 도토리집 물적 토대를 마련해갔다.

도토리집 어린이들은 어느새 동생들도 하나둘 늘어나 의젓한 언니·오빠·형·누나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마을공동체 사람들 뿐 아니라 주변에서 알음알음 찾아온 부모들이 늘어난 것이다. 지금은 네 살 어린이 다섯 명, 세 살 세 명, 두 살 한 명과 네 교사들이 함께 지낸다. 보다 넓고 안정된 공간이 절실해질 무렵, 마당 있는 주택을 새로운 터전으로 구하게 되었다.

마을어린이집, 마을서원, 마을초등학교, 마을밥상, 예술창작실 등 공적 공간을 함께 마련하고 마을공동체를 일구어온 경험과 지혜가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은 고비마다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면서 잘 돌아보고 다시 잘 살아가도록 격려해주며 한몸살이를 배워가는 과정을 겪는다. 일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일시적으로 결집된 게 아니라 삶을 나누며 가진 것에 의존하지 않고 함께 지켜주는 관계인 것이다.

▲ 새터전 내벽에 벽화를 그리는 이모들.


최근 도토리집 새 터전을 단장하는 데 온 마을사람들이 동원됐다. 울력을 제안 받은 이들은 휴일과 주말마다 신나게 달려가 담장과 대문 페인트칠이며, 마당 청소, 벽화 그리기, 내부 청소와 수리, 짐 나르기 등으로 낡은 주택을 화사하고 어린이들이 생활하기 좋게 손봤다. 울력은 꼭 도토리집 필요 때문보다 마을사람들에게도 협동하여 구슬땀을 흘리며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장이었다. 도토리집 선생님들은 아이들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이나 책, 놀잇감 등 마을사람들에게 받은 선물들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아이들과 함께 이웃집들에 떡을 돌리고 인사를 드렸지만, 다시 한 번 마을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자 10월 18일에 여는 잔치도 벌였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싶게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면 선뜻 나서지 못했을지 모른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염려를 내려놓고 뜻을 모은 이들과 함께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성실히 꾸준히 해갈 때 누룩처럼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 도토리집여는잔치에서 준비해 온 공연을 선보이는 아이들.


김준표 | 한몸살이의 신비를 배워가며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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