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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동안 심심할거야, 한번 불러 모으자!
품앗이로 함께하면 뭘 해도 신나


어린 시절, 방학은 다가올 때마다 늘 설렘을 주었지만 막상 방학이 되면 심심한 날들이 많았지요. "학교는 뭘 할까? 운동장은 뭘 할까? 선생님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내 짝은 숙제 다 했을까?" 하는 김용택 시인의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방학은 있던 자리를 벗어나 허전함을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아도 마을 놀이터와 골목길, 마을밥상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에게 방학은 친구들과 종일품앗이로 더 진한 만남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방학 첫날은 서안이와 집에서 그림도 그리고 악기연주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또래들을 초대할 생각을 해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품앗이 계획도 짜게 되었습니다. 마침 가까이에 살고 있는 학부모와 함께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게 되었지요. 하루는 마을서원, 하루는 분수에서 물놀이할 수 있는 이웃동네 큰 놀이터로, 또 버스타고 나들이 가기로 했습니다. 계획이 잡히고 시간이 허락되는 이모삼촌들이 모이자 마을 게시판에 소식을 올렸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가 이어져 아이들 여덟과 어른 다섯이 함께 하는 이틀의 일정이 꾸려졌죠.

▲ 아이들의 표정에 함께하는 미술 활동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 찼다.


첫날은 함께하는 미술활동 ‘돌고래 모자이크’를 위해 마을서원에 모였습니다. 아이들은 여벌옷과 간식, 도시락을 챙겨 제시간에 모두 도착했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함께 완성할 돌고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가미가 아니라 허파로 숨 쉬는 돌고래는 물 위로 나올 때마다 허파에 공기를 가득 채운다는 사실과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돌고래를 ‘물돼지’라 불렀다는 새로운 사실도 함께 배웠습니다. 이어서 커다란 전지 위에 돌고래 네 마리를 그렸습니다. 이모 손끝에서 슥슥싹싹 그려지는 돌고래들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밑그림을 네 등분해서 각 조가 한 장씩 가져갔습니다. 아이들은 색종이와 잡지들에서 색깔을 골라 자유롭게 붙이기 시작합니다.

어른 한 명에 아이 두 명씩 이루어진 네 조는 각기 다른 개성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집중하조’, ‘깔끔하조’, ‘꼼꼼하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밑그림은 네 개로 흩어져 따로 또 같이 완성되어갔습니다. 드디어 약속했던 마무리시간. 볕이 드는 창문에 네 개의 그림을 한데 모아 붙여보았습니다. 모두가 탄성을 지르는 순간이었는데요, 다른 개성으로 완성된 듯한 모자이크가 한데 모이니 나름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것이었어요.

▲ 하루에 두 번 나오는 분수에서 옷이 흠뻑 젖도록 노는 아이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그림 앞에서 사진도 찍고 빠른 속도로 정리정돈을 한 뒤 점심밥상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들과 이모삼촌들 모두 여벌의 옷까지 준비해서 간 분수 놀이터!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간에만 나오는 분수에 때맞춰 도착한 아이들은 옷이 흠뻑 젖도록 놀다가 추우면 태양에 달궈진 바닥에 몸을 맡겼어요. 신나게 놀고 부모님이 싸주신 간식으로 양껏 배를 채웠습니다. 더 놀고 싶었지만 다음날 박물관 일정을 위해 마을로 돌아왔네요.

다음날은 학교에서 나들이 갈 때처럼 제각기 준비한 버스카드를 찍고 버스에 올랐지요. 오늘은 어른들이 아이 두 명과 짝을 지어 하루 엄마, 하루 아빠로 지내기로 합니다. 많은 인파 속에서 혹여나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죠. 전시관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어울려 마냥 즐겁게 놉니다.

▲ 이모, 삼촌, 아이들 모두 어울려 놀고, 준비한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초등아이들 수준에는 조금 단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전시였지만 신나하는 모습 속에서 아이들에겐 무엇을 보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은 박물관 내 야외 휴게공간에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함께 했습니다. 전시관 구경이 어땠냐고 물으니 “재밌었어요”부터 “우리 수준엔 안 맞아요~”하는 아이들까지 다양했습니다. 밥을 먹은 뒤 어디선가 날아온 풍선 하나로 또 깔깔대며 노는 아이들. 나중에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니 ‘참 이렇게 좋을까?’ 싶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그래도 아쉬운지 박물관 마당 한켠에 꾸며놓은 옛 전차도 타보고 줄지어 서있는 석상들과 어울려 사진도 찍고 끝까지 즐거움을 찾아내네요.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져서 대로변에서 과감히 돗자리를 펼쳐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쪼르르 따라 들어와 돗자리를 쓰고 버스 타는 곳까지 왔네요. 만원버스에 올라 한자리에 여럿이 끼어 앉아도 불편한 줄 모르고 웃음꽃이 피는 아이들….

‘방학동안 흩어져 지내느라 심심할거야. 한번 불러 모으자!’ 하는 작은 품앗이의 시작이었지만 소문이 나고 머리를 맞대면서 소박하면서도 알찬 기획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맘껏 누릴 수 있도록 함께 무대를 만들어주신 마을 이모삼촌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지요. 바람이 있다면 어린 시절 이런 기억들이 솟아나서 다른 이들을 위한 이런 무대를 꾸릴 수 있는 이모삼촌들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이렇게 마을을 함께 일구어온 선배들에게 절로 감사가 떠오르는 날입니다.

임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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