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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약을 향한 이삿짐을 싸다


오늘은 마을 이삿날이다. 부모님집에서 독립하여 첫 걸음을 떼는 청년들, 새 식구를 맞아들이며 공동체방을 바꾸는 사람들, 마을에서 지낸 삶을 토대로 양평에 공동체방을 꾸리러 떠나는 사람들…. 잘 보내고 잘 시작하는 이사를 위해서 본인들은 물론, 많은 이들이 주말 아침시간을 비워두고 수고했다. 일손을 보태겠다고 멀리서 대중교통으로 달려온 사람도 있었다. 나도 작년 가을 이사를 오기 전, 마을 이사를 도우러 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나에게 이사란 불안정을 뜻하는 것이었다. 대학시절 서울에 온 이후 기숙사, 동아리방, 자취방을 전전하며 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하고 이삿짐 옮기는 일이 고단하게만 여겨졌다. 독립을 스스로 유지할 수 없는 청춘으로선 정해진 곳 없이 상황에 따라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부동산과 이사업체가 돈을 벌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도 실감했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불안정도 안정도 아니고, 새로운 도약을 향해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함께하는 관계라는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울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걸음을 내딛고, 직장에서 가까운 곳을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과 달리, 직장과 거리가 더 멀어지는데도 과감히 공동체방으로 옮기고, 이미 안정된 듯 느껴지는 마을 안에서도 공동체방원들을 재편하여 서로 좋은 기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저런 감회에 잠길 겨를도 없이, 당일 아침 곳곳에서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고 나는 준비 미흡을 메꾸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일주일 전부터 각 집에서 나올 짐들의 서로 다른 목적지를 확인하고, 집마다 짐을 나르는 데 필요한 일손과 차량, 복잡한 동선을 파악하여 역할을 맡은 사람들과 소통했는데, 막상 꼼꼼하지 못한 게 많았다. 이쪽 짐을 빼는 시간과 새 짐을 들여오는 시간이 맞지 않거나, 일손이 어느 집은 남고 어느 집은 부족하기도 했다. 바쁜 와중에 어떤 짐은 짐 주인의 정황을 놓쳐 엉뚱한 곳으로 보내지는 일도 발생했다.

발만 동동 구르던 나보다 마을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 나는 문제가 벌어지면, 타조처럼 자기 눈만 가리고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의 크기를 실재보다 크게 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를 직시하고 잘못을 인정하여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함께 모색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실수로 인해 위축되기보다 사람들 속에서 내 모습을 객관화하고 다시 잘 살아가게 되는 게 마을 생활이 주는 힘인 것 같다.

능숙한 마을 이사라 그런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끝나게 되었다. 이삿짐 옮기느라 배고플 일꾼들을 위해서 마을밥상 공간을 빌려 오전 내내 점심식사를 준비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사가 끝나고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켜먹는 것과 다르게 친구들이 정성들여 준비한 밥상에 둘러앉아 뻐근한 팔다리도 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마을 이삿짐을 옮기는 과정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 있는데, 혼자 무거운 것을 나르지 않고, 여럿이 줄지어 서서 작은 것은 옆으로 건네주고 무거운 것은 함께 드는 것이다. 좁은 계단에 꽉 끼는 짐을 나를 때도 내 눈으로는 이 짐이 과연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위아래 각도를 조금씩 돌려가면서 협업으로 기막히게 완수할 수 있었다. 어떨 땐 짐이 너무 무거워서 내 손에 실린 힘을 빼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함께 들고 있는 사람을 기억하며 다시 손에 힘을 쥐기도 했다. 힘이 더 들어가는 계단과 트럭에도 먼저 자리 잡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듯 이사를 통해 나르는 것은 짐만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정인 것 같다.

무거운 짐을 질 때 서로 손을 모아 촘촘한 매듭을 이루는 것처럼, 함께 살아가는 관계는 삶에서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매듭이 아닐까. 독립을 스스로 유지할 수 없다며 상황에 눈치 보고 불안해하고 안정을 지향하던 청춘에서, 이제는 함께하는 독립으로 서로 매듭이 되어주는 관계 속에서 문제를 직면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이삿짐을 쌀 수 있을 것 같다.

최혁락 | 대학의 이삿짐을 싸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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