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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만난 제자백가
중국철학사 톺아보기(공자와 묵자를 중심으로)

'子(자)'란 스승에게 존칭으로 붙는 말이다. 수천 년 전 중원의 철학자들이 남긴 삶의 자취와 어록을 따라가면서 어느덧 시간과 공간과 민족을 뛰어넘어 내 마음의 스승으로 그들이 다가왔다. 제자백가시대 공자, 묵자를 중심으로 중국철학사를 살펴봤다.

공구, 배움에 뜻을 두고 호학의 삶을 살다

공자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너무나 익숙하고 식상하고 어쩌면 버리고 극복하고 싶은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가르침이 제국과 국가와 가부장적 질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근세까지 동아시아를 틀어쥐고 건강한 역사 발전에 제동을 거는 수구의 논리로 작동해왔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호감을 갖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가르침이 어떻게 악용, 남용되었는가를 차치하고 공자 곧 공구라는 한 인간을 만나가면서 나는 점점 그 거한의 사내가 좋아졌다. 그는 칠순의 아버지가 세 번째 얻은(정식 아내로 인정되지는 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세살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아버지 장례에 어머니는 참석조차 할 수 없었고 산소의 소재지조차 몰랐다. 그렇게 큰 공자가 열일곱 살에는 어머니조차 여의었다. 공자의 인생초반을 접하면서 그도 나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생의 질곡을 오롯이 다 겪어낸 한 사람이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문묘에 높이 배향된 '문선왕' 공자가 아닌 소년 공구로 내게 다가온 것이다.

그런 그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술회하는 것을 그저 그렇게 넘길 수 없었다. 소년 공구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기 처지에 대한 한탄에 빠져 있지 않고 학문에 뜻을 두고 자신의 삶을 일관되게 호학하는 이로써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공구의 결단은 한때의 서원을 옛 추억 삼아 말하며 그 고백과는 너무나 멀어진 채 살아가는 수많은 기독인들과는 다르다. 그 결심은 창고지기를 전전하는 비루한 젊은 날에도, 노나라 제후를 보필해 삼환의 토호세력을 꺾으려다 실패해 실각할 때도, 상가집 개 취급을 받으며 14년간 천하를 주유하면서도, 어느 제후에게도 쓰임 받지 못하고 늙고 지쳐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도 변함없고 한결같았다. ‘나보다 호학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자평하는 말년의 공구는 공자란 존칭이 허명이 아님을 일관된 삶으로 증명하였다.

아홉살 연하의 제자 자로는 공구와의 첫 만남 시 불손하고 무례하게 대들던 사람이다. 출신지역도 문화적 혜택을 받기 어려운 지역이었고, 그 자신도 힘깨나 쓰는 것으로 자랑삼는 무뢰한이었다. 공구는 그런 자로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의 급한 성미를 다독이며 가르쳤다. 자로는 훗날 출사하여 섬기던 주군이 적에게 잡혀 죽게 되자, 불가항력임을 알면서도 구하러 갔다가 죽임을 당한다. 자로는 칼을 맞아 관이 떨어지자 마지막임을 예감하고 그 자리에 정좌하여 관을 고쳐 쓰며 '군자는 죽을지언정 관을 벗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마지막 칼을 맞았다. 무뢰한을 군자로 도약시킨 이를 어찌 참다운 스승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자의 삼락에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으니, 천하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는 것이 군자의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말년의 맹자는 술회하였다. 배우고 가르치는 기쁨에 더 없는 가치를 둔 공구와 맹가 두 사람이 참 아름답게 보인다.

경천애인의 사람, 묵적

공자와 달리 묵자 곧 묵적은 생소하고,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란 말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러나 묵적은 일하는 노동자요, 실천하는 자로서 말한 대로 살고, 제자들에게 배운 대로 살기를 요구하는, 알면 알수록 예수를 연상시키는 선생이다. 묵적은 전쟁전문가이지만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다. 그 원칙과 가르침을 지키고자 침략 받는 나라에 제자들과 방어무기를 만들어 달려가 돕고, 침략하려는 나라가 있으면 그야말로 1000km에 달하는 대륙을 종단하여 목숨 걸고 침략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복시켰다. 묵적의 실천적 삶의 내력을 접하면서 어느새 중국철학하면 떠오르는 '공리공담(空理空談)'이라는 기존의 인상이 걷혀지게 되었다.

묵적의 제자 고석자는 자신을 등용한 임금에게 묵적에게 배운 대로 반전평화와 겸애에 입각한 정책을 세 번에 걸쳐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깨끗이 그 벼슬을 버리고 돌아왔다. 그런 제자를 묵적은 '녹을 버리고 의를 따르는 사람'이라며 격려하였다. 이것이 순자 곧 순경이 권학편에 '청출어람 청어람'이라 말한 본뜻이 아니겠는가. 스승인 나보다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연봉을 받게 되는 것이 청출어람이 아니라, 가르친 스승보다 더 의롭게, 배운 바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올곧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청출어람이 아니겠는가.

맹자가 말한 대로 부귀에도 현혹되지 않고, 빈천에도 동요되지 않고, 위세나 무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의의 길을 걸어가는 대장부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오늘 우리를 있게 한 수많은 스승들의 노고에 값하는 아름다운 삶일 것이다. 함께 일하며 공부하고 실천해간 묵자와 그의 제자들처럼, 평생 배움에 뜻을 두고 호학의 삶을 산 공자처럼,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는 함께 일하여 배움의 학당을 지어 올리고, 더불어 함께 배움의 도정을 걸어가고 있으니, 공묵 두 선생께서 본다면 과연 그 君子不死之國(군자불사지국)인 동이의 후손답다며 흐뭇해할 것이다.

블랙홀이 된 통일제국을 넘어

춘추전국시대는 분열과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시기였다. 분단의 시기에 전쟁의 공포와 파탄 난 민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중들의 소망을 결집하여 통일로 가는 길을 열고 닦고자 몸부림친 공자, 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다섯 철학자의 삶과 가르침은 똑같은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비가 꿈꾼 법가의 정치는 민중을 수탈하고 국권과 법을 우롱하는 토호들을 제압하고, 질서 있고 평화로운 공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사상이 통일 진나라를 만들었을 것인데, 통일 이후 한비의 사상은 애매히 가엾은 민중을 압제하는 전제독재의 논리로 악용되었다. 진을 이어 일어선 한나라는 공자를 높이는 듯하였으나 기실 그의 인애정신의 구현과 계승보다는 제국의 영속에 도움이 될 수구적 가부장적 질서이념으로의 변질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을 수 있다며 민중의 민생을 돌아볼 것을 격정적으로 주장하던 맹자와, 냉철한 이성적 분석으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방치하지 말고 가열차게 교육하여 예가 확립된 질서 있는 세상을 이루길 원했던 순자는 그저 성선이니 성악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공담으로 퇴색되어갔다. 민중과 함께 가진 것을 나누어 살고, 민중의 이익을 대변했던 묵자의 사상은 통일제국이 들어서면서 사마천조차 <사기>에 실을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망실되어버렸다.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통일을 이룰 것인가. 또 통일을 이루어 무엇으로 살아가려 하는가. 통일을 미래가 아닌 현재로 끌어와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며 자본에 굴하지 않고 호학하고 겸애하며 항심을 길러내는 삶을 살아내야, 이념의 골을 넘어 생명과 평화, 공의가 흘러넘치는 새로운 톻일 한반도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중국은 블랙홀이다. 그들은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는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진나라를 지금은 자랑스런 최초의 통일제국으로 치켜올린다. 남북조시대의 긴 분열을 종식시키고 황하와 양자강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해 이후 모든 중원제국으로 하여금 엄청난 국가 경영의 효율성을 누리게 해주고 단명한 수왕조도 기실 중국인 곧 한족과는 무관한 선비족이 세운 왕조이다. 심지어는 몽골의 영웅 징기스 칸을 중화민족의 영웅으로 다룬 대하사극도 중국 방송국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강희, 옹정, 건륭 황제를 소재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역사극의 단골소재가 되어 중국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중국이다.

저들이 자랑하는 제자백가의 사상가들도 한족과는 무관한 이들이었을 수도 있다. 묵적 곧 묵가가 동이족의 고죽국 출신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그저 흘려들을 수 없다. 경천애인하는 우리 민족의 심성과 신앙과 풍속에 너무 친근한 그의 삶과 가르침은 중국이란 블랙홀에 빨려들어간 조선 상고의 흔적을 더듬게 한다. 공자조차도 가서 살고 싶어하던 동이의 나라, 그 조상들의 삶과 사상을 되살리고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이 중국철학을 공부하고 나서 더욱 간절해진다.

전선기 | 이 시대 공교육 현장에서 말과 삶이 일치하는 참된 스승이 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고등학교 중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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