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변화를 돌아보는 자리
홍천 생동중학교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졸업식
▲ 생동중학교 졸업생들의 공연,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내가 겪은 졸업식은 그랬다. 주인공과 배경이 갈리고, 누군가는 인정을 받고, 누군가는 소외되는, 학교에서 배워온 바와 세상이 보여주는 질서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졸업식다운 졸업식은, 학교에서 가르쳐온 가르침과 졸업생이 고백하는 가치가 일치하는 자리여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배운 지식을 긍정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겠다는 결단과 그 가치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야 배움이 끊어지지 않고 기만적 지식이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올 3월 고등대학 통합과정 삼일학림 개교를 앞둔 홍천마을에서는 꿈꾸는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배움의 열기가 한껏 전해온다. 그에 앞서 12월 18일 아름다운마을공동체 홍천터전에서 열린 마을초등학교와 생동중학교 졸업식도 함께하는 배움의 의미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학생들이 고백하는 학교생활은 어떤 것일까, 어떤 점에서 자신이 변했다고 느낄까 궁금했다.
두 시간 남짓 버스는 달려 홍천에 도착했다. 어른 스무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달려도 넉넉할 만큼 넓은 강당 마루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졸업생들의 가족과 친지들, 마을 이모삼촌, 선생님, 그리고 형님들의 졸업식을 지켜보는 어린 동생들까지 모두들 기대에 찬 얼굴들이다. 졸업식이 열리기 한 달여 전부터 학생들은 영상, 노래, 쿠키, 졸업장, 졸업앨범 모둠으로 나뉘어 졸업식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학생 한 명과 선생님 한 명이 호흡을 맞춰 졸업식 사회를 맡았다. 이번 연도에는 초등학교에서 다섯, 중학교에서 여덟 명의 학생이 졸업을 한다.
졸업식의 문을 연 것은 학생들이 손수 제작한 학교생활 영상이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으로 학교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정경이 이어지고 '학교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는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일상이 영상에 담겼다. 장작을 패고 잔가지를 주워와 불을 때고, 수업이 끝나면 구멍가게에 달려가고 오징어놀이를 하고, 자그마한 일에도 까르르 웃는 모습. 지치지 않는 활기와 재치에, 보는 이들의 입에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인수터전 동생들도 축하 영상을 만들어 보여줬다. 정성껏 쓴 편지에 묻어나는 동생들의 솔직한 감정에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마을 이모삼촌들도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란 노래를 개사해 직접 만든 한 편의 음악영상을 통해 축하의 마음을 전달했다. 학생들 졸업을 축하하는 마음이, 한 길을 걸어가는 서로에 대한 든든한 마음으로 전해진다.
▲ 준비해 온 소감문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한 명 한 명마다 내용은 달라도 고백하는 바는 서로 통했다.
졸업생들이 각각 준비해온 소감문을 사람들 앞에서 읽는다. 긴장이 역력하지만 차분차분히 자신의 변화와 감사, 다짐의 말들을 읽어 내려간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골고루 못 먹던 음식을 홍천에 와서 먹게 되었다는 섭생의 변화부터, 한해 동안 개인농사를 지으며 든 생각과 함께 나누어 먹을 때의 기쁨이 학생들의 솔직한 언어로 표현된다. 도로에서 치어 죽는 동물, 공장식으로 사육당하고 잡아먹히는 동물들을 보면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고백도 있었다. 소감문 하나하나마다 아이들의 기질과 특이성, 깨달음이 새겨져 있다.
주어진 상황에 불평했던 모습을 돌아보며, 중학교에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마음을 잘 다스리며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이어진다. 학교 생활관에서 지내며,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지만 친구들, 선생님들과 지내면서 차츰 익숙해졌다는 학생도 있고, 어떤 학생은 홍천에 처음 온 4학년 때는 자주 집으로 전화를 걸고 울기도 하다가 5학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전화를 하더니 6학년이 되자 집에 가기 싫어졌다는 이야기로 학생들이 공감하는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한 사람씩 나와서 소감문 발표가 끝나면 교장선생님이 한명 한명에 대한 애정어린 격려말씀을 전하고 졸업장과 앨범을 전달한다. 다양한 재능이 형성되고 생명력이 커가는 시기에 내리는 평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칫 그 평가에 아이를 고착화시킬 수 있으니 지켜보며 격려해달라는 당부와 아울러 학생마다 가지고 있는 잠재성과 노력할 부분 등을 함께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학생 자신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책임있게 서로의 성숙을 돕는 관계로 든든히 연결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싫어하던 수학과 정이 들고, 다른 사람의 기운을 살필 줄 알게 되었다. 운동에 관심이 없었는데 축구에 흥미를 갖게 되고, 몸 상태를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는데 남을 배려하지 않은 경향이 있어서였다. 그럴수록 나는 생각이 많이 바뀌어갔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다. 고맙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
"친구들의 성숙을 지켜보며 나의 성숙도 돌아보고 함께 성숙하고 꿈을 키워가는 우리 삶을 당당하게 여기게 되었다. 3년 동안 좋아하는 축구를 하며 성격이 한결 여유 있어지고 부드러워졌다. 마음을 잘 나누고 관계가 깊어지는 사람이 되겠다."
"공부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웠다. 당연하게 여기며 쓰던 것 의문을 가지고, 친구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면 좋을지, 풀꽃 이름을 알고, 작물을 어떻게 기르는지 배웠다. 성격이 가장 크게 변화했고, 초등학교 때보다 부드러워졌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맞는 친구와 사귐을 갖고, 맞지 않으면 깊이 만나지 않았기에 힘들었다. 선생님, 부모님의 평가를 듣지 않고 나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았다면 부정적 생각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좀 더 잘 알고 만나면서 깊이 사귈 수 있었다."
"항상 들뜬 분위기로 말실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내가 긴장 풀릴 때 도와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책임 있게 지키기 위해 긴장하며 지냈다. 그 친구도 긴장이 풀리면 내가 도와주기도 했다. 따끔한 말이 성숙하게 해주었다."
"불평과 짜증을 많이 냈는데. 대화하며 마음을 이해해가고 잘못을 사과하고 관계를 풀어갔다. 그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깊은 관계가 될 수 있었다. 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었다. 동생들과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구나 알았다."
"우리 여덟 명은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안 맞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음 안 맞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것은 남을 이해하는 법, 내 마음을 전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충고하고 새겨듣게 되었다.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생동중학교 졸업생들이 나눈 고백의 일부다. 학생들이 어떻게 중학교 3년을 보냈는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바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명, 이질적인 존재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내 안을 살펴보면 찾아보기 힘든 역량과 생명력이 아이들에게 깃들어 있었다. 함께 축하하고 지금까지의 배움을 함께 나누었는데 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서로의 생명이 어우러져 아이들은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삼촌으로, 나도 생명의 약동을 느끼며 살아가야겠다.
▲ 졸업식을 마치고 서로 모여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위), 생동중학교(아래) 졸업생들.
김준표 | 출판사에서 책에 대한 애정과 이 시대 출판문화에 대한 고민 속에 편집 일을 하면서, 마을신문 기자로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